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 열두 시 나의 도시 - 지금 혼자라 해도 짙은 외로움은 없다
조기준 지음 / 책들의정원 / 2017년 8월
평점 :
예비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중략)
충분히 공감한다는 말에 씨익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는 말에 불안감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어떻게든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해서 마음을 돌려놓고 싶었다. 사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인생과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조건 나의 경험과 삶에 그들의 궤도를 억지로 끼워 맞출 수는 없는 일이다. (p267)
저자가 에필에 적었던 걱정의 말들을 먼저 필사해 본다. 각자의 인생과 경험이 존재한다는 말에 내가 어떤 독자인지 소개를 하면 '이런 배경의 독자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라고 내 서평을 이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님처럼 나의 서평을 이해받고 싶은 일종의 밑밥이다.
이 책이 읽고 싶을 즈음부터 서평을 쓰는 이 순간까지 나의 독서가 침체기에 있다. 침체기를 극복하고 기분전환을 읽기 위해 나와 반대의 상황의 책을 골랐다.
무슨 말인고 하니...일단 작가님과 나의 공통점은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40대 라는 것 빼곤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다.
작가님은 남자 사람, 난 여자 사람.
작가님은 미혼, 나는 기혼에 애도 셋이나 있다. 그것도 셋 다 질풍노도의 십대. 아이들이 십대인 만큼 남편과 나는 사십춘기를 넘어 갱년기를 걱정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사십대의 싱글남과 사십대의 애 딸린 유부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나와는 완전 다른 시간을 사는 작가님의 생각과 일상을 통해 독서 침체기 회복을 꿈꾸며 서평을 써보자 결심했다.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p21)
버스커버스커가 부럽지 않다. (p84)
우와~ 첫 챕터가 대학때 첫 사랑과 관련있는 노래 제목이라니 신기하다.
힐링,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도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이 있다.
대학때 사겼던 선배와 졸업하고 취업 후에 헤어졌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그 선배도 결혼을 했는지 궁금했다. 싸이월드가 유행이었던 당시에 흔하지 않은 선배의 이름을 싸이월드에서 검색해보니...있다. 그리고 선배 싸이월드의 BGM이 이 노래였다. 당시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대학 생활과 동기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봄비 오는 날, 눈 대신 겨울비 내리는 날도 듣기 좋지만 나에게는 청춘이라는 싱그러운 시절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 고즈넉한 밤에도 즐겨듣는 노래가 되었다.
독서 침체기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첫 장부터 20여년 전, 20대의 추억을 떠올린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지극히 사색적이다. 첫 글자를 쓰기까지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중략)
'글을 쓰다'라고 하는 함축적 의미를 걷어내어 보면 글자 그대로를 의미하는 글쓰기가 존재한다. 쉼과 여유, 그리고 몰입을 위해 글을 쓰는 행위이다. 가끔씩 글쓰기에 몰입하곤 한다. (중략)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보이면 공책을 꺼내어 끄적인다. 일부러 책의 한 페이지를 정성스레 한 즐씩 써내려가기도 한다.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그거 써서 뭐하냐고 핀잔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필사는 손끝에 피운 연필 꽃인 것만 같다. (p165)
필사든 일기든 낙서든 펜을 쥐고 종이에 쓰는 행위는 전부 다 좋다. 하지만 이마저도 요즘 하고 싶지 않다.
어제는 고등학교 교지 편집부원인 딸 아이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행할 교지의 기사를 이제 조금씩 정리하기 위해 노트북을 학교 사물함에 보관중이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 왔다. 딸 아이는 그동안 첫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교지편지부 담당 선생님의 글을 읽고, 글에 대한 흡입력이 첫 문장에서 이미 먹고 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간결하고 단순한 첫 줄이 임팩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첫 문장이 쉽게 써지지 않는다고.... 첫 문장때문에 기사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넔두리로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그러고보니, 처음 아이들에게 독후감 쓰기를 알려줄 때 책표지를 필사 시키기도 했다. 책표지에 책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가 있고 무엇보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며 읽어야 할 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보니 '서지 필사'는 객관적인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나를 일깨워 가는 과정이자 세상을 배워 가는 과정이다. 나를 일깨우려면 더없이 나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가을로 치닫는 곡식의 씨앗이 풍성하게 여물수록 그 무게에 맞게 고개를 숙이듯 말이다. 씨앗이 탐스럽다는 말은 뿌리에서부터 좋은 영양분을 골고루 흡수했다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배워 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책만큼 최상의 도구는 없을 것이다. 직접 경험으로 쌓인 지혜와 지식이 으뜸이겠지만 겪을 수 없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경험해본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p177)
이렇게 고마운 책과 문자에 어떻게, 왜 싫증이 났을까?
내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되는 구절이다.
아침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직장에서 만난 오래된 사람들의 모임,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임, 초등학교 동창 모임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정말 이분들은 인생 잘 사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오랫동안 서로를 허물없이 보듬어주고 아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중략) 나의 우정도 무럭무럭 키워 가련다. 오래되어 더욱 좋은 것들에 친구라는 단어가 포함된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 (p220)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타인에게 괜한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인맥이라는 용어 아래 사회 생활의 핵심이자, 성공의 발판인 듯 오랫동안 포장을 해오고 있지만 굳이 인맥을 만들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피곤한 사회에 살고 있음이 사실이다. 오늘날은 정말 피로사회가 아니겠는가. (p240)
작가님의 싱글 생활과 생각을 읽을 때, 작가님과는 반대로 나의 결혼 생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남편은 곧 50대를 바라보는데 아직 미혼인 친구들이 있다. 나역시 결혼한 친구보다 미혼인 친구들이 아직은 더 많다. 이들을 만나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남편에게 혼자 자취할 때가 좋은지, 결혼한 지금이 좋은지 묻는다.
나는 결혼한 지금이 좋기 때문에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길 바라고, 또 남편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 남편에게 맞춰주고 잘 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긍정적인 남편의 대답을 기대한다. 남편은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지만 자신은 해보고 후회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고보면 나는 혼자 자취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 부모님과 살다가 결혼을 해서 싱글라이프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싱글라이프의 장점을 알게 될 때마다 결혼 생활의 장점도 싱글라이프의 장점 만큼 말 할 수는 있다.
결혼 생활의 장점 다음으로 '사십춘기'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춘기는 청춘을 봄에 비유해서 봄 春을 쓰고 중년은 가을에 비유해서 사십秋기 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님은 '사십춘기'라는 표현을 쓴다. 그럼에도 나는 '사십추기'에 더 공감이 간다.
이 표현도 싱글남과 애 셋인 유부녀가 느끼는 시간이 달라서인 것 같다. 나의 경우, 노화가 진행중인 나와는 반대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매일 보면, 내가 나이들고 있음을 비교하게 된다. 또 가끔 만나는 부모님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 아이들이 자란만큼 나와 내 부모는 함께 늙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십춘기'는 아직도 나의 시간은 내가 할 일이 많고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말로 느껴지고 '사십추기'는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시간에 순응할 준비가 되어 여유가 있는 말로 느껴진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 온 같은 40대임에도 싱글남과 유부녀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는 것을 느꼈고, 그 시간의 차이점을 생각하며 글로 정리하는 동안 다시 문자와 가까워진 기분이다.
다음 읽을 책이 떠올라 도서관에서 소설을 몇 권 대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