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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 몽골에서 보낸 어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평점 :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을 가고 싶어 한다. 이제까지 몽골에 가고 싶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곳에서 직접 몸을 부딪치며 배우고 글을 쓴 사람이 있다. 그들만의 풍속과 생활방식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속에 들어갔다.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학문적 탐구도 게을리 하지 않으시며 적지 않은 성과를 내셨다. 몽골 역사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색다르고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에 우러나오는 생각을 문장으로 적은 느낌이랄까.
여정에서 내가 뼈가 시리도록 느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신체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존재는 자연의 올가미에 매달려 있다. 실존은 오직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34)
위의 문장을 보면서 수업시간에 배운 철학이 생각이 났다. 물론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교양 차원이었지만 아는 것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반갑고 기뻤다. 육체와 정신에 대한 철학자의 다양한 관점이 있다. 같지만 같지 않고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그런 지식 말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인간의 의식이 신체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이름이 정확하지 않은 철학자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이 문득 떠올랐다. 글쓴이가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신체’로 말할 수 있는 의식의 울타리인 자연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내 안 어딘가에 있지만 지금은 내가 잃어버린 장소들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 영롱한 아름다운 과거들. 그러나 나는 현재와 미래를 희생한 대가로 과거를 찬미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의 비극은 그가 한때 어린애였다는 사실에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던가? 나는 비극을 갖는 것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37)
이 문장을 밑줄 그은 것은 현재, 과거,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다르게 보여서다. ‘현재와 미래를 희생한 대가로 과거를 찬미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어떤 식으로 나오게 되었을까. 의미심장한 말 같기도 하고 그저 일상적인 말 같기도 하다. 명확하게 꼬집어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롭다.
마종기 시인의 시「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중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때문에 미국을 선택한 나는, 자유를 얻은 대가로 내 언어의 생명과 마음의 빛과 안정의 땅을 다 잃어버렸다. —내게도 안정의 땅과 마음의 빛이 있었을까. (49)
좋아하는 시인이 이런 시를 남겼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배워간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내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새롭게 알았다. 만약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시를 썼을까 상상하면서 다시 한 번 시집을 찾아서 들여다봐야겠다.
심오한 주제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