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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제목은 덕혜옹주가 아니라 박무영 또는 복순이가 되어야 맞을듯.
도대체 덕혜옹주이야기를 하려는 거냐, 박무영 이야기를 하려는거냐, 복순이이야기를하려는거냐..
그리고 그렇게 허무하게끝나버린 결말이라니.. 아무래도 이 책의 주인공은 복순이인것같다.
프롤로그도 복순이 죽음부터 시작하고 결말도 복순이 죽고 나서부터는 마치 시간이동을 한듯
번개처럼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어디에서 인용한것처럼 뻘쭘하게 들어있는 설명구는 도대체 뭐임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부분이다.
' 그는 원래 구로다 다케유키였다. 구로다는 치바 현에 있는 구루리 번의 번주 집안이었다. 어머니 레이코는 친오빠가 은거한 후 집안의 뒤를 이었는데................ 다케유키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문과 작위를 승계 받게 됐다. 그럼으로써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무슨 뉴스멘트임?
연극 한창 잘 보면서 감정 몰입하다가 어디서 나레이터 하나 뜬금없이 튀어나와서 공연 끊고 설명하는 기분이다.
차라리 덕혜가 남편에 대해 알아가면서 덕혜의 시점으로 서서히 풀어내는 게 나았을 듯 하다.
저렇게 설명구절 튀어나오면 정말 당황스러웠다.
나는 뭐 전문작가도 아니고 소설쓰는 법 배운적 한번도 없다만 저런 구절 나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 읽다 보면 저런 구절이 정말 수도 없이 나온다. 진짜 짜증나 미칠뻔했다.
영화 볼 때 내용 다 알고 본다고 생각해 보라. 긴장감도 없고 팥없는찐빵같을거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렇게 설명을 다 해주고 들어가니 무슨 내용이 나와도 그저 그렇다.
나는 맨 마지막의 작가의 말을 아주 꼼꼼하게 읽었다.
원래 일본어 원본인 '덕혜희' 라는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 가며 이 책을 쓰셨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어로 번역된 '덕혜희'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맨 처음에 썼던 걸 처음부터 다시 쓰다시피 해서 이 책이 나왔다고 했다. 차라리 맨 처음의 책이 더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그리고 왜 다시 썼는지 그 이유가 정말로 궁금했다. 어차피 소설이다. 실제 덕혜옹주의 삶과 같아도 그만, 달라도 그만이다. 중요한 건 작가가 그녀의 삶을 얼마나 잘 표현하냐이다.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가 가장 많이 겪는 갈등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인물의 자료가 부족할 경우 더이상 쓸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이 책은 기존의 덕혜옹주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해서 다시 집필하는 편이 나을 뻔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색함이 나를 떠나지 않았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 것같다. 이 책은 덕혜의 삶을 현실적으로 세세하게 비춘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평전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소설도 아닌, 아주 어정쩡한 책이다.
그래도 나는 이 책에 별 두개를 준다.
하나는 그래도 덕혜옹주를 알렸으니까.. 그 공로는 인정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치욕스런 역사라도 아는 것이 나은법이다. 나도 사실 몇 년 전 그녀에 대한 다큐를 보고 난 후 거의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이 나오고 나서야 그녀를 제대로 알게 된 느낌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많이 유명해졌고 내 주위에 친구들이나 많은 사람들도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둘째는 덕혜옹주가 어릴 때 쓴 시를 소설에 소개했다는 것이다. 이건 혼마 야스코의 덕혜옹주라는 그 책에 나온 걸 베낀 것도 아니고 작가분이 스스로 자료를 찾으신 것 같다. 마치 진주를 건진 듯한 기분이었다.
작가분도 이 책을 쓰느라 고생 많이 하셨을 거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약간 대충 써진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점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덕혜옹주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