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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죽음 하나, 둘, 셋…….
<7년의 밤> 작가의 신작 <28>에는 유독 죽음이 많다. 하나같이 처절한 죽음이다. 상처입고 아파하는 사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쉴 새 없이 독자를 몰아친다. 누군가는 같은 장면을 보면서 고개를 돌릴 것이다. 다른 사람은 실눈을 떠서 조심스럽게 볼 것이다. 너무 지독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예리한 시선으로 묘사한 인간과 개가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조용한 삶 속에 어느 순간 퍼진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결국 특단의 조치까지 내리고 마는데.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각각의 사정으로 한 곳에 모이나 이내 얽혀버린다. 후에 치열하게 무언가 결핍된 채로 살아간 인생은 끝을 맞이하고 책도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다.
28
나는 때로 인간 없는 세상을 꿈꾼다. 모든 생명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계, 꿈의 나라를. 만약 세상 어딘가에 그런 곳이 있다면 나는 결코 거기에 가지 않을 것이다.
책 표지에도 적혀있는 의미심장한 문장. 이것은 소설 속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일종의 복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파악하게 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리라. 미리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포일러나 마찬가지니까.
345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했겠느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346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상처받은 남자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었노라고. 어쩔 수 없는 일로 자신을 탓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라고. 십여 년이 지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어떤 심정으로 살아온 것일까.
389
그뿐이겠는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아내가 어디에서 죽었는지, 당시 현장 상황이 어땠는지, 스타나 링고가 아내를 공격하는 걸 직접 봤는지, 목격자에게 들은 것인지, 목격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은 건 그것이 타인의 슬픔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한 예의’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때로는 침묵 속에 남겨두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가끔 이 사실을 잊는 것 같다. 기어코 아문 상처를 터뜨리는 행동으로 아픔을 배가시키고는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409-410
현재에 이르게 만든 모든 것들에 대한 분노로부터, 매일 매 순간 밀려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으로부터, 다시는 일상을 되찾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으로부터 저 많은 사람들이 이 광장에 모여 앉아 울분을 토하고, 박수를 치고, 내일을 희망하며 삶을 확인하듯.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한 문장이다. 이상하게도 이 구절을 보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떠올랐다. 다른 목적으로 응집한 사람이었지만 두 사건 다 많은 희생을 치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는 허구(일 것이)고, 후자는 실제라는 점이다.
솔직히 마지막 챕터를 읽은 후에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에게는 이 결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처럼.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다행스럽기까지 한 책은 처음이다. 시간을 많이 남겨두고 읽기 시작하라. 할 일도 잊어버린 채 책에만 몰두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