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독서 - 삶의 고비 때 곁에 있어준 책들
이지상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무살 후반
일을 때려치우자 마음을 먹고,
사표도 내기 전
친구와 여행 계획부터 세웠다.

친구에겐 두 번째 해외여행
나에겐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늦은 해외여행

여행 계획은 세우던 중
친구가 나에게 내밀었던 책이 있다.

<길 위의 천국>

지금처럼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OK 이전의 시절

여행자들의 바이블인
<론리 플래닛>이나 <세계로 가다!>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제목의 책이었다.

이지상 작가의 터키 여행기.
이자상이라는 사람이 터키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먹고 느꼈던 것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짧은 시간 들어간 여행비 봉을 뽑자! 라는 식의
여행정보지에서 제공하는 유명지, 맛집, 쇼핑이 아니라

잠깐이지만 그 곳에서 나는
어떤 시선과 어떤 마음으로 머물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아직 간직하고 있는 나의 첫 여행책

세월이 흘러
마흔이 된 나는 우습지만
‘마흔, 중년, 나이듦’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을 습관적으로 찾곤 한다.

그러다 한 책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중년독서- 삶의 고비 때 곁에 있어준 책>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제목보다 지은이였다. 이지상

여행 작가 이지상?
호기심에 책 표지 속 작가를 확인했다. 그가 맞았다.

지구 어딘가가 아닌 책의 어느 메를 걷었을 이지상,
중년에 접어든 여행자는 어떤 심정으로 어떤 책을 읽었을지도 궁금했다.

여행가 여행 작가하면 낭만가, 도전가를 떠올리며
유유자적 세계 방방곡곡을 방랑하며 자유인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작가 역시 다양한 현실적 마찰과 위기를 격고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그 어려운 시기시기에 와 닿은 책들이 있었고,
책 속 문장들이 그에게 말을 걸고,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깨달음을 주었다고 한다.

강상중의 <도쿄산책자>
후지와라 <신야의 황천의 개>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시지프 신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앙투안 드 셍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김승옥의 <무진기행>
린다 리밍의 <부탄과 결혼하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레나 모제의 <인간증발>
조나단 스위프트이 <걸리버 여행기>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를 위한 변명>
아리스토 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마하엘 엔데의 <모모>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

<중년독서>를 읽을 때는 빠르게 책장이 넘어갔다.
책에 대한 이야기, 작가의 개인적 이야기와 책의 연결점,
그리고 책의 장소를 여행한 경험에 푹 빠져서 몰랐다.
한번 나열해 보니 꽤 많은 책이 수록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 중 반은 읽고, 반은 안 읽었다.
안 읽은 반 중 지레 겁먹은 책들도 있다.

10대에 또래와는 다른 ‘나’를 과시하고 싶어
뜻 모르고 활자만 읽었던
카프카의 <이방인>,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도 반가웠다.

10대 20대 30대 나의 나이듦을 함께 한 책도 있다.

<모모> <걸리버 여행기> <달과 6펜스>

<모모>는 워낙 좋아해서 곁에 끼고 있던 책이고,
<걸리버 여행기>는 책을 싫어하는 남동생이 감명 깊은 책이라고 해서
기특한 마음에 대화를 나누고파서 읽고 또 읽었던 책이다.
<달과 6펜스>는 10대와 20대에 혼자만 읽고 간직하다,
30대에 독서모임 멤버들과 함께 읽었던 책이다.
결혼 전 결혼 후의 느낌도 달랐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달과6펜스 69쪽

10대의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돈도 안 되고, 예술적 완성도도 없는 그림을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왜 하려드는 거야? 더 나은 무언가를 찾아야 하지 않나?
하지만 40대인 지금 알거 같다. 잘 하지는 못해서 끊임없이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임을. 그게 아니면 나는 나의 존재나 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그 무엇. 나에게는 책이고, 책을 읽는 행위이다.

글자를 대하는 자세, 글 너머의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구절도 있었다.
나의 대책 없는 긍정적 수용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져 본다.

『언어가 ‘있는 그대로’가 아닌 부분적인 것을 표현하는 기호라는 것을 알아가면서 그 모든 글자를 조심스럽게 대하기 시작했다. 자기 생각이 자기 것이 아니고, 문득 밖에서 오는 ‘그 무엇’의 아바타가 되어 놀아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것을 깊이 느낄수록 내용보다는 생각의 형성과정, 인식의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이 깊어갔다.』 p238


책 속에서
올 한해 그의 시대별 작품과 나의 삶을 연결해 보고 싶은 작가도 발견했다.
헤르만 헤세다.

『오랫동안 수행한 싯타르타도 그랬는데 하물며 일반인들은 어떻겠는가.
세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통 부모 자식 간의 인연에서 삶의 힘을 얻지만, 또 그 안에서 깊은 갈등을 겪는다. 헤르만 헤세도 실제로 그런 갈등을 많이 겪었던 모양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끈질긴 인연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p114

인생의 중반을 걷고 있는 중인 나.
과거를 너머 현재까지의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순간순간 다양한 관계와 사건들로 인한 고비가 있었다.
어느 때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고,
어느 때는 수동정이고 운명과 시간의 경과에 맡길 때도 있었다.

죽을 만큼 힘들다 라는 순간도 있었다.
무엇이든 산 너머 산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과거를 돌이켜보면
산 너머 산 그 사이 사이에 찰나일 수는 있으나 좋았던 것들이 있었다.
내 가족이었을 수도 있고, 내 인연들이었을 수도 있고, 혼자 보았던 들었던 것들이었을 수도 있다.
작은 기쁨, 깨달음, 해냈다는 성취감, 혼자라 느꼈지만 혼자만의 고독, 혼자가 아니게 해 준 온기들. 지금은 내게 책도 있다.

이지상 작가의 중년 독서를 읽으며,
고전을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이 인생의 정답을 주거나 처방전을 내려주지는 않지만,
책과 함께하는 인생 후반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