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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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그림책 <울타리 너머의 아프리카>을 읽었다.

울타리 너머의 아프리카
글 바르트 무야르트
그림 안나 회그룬드
출판사 비룡소

왼쪽은 문, 오른쪽은 창문이 있는 연립주택.
소년은 옆집도 그 옆집도 그 옆집도 생김새가 똑같은 주택단지에 산다.

소년이 살고 있는 주택단지에는 특이한 말을 하는 아줌마도 살고 있다.
창고도 없고, 화단을 가꾸지도, 잔디를 깍지도 않는 아줌마.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온 데지레 아줌마.

의자에 앉아 머나먼 곳을 보고 있는 듯 한 데지레 아줌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가만히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궁금해졌다.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는 이웃들은 제멋대로인 데지레 아줌마의 마당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소년의 눈에만 데지레 아줌마의 마당이 시원하고 점점 멋져진다고 생각한다.

날이 좋아도, 날이 좋지 않아도,
묵묵히 마당에서 일을 하는 데지레 아줌마를 바라보는 소년은
아줌마의 나라 아프리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줌마가 열심히 만든 것은 진흙집.
소년은 엄마에게 받은 한 잔의 차를 들고, 진흙집을 찾게 되고,
아줌마와 대화를 시작한다.

고향에 가고픈 마음을 달래려고 만든 진흙집.
데지레 아줌마는 소년에게 사진과 함께 고향의 이야기를 해 준다.

이민자들을 읽은 후 <울타리 너머의 아프리카>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림책 표지 속 창 너머 무언가를 바라본 소년은
소설 속 이민자들을 인터뷰하는 ‘나’이자 작가 제발트로 보였다.

(배달된 한 남자의 죽음과 애도가 담긴 지역 소식지)
결국 나는 그에 대해 간직하고 있던 아주 즐거운 기억들을 모으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모르는 그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p39

할아버지의 비망록에 적힌 이 시기의 기록들은 단편적이고 때론 중단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기록들을 통해 두 사람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출판하여 거쳐 간 여행경로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p174

표지의 커버를 벗겨보았다.
이민자들의 엉켜버린 삶의 여정일까? 그들이 고향을 떠나 흘러간 걸음일까?
꼬일 데로 꼬여버린 마음의 상처, 기억의 저편일까?

초반에 읽을 때는 몰입이 힘들었다.
인터뷰집이나 탐사 뉴스를 보는 것 같았다. 소설임을 확인하려 몇 번이고 표지를 보았다.

네 편의 소설.
헬리 쎌윈, 파울 베라이터,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막스 페르버라는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로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독특한 것은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사진들이다.

연관된 그 시대의 사진이 아닌, 각각의 이민자들과 관련된 사진들.
이 때문에 소설인가 소설이 아닌가로 잠시나마 혼동했었던 것이다.

제발트는 자신의 작품에 사진을 수록하는 이유에 대해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이야기했다.

사진은 증거이며
시간의 흐름을 붙잡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을 하나하나 구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아무 규칙도 없이 되는대로 번갈아가며 식당에 나왔고, 그래서 웨이터들의 구성이 쉴 새 없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들 각각의 얼굴을 기억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p206

우리가 바라보는 이주민, 이방인들에 대한 느낌을 툭 이야기하는 구절 같았다.
우리랑 생김새가, 피부색이, 체형이, 옷차림이, 언어가, 행동이 다르기에 이질감을 느낀다.
다수인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는데 속도 면에서도 효율 면에서도 더 나은데도,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의 문화, 우리의 규칙을 흡수하길 바라곤 한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말이다.


파울 베라이터가 자기 집을 끝까지 소유하고 있다는 사진을 곧 알게 되었다. 1970년, 원래 다고 베르트 레르헨 뮐러의 원예 농장이던 곳에 지어진 임대주택이었다. 파울은 이 집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거기서 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아무도 몰랐다. p39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이집트 여행은 아주 짧았던 것 같은데, 아델바르트 외삼촌이 내게 해준 이야기로 보건대 아마도 과거를 되찾아보려고 떠난 여행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런 시도는 모든 면에서 실패한 것 같더구나. 뉴욕에서 돌아온 뒤 코즈모는 다시 심각한 신경증을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p122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량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간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p185

전쟁을 피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별과 억압에서 해당되기 위해 등의 연유로 고향을 등지고 타국에 온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뿌리는 내리지 못한다. 몸도 마음도 정착하지 못하고, 영원히 맴돌며 끝이 없이 떠돌아다녔음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좀 이상한 모습이 무조건 숨겨야 하는 끔찍하고 비밀스러운 집안일이라도 되는 듯 행동했다. p155

우리 가족 모두 겉으로나마 평소의 일상적인 모습을 유리하려고 안간힘을 썼어.
(중략) 내 할머니 릴리 란츠베르크가 자살 했을 때도 친척들은 할머니가 자살한 이유에 대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p231

부모님이 겪은 고통과 나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보려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노력도 많이 했고, 이렇게 은둔생활을 하는 가운데 간혹 영혼의 안정이 유치되는 때도 없지 않았지만, 학창시절에 나를 덮쳤던 그 불행이 내 안에 박아놓은 뿌리는 너무나 깊었네. 그 불행은 거듭 땅을 뚫고 나와 사악한 꽃을 피우고, 독기 품은 잎으로 내 머리 위에 천장을 만들었지, 그 천장은 지난 몇 년 동안에도 내게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나를 어둠으로 덮었네. p242

제주 4.3 사건. 하루아침에 폭도가 되어 가족과 고향을 잃은 사람들.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넌 사람들. 남의 나라에서 갖은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 피해자 임에도 ‘속솜하라(속마음을 이야기하지 말라)!’‘며 마음의 빗장을 걸고 살았다. 피해자인데도 살아남아서 미안하다고 했던 그들이 떠올랐다.

나비 잡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무심결에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p146
그 여름날, 나비채를 들고 들판을 뛰어다니던 그 소년이 행운의 사신처럼 내 눈앞에 나타나 마침내 맞이한 나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수집통에서 가장 멋진 멋쟁이류의 바리와 공장나비, 멧노랑나비, 쥐똥나무나비를 떠내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p272
타지에서 마치 유령처럼 헤매다가 스스로 혹은 그에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에게 나비를 무엇이었을까? 나비 잡는 사람은 어떤 존재였을까?

나비.
자유를 찾아, 행복을 찾아 이곳저곳을 날아 다녔을 이방인 아닌 한 사람의 객체를 뜻하는 게 아닐까. 종류가 다양한 나비처럼 다양한 내면과 외면을 지닌 사람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존재인거 같다.

나비 잡는 사람.
작가 제발트와 같이 그들이 담긴 사진, 그들과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의 목소리, 물건의 흔적을 어루만지는 사람.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유구한 역사 속의 한 점과 획을 그어온 잊혀진 그들을 다시금 불러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이런 광물들이 자라나는데 걸리는 시간을 긴 줄로 표시한다.
우리의 삶의 길이가 그 줄 위에서는 보일 듯 말 듯 한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p258

우리도 이주민, 이주 여성, 거주 난민, 외국인 노동자 등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이미지로만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한번 돌아본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페이지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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