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플 때 읽으면 위험한 집밥의 역사 - 맛깔나는 동서양 음식문화의 대향연
신재근 지음 / 책들의정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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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입이 짧은 데다 먹는 양도 많지 않았다. 엄마는 이런 나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였고 결국 음식에 대한 부정적인 추억만 남았다.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도 있고 양가 어머니들께서 해주신 음식 덕에 집밥의 소중함을 나는 모르는 것 같다. 나와 양가 어머니들과의 전쟁은 항상 음식의 취향 때문에 발발한다. 거기다 나는 김치찌개 하나를 끓이기 위해 가늘에 김장하고 마트에서 재료를 사는 등 여러 수고를 들여야 하는 요리를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내심 생각하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 음식에 대한 어린아이의 투정을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니, 이미 그 시기를 넘겼다. 지금이라도 음식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반성하고 음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집밥의 역사>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음식의 주재료들은 역사, 지리, 문화, 종교, 환경의 영향 등 인문학과 같은 연관이 있고 조리법은 과학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더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과 한 끼 먹을 때마다 음식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계 곡물 소비 순위 중, 왜 옥수수가 1위이며, 프랜 차일즈와 환경파괴의 관계, 유전자 변형과 품종 개량의 차이, 먹기 위해 동물을 유전자 변형을 하면 어떻게 될까 등 책에는 없는 부분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이야기 나누기 좋은 소재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가장 생각을 많이 한 부분은 집약적(공장형) 축산 방식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먹어야 한다. 효율적인 사료, 고속 성장률, 번식 능력, 가축의 성향, 계층적 구조에 맞는 축산 방식이라고 하지만 과연 현대화된 소고기 산업 방식뿐일까?

이 책을 통해 소, 돼지 동물에게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합성고기를 만드는 배양육을 알게 되었다. 배양육은 가축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78-96% 정도 낮고, 에너지 사용 총량도 7-45% 정도로 낮출 수 있으며, 토지 사용량은 1%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단 현재 상용화 하기에 가격은 3억 8천만 원에 달하고 맛 부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음으로 생각을 많이 한 부분은 집밥의 미래이다. 1인 가정과 노령인구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집밥보다는 외식과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 대체식)이 대세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확실히 예측 가능한 먹거리는 곤충, 배양육, 가짜 물고기, 3D 인쇄 식품 등을 소개한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설탕 농장의 비극을 읽으면서 '디저트'의 가슴 아픈 역사를 알게 되었다. 아시아의 디저트들은 타 인종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역설의 달콤한 맛이 아니었다는 점이 다행으로 여겨진다(160쪽)는 저자의 말에서 보신탕과 설탕의 역사를 비교하게 되었다. 과연 보신탕을 먹는 게 비인간적일까? 노예의 피, 땀, 눈물로 만들어진 설탕이 더 가슴 아픈 역사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쌍끌이 저인망의 폐해는 '수산 어종을 포획해갔다'는 것보다 '수산 환경을 파괴했다'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235쪽)는 저자의 글에서,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트롤 방식 어업 역시 먹거리를 위해 생태계를 파괴해도 되는지 질문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법안을 만들어 그물의 형태 및 크기, 그물눈의 크기, 조업 수심, 가능 지역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며 관리하는 데 반해, 중국은 마구잡이 포획 방식으로 치어까지 잡아들여 생태계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산 환경의 파괴 대안으로 바다 농장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고 나의 포부를 다지기도 했다. 나의 장래 희망은 바다 생물과 해양 생태계에 관심이 많은 막둥이와 바다 농장주가 되는 것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장래 희망이었는데 바다 농장의 운영 목적과 범위를 알게 되었다.

바다 농장은 저인망식 어업으로부터 어족 자원을 보호하고 안정적인 수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거대한 크기의 근해 양식을 말한다. 근해양식장을 깊은 바다로 이동시키면 수산양식업 생산을 확대할 수 있는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뿐 아니라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삼계탕과 영양탕의 뒤바뀐 운명'이다. 기르는 개를 의미하는 한자 인 犬 견자와 식용으로 사용하는 개고기를 의미하는 한자 인 拘 구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 강아지 이름을 '백구'나 '황구'로 짓는 것은 옛 뜻으로 나중에 개가 죽고 나면 먹겠다는 뜻이라니! 강아지 이름을 지을 때 '구'자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달력에 'R'자가 없는 5월부터 8월까지는 굴을 먹어선 안 되는 달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흥미 있었다.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식문화 중 불고기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내가 사는 곳이 언양이라 언양 불고기에 유독 눈길이 갔고, 야키니쿠는 우리나라 불고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변형되는 등 우리나라의 식문화는 일본의 음식 문화와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부분에서 음식이 노마드 여행자 같다.

또 우리나라 보다 태국 음식이 세계적으로 좀 더 명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푸아그라 요리는 들어보기만 했지, 가바주(강제 먹이 주입) 방식으로 거위의 간을 비대하게 키우는지는 몰랐다.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각 나라마다 음식의 사연도 참으로 다양했다.

조리학과 교수라는 직업은 가끔 주변인들에게 약간의 기대와 환상을 품게 만드는 듯하다. 예를 들어 주변 사람들과 고깃집을 가서 고기를 구울 때라든가 여행 중에 식당을 고를 때, 또는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는 등의 경우에 말이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지만 이럴 때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서 얼마나 잘 굽고, 고르고, 맛있는지 지켜볼 거야!'라고 기대하는 표정을 보게 된다.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 직업병처럼 부담감과 강박증이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ㄷ자연스럽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은 작은 사명? 을 느끼게 되는데, 고기 하나도 정성껏 구워 주변 사람들과 맛있게 먹고, 맛집을 고를 때도 신중을 기하여 가성비 좋은 곳을 고르며, 집으로 지인들을 초대할 때는 멋진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좋은 와인과 요리를 준비한다. 이럴 때면 꼭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 '요리가 직업인 분들은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나요?'라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남이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습니다!"

p222-223

한 접시, 두 접시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저자의 소소한 일상도 이야기 상에 함께 차려진다. 차려진 이야기 상에는 음식뿐 아니라 저자의 따뜻하고 평범하고 소탈한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 밥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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