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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1~10권 세트 - 전10권
에드거 앨런 포 외 지음, 하창수 외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소문으로만 듣던, 언젠가는 출판되겠지만 근 10년내에는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바벨의 도서관이 바다 출판사에 의해서 출판되었다.
보르헤스의 팬이라면 이 전집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을 것인데 그도 그럴것이
보르헤스가 문학가로서의 그를 만들어준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직접 추려낸 보석들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출판된 10권의 책들을 다 읽으며 보르헤스 문학의 원류를 맛볼수가 있었는데
그답다고나 할까 작품들이 전부 단편이며 장편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은 제 10권인 바테크가 유일하다
-아직까지 출판되지는 않았으나 버튼과 갈랑의 천일야화는 어떤식으로 출판될지 무척 궁금하다.-
그가 작품의 해제를 달았다고는하나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의 해설처럼
자세하지는 않고 이것 역시 그답다고나할까 무척 짧.다. 하지만 동시에 탁.월.하여
소설을 다 읽은 뒤 해제를 다시 읽으면 작품들의 깊은 맛을 두번 우려낸 녹차처럼 음미할수 있으리라본다.
1권 에드거 앨럼 포의 '잃어버린 편지'
전집의 순서에 어떤 의미가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1권이
포의 작품이라는것은 무척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책을 여는 보르헤스의 작품평은 이렇다.
'포가 없었다면 우리 시대의 문학은 존재하지도 않거나
아니면 적어도 지금의 문학과는 아주 다른 문학이 되었을 것이다.'
포의 단편들은 '우울과 몽상'으로 이미 한번 읽었었지만 약간 부족한 번역이 아쉬웠는데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은 번역이 잘되었는지 포의 '악몽'들을 제대로 음미할수가 있었다.
'우울과 몽상'에 수록된 '저승과 진자'에서는
'아무리 깊은 잠을 자도 우리는 깨어나 꿈의 가느다란 거미줄 위를 걷는다.
그러나 잠시후 그 거미줄은 너무나 덧없으므로 우리가 꿈을 꾸었다는 것도 기억을 못한다.'
라는 뭔가 아리송한 글이 이 책에 수록된 '함정과 진자'에서는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도, 깨어날 때는 꿈이 자아낸 거미줄을 찢고 나오는 법이다.
그러나 그 직후(거미줄이 너무나도 섬약한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방금 꾼 꿈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는 이해가능한 글이 되었다.
포가 보르헤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누구나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보르헤스가 포의 작품은 평하는 글을 읽으면 그가 얼마나 포의 작품을 사랑했는지 느낄수가 있다.
특히 '함정과 진자'에 관한 평은 내가 어린 시절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때 느꼈던 감정을 되살리게 한다.
'거의 60여년 전, 나는 이젠 사라진 어느 층계의 마지막 단에 앉아 '함정과 진자'를 읽었다.
내가 몇 번이나 그 작품을 다시 읽었는지, 아니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는지는 잊어버렸다.
내가 끝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비좁고 네모난 감옥, 깊은 심연으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권 조지 웰스의 '마술 가게'
조지 웰스의 작품은 읽은 것이 '우주 전쟁'밖에 없다.
그런고로 웰스를 단순히 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 정도로만 여겼으나... 이 책을 읽으면
의외로 보르헤스와의 교집합을 발견할수가 있었다.
특히 '수정 계란'의 경우에는 놀랍게도 -보르헤스가 언급하지만- '알렙'의 향기를 느낄수가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모두 포와 보르헤스의 작품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데
포의 우울과 공포, 보르헤스의 환상보다는 부족한 점은 있지만 결코 그것이 단점이 될수는 없을 것이다.
흥미롭고 독창적이며 시대를 앞서간 듯한 웰스의 작품들을 읽으며
언젠가 웰스의 전집이 나올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역시나 보르헤스의 평은 탁월하다.
'20세기 초에 웰스를 발견한 것이 아쉽다.
지금 그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아찔하면서도 때때로 끔찍한 행복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3권 러시아 단편집
그렇다. 러시아 문학이 빠지면 섭하다. 당연히 바벨의 도서관에 포함될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과연 보르헤스가 선택한 작품들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중단편들이 수록되어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어'는 원래 올해 구입할 예정이었던 관계로 아쉬움이 좀 있다.
여튼 그의 작품은 대학때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그의 작품 중간기인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고 있는데
환상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작품은 '분신'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악어'는 의외로, 환상적이고 블랙 유머가 가득하다.
거기에 도스토예프스키만의 종합소설적인 느낌-단편임에도!-과 날카로운 통찰력,
미완성 소설답지않은 완성도 등이 보르헤스가 선택한 이유일듯하다.
안드레예프는 이번에 처음 접한 작가인데 그가 보여주는 '라자로'는 아주 강렬하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을 해보게되는 '라자로는 삼일만에 부활한 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주제를
음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안드레예프의 모습이 반영된 이 작품을
보르헤스는
'우리가 품고 있는 세계라는 개념을, 흡사 그것이 개인의 세계가 아닐까 하고 수정하게 만드는 작품'
이라고 평하였는데 참으로 적절한 평이 아닐까싶다.
마지막 작품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노벨연구소 선정 100대 문학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톨스토이가 말하는 인간 구원의 길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르헤스도 이 작품을 무척 사랑했는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히 해답을 제시해 줄 만한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라 주장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는 애정 넘치는 평을 해주었는데 앞선 두 작품과 같은 환상적인 요소는 보이지 않다가
소설 후반부에 보여지는 초자연적인 계시가
아주, 아주 인상적이어서 쉽사리 머릿속에서 사라지지가 않는다.
다만 작품 자체는 정말 명작이나 보르헤스에게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냥 그가 진심으로 사랑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즉, 보르헤스스럽지는 않다는거..
4권 루고네스의 '소금기둥'
국내에 처음 소개된 루고네스의 단편들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인듯하며 보르헤스가 무척 존경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아르헨티나 문학의 전 과정을 단 한 사람으로 축소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레오폴도 루고네스가 될 것이다.'
라고 평을 하였다.
시의 운율을 닮은 소설들이라고는 하지만 번역된 탓인지 그런 느낌은 잘 못느끼겠고
라틴문학 특유의 환상이 잘 살아있는 소설들이라는 것은 느낄수 있었다.
뭐랄까 책의 표지색만큼이나 감상을 글로 표현하기 힘든 소설들로 가득한데
한번 읽고 나면 쉬이 잊을수 없는 매력이 있어 앞으로도 루고네스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5권 스티븐슨의 '목소리 섬'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보물섬'으로만 우리에게 알려진 스티븐슨이지만
그 역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 있는 것이 무척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보르헤스의 어린 시절 '행복의 한 형태'였던 스티븐슨의 작품들 중
보르헤스가 고른 4개의 작품이 수록되어있는데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정말 재밌다'라는 것이다.
어릴적에 -비록 완역은 아니었을테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지킬...'과 '보물섬'의 추억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되살아났다.
개인적으로 '병 속의 악마'는 이번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단편으로
보르헤스의 말마따나 '행복의 한 형태'를 느끼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우리가 문학을 즐기는 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6권 힌턴의 '평면 세계'
10권까지의 시리즈 중 가장 난해하고 가장 보르헤스의 느낌이 강했던 작품이다.
힌턴은 수학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수학적이고 사변적인 이미지가 아주 강하다.
'평면세계'와 '4번째 차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페르시아 왕' 총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앞선 두 작품은 사변적으로 쓰여진 작품이라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수학과 담을 쌓은지가 어언 7년째에 접어들어 읽은 글을 이해될때까지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는듯
고생을 많이하였다.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은 보르헤스가 이 작품을 쓰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정도로 환상적이며
작은 놀이같은 시작에서 우주의 우화로 넘어가는 멋진 소설이다.
1부의 소설과 2부의 소설 속 세계를 수학적으로 구라치는 설명하는 '페르시아 왕'은 읽는내내
감탄사가 나왔는데 '원형의 폐허'나 '틀륀,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가 떠올려졌다.
아름답고 미스테리하며, 사색의 즐거움-그러나 두통을 동반하는-을 느끼게 해준 기묘한 작품...
7권 호손의 '큰바위 얼굴'
개인적으로 '큰바위 얼굴'이 바벨의 도서관에 포함된 건 의외다.
이런 대중적인 작품이 포함될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뛰어난 작품이라는건 두말할 나위없지만서도.
그러나 '주홍글씨'나 '큰바위 얼굴'에 인한 호손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 책에 수록된 다른 단편들은 상징성이 강하고 흥미롭고 매혹적이며 환상적이다.
포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지녔지만 알레고리와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더 강하며
말로서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는데
보르헤스는 이를
'우리는 그가 꿈꾸었던 이야기, 죽음으로 인해 실현되었거나 지워진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의 평생은 꿈의 연속이었으니까 말이다.'
라는 그다운 평으로 이야기한다.
8권 체스터턴의 '아폴로의 눈'
보르헤스의 작품들중 몇 작품들은 탐정소설의 형식을 차용하였기에
그가 추리소설 또한 사랑했음을 짐작할수 있는데
보르헤스가 가장 사랑한 추리소설가는 체스터턴이었나보다.
'문학은 행복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마 체스터턴만큼 내게 행복한 시간을 많이 안겨 준 작가는 없을 것이다.'
과연 보르헤스답다고 할까, 추리소설임에도 체스터턴의 작품들은 환상적인 요소를 느끼게한다.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바스커빌의 개'와 같은 느낌의 약간은 작위적인,
그러면서도 사실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단편들은
추리보다는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보르헤스는 추리소설의 쇠퇴를 조심스레 예상했다.
추리 소설은 모든 문학장르들 가운데서 가장 인위적이며 놀이에 가까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는 체스터턴이 말한 '소설은 얼굴 놀이이며 추리소설은 가면 놀이다'라는 말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러한 쇠퇴 와중에도 체스터턴의 작품은 계속 읽힐 것이라고 했다.
이유인즉, '불가능하고 초자연적인 사실을 암시하는 미스터리한 신비는
마지막 몇줄이 우리에게 주는 논리적 해결만큼이나 흥미롭기' 때문이란다.
사족으로 비록 초자연적이지는 않지만 추리 자체보다는
분위기와 문체의 독특함을 중시한 챈들러의 작품들을 보르헤스가 읽었을지 궁금하다.
체스터턴의 작품들도 뛰어나지만 개인적으로는 챈들러의 작품들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기에...
9권 잭 런던의 '미다스의 노예들'
잭 런던의 책을 읽으며 내내 유쾌하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결코 유쾌하진 않다.
보르헤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내면에는 두가지의 상반되는 사상이 만나서 충돌한다.
삶의 투쟁에서는 강자가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이론과 인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다.'
이제는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가운데서도 그 분위기만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야성의 절규'의 느낌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삶의 법칙'과 '잃어버린 체면'에서 보여지는 비극적이라고도 할수 있는 운명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잃어버린 체면'은 비극적이면서도 유쾌하다. 읽어본 사람만이 알수 있으리라..
'미다스의 노예들' 가장 비극적인 단편이지만 그것을 쉬이 느끼기가 어렵다.
고기에 몰려드는 파리때는 혐오스럽긴 하지만 그것에서 우리가 비극을 느끼지는 않는것 처럼 말이다.
그의 작품들은 자연스럽다. 말 그대로다.
그러면서도 대놓고 표현하지 않는 인류에 대한 사랑은 깊은 매력을 느끼게한다.
예외적으로 '그림자와 섬광'은 포 같은 느낌의 단편이다.
'투명'이라는 오래된 모티프를 사용하여 풍부한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잭 런던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10권 벡퍼드의 '바테크'
10권의 시리즈중 유일하게 하나의 소설만 있는 책이다.
아마추어 소설가였던 벡퍼드가 2박3일만에 썼다고 하는 '바테크'는 난잡하기 이를데없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버틸수가 없는 매력을 내뿜는다. 영화로 치자면 컬트무비같은 작품이랄까...
보르헤스는 이 책에 나타나는 지옥에 대하여 '문학에 나타난 최초의 화려한 지옥'이라고 평하였는데
우리가 지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신곡'의 지옥과는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포와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을 읽으며 지옥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신곡'의 지옥이 아니라
바테크의 '지옥'일 것이다. 그것은 형벌이면서 동시에 유혹이기도 하다.
서양인이면서 동양의 이야기를 썼고 영국인이면서 프랑스어로 집필을 한 기묘한 작가 벡퍼드,
그의 기묘한 행적만큼이나 '바테크'도 기묘하고 난잡하며 음울하면서도 동시에 화려하다.
10권까지 다 읽고난 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여드는 생각중 하나는
책표지의 색상이 참 책에 어울린다는 것인데
어지간해서는 책 표지는 신경을 안쓰지만 책을 읽은뒤 표지를 보고 있으면
디자인 센스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다.
그리고 이번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출판으로 인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세계문학의 보석들이 소개된 점이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무척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시리즈가 출판되지 않았다면 힌턴과 루고네스를 계속 모르고 지냈을 것이며
호손과 스티븐슨, 잭 런던은 그들의 대표작들을 아는 것으로만 그쳤을 것이다.
앞으로 출간될 19편의 작품들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그만큼 크다.
과연 보르헤스는 어떤 작품들을 소개하며 우리를 만족시켜 줄것인가.
올해는 바벨의 도서관으로 행복한 한 해가 될거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