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저메인의 전생이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말을 듣고 '아, 이건 사기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만물에 깃든 신성성이나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가치를 부정하고 오직 인간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노예처럼 지배하라는 서양인들의 세계관을 만들어낸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윤회의 과정에서지그재그의 형태로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로 살아갈 수 있겠지만 대체로 전생의 흐름을 따른다고 볼 때 베이컨이 초월적인 가르침을 펴는 존재와 연결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번역이 아쉽다는 말씀은 크게 동의하기 어렵고 이런 이야기를 접해보지 않은 분들의 생소함 또는 문명적 사고방식이 가지는 무의식적인 저항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말씀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저는 너무 재미있게(가슴아프게) 읽고 있습니다. 녹색평론 초창기의 글처럼 영성이 가득하고, 밑바닥에서부터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구약성서 예언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 때문에 가슴이 먹먹하고 그렇기에 앞날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고...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서 바꾸기가 어렵고 그냥 이대로 살다 죽을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것이 더 나을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문명인들은 이런 이야기에 동조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유와 그에 따른 물욕이 온 세상을 굴려가는 문명 안에서 그런 희망 자체가 사치로 보입니다.
고등학생 정도의 학생들 역사교육을 위해서 꼭 읽히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입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발전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정책과 마음가짐이 너무나 필요한 동아시아에 사는 모두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동아시아 근대사부터 오늘날 문제까지 이해할 수 있고, 학교폭력의 대안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회복적 생활교육의 일본 전범판이라고 해도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