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어 그리고 내가 사랑한 거짓말들
케이트 보울러 지음, 이지혜 옮김 / 포이에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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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세월은 아니지만, 100세 시대의 약 1/3 정도 시기를 살아오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겉치레의 인사말은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인사말이 있는데, 바로 장례식장에서의 인사말이다. 장례식을 비롯하여 심각한 병마와 싸우고 계신 분, 오늘의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라고 예상되는 어르신과의 만남은 장례식만큼이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 죽음을 위로할만한 만남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는데, 부모님도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어려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이러한 주제는 익숙해질 수 없는 소재인듯싶다.


이 책은 미국 번영 신학을 연구한 케이트 보울러의 책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번영 신학이 무엇인지 완벽한 이해는 하지 못하였지만, 지인 중 한 분이 " 하나님이 내 아버지면 내 대학 등록금도 내주셔야지, 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요. 대학 등록금을 저에게 주세요."라고 기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케이트 보울러가 공부했던 번영 신학이 이런 느낌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하나님이 내 삶에 멋진 계획을 가지고 계실 것이고, 나의 어려움은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실 거라 믿은 케이트 보울러에게 30대 중반에 갑작스러운 4기 암이 선고된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 장난감 트랙터를 가지고 놀 만큼 어린 나이였다. ' 우리 아들은 첫 이별을 나와 하겠구나.'라는 문장에서 케이트 보울러의 심정이 느껴졌다.

내가 신학자도 아니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입장도 아니다 보니 책의 내용이 완벽하게 공감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었다.



이번 달 초에 불국사로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중에 소리 명상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명상을 끝마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거사님께서 "아무리 천국이 좋고, 극락이 좋다고 해도,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에서 구르라는 말이 있듯이 현생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너무 먼 미래만을 위하지 말고, 오늘의 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나를 돌보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뭔가 찡했었다.

하루의 1/3은 잠을 자고, 1/3은 일을 하고, 나머지 1/3시간 동안 출퇴근 및 개인 시간을 가진다. 개인 시간에 아무리 행복을 찾더라도 매일 1/3의 비중을 차지하는 일하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으면, 하루의 행복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일을 함에 있어서 행복은 무엇일까? 지금 하는 일이 행복하지 않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나 가끔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삶의 마지막까지 크게 심호흡을 하고, 기도하고 일을 하라는데... 삶의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궁금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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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 출산율 제로 시대를 바라보는 7가지 새로운 시선
조영태 외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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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슬슬 압박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2년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년 후엔 과연 내가 어떻게 넘길지 모르겠다. 바로 가족행사가 있을 때 친인척들이 압박해오는 '결혼'이야기이다. 27살에서 28살이 되었을 때 가장 다른 점은 이제 어른들이 나를 보면 남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너무 자연스럽게 하시는 점이다.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아직 언제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혼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상을 해봤어야 언제, 어떤 사람과,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텐데 그런 상상을 해볼 겨를이 없었다. 어른이 된 나의 삶은 20대 초반을 신나게 즐기다가 졸업 준비로 피폐해지고, 졸업 이후 바로 취직을 해서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는 디자인 회사를 거쳐 이제 겨우 저녁의 삶을 즐겨볼까 싶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이조차도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곳이라 하루의 대부분이 {출근하는 시간-회사-퇴근하는 시간-녹초가 되어 뻗음}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생활 속에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단어는 아직 나에게 멀기만 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직 먼 이야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 중 결혼을 한 친구는 딱 두 명인데, 한 커플은 둘 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공무원 커플이고, 한 커플은 남편이 직업군인이라 나라에서 집을 지원해주었다.

이 책은 인구학, 진화학, 동물학, 행복 심리학, 임상심리학, 빅데이터, 역사학 총 7개 분야의 전문가가 각자 전문분야의 관점으로 저출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했던 건 마땅히 결혼해야 할 때인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청년들이 비혼주의, 비출산주의라고 말하는 것을 놀기 좋아하는 애들의 철없음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청년들의 스트레스와 감정적 밀도를 이해해주고 있다. 그래서 저출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얼마 전 졸업했던 대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경기도에 있는 학교지만 학교 주변에 논밭이 펼쳐진 풍경이 있어서 시골에 온 느낌이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 주변을 달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한 달에 생활비가 얼마나 들까? 시골에서 욕심 없이 살면 지금보다는 편안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괜찮지 않을까? '

별생각 없이 떠오른 생각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수도권의 밀도에 꽤 지쳐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내 스트레스를 조절하기 위해 운동도 하고,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 장소도 있고, 해소법도 가지고 있으며 소소한 것에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타입이라 책에서 말하는 긍정 정서 경험은 많이 하고 있는 편이지만 이것이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결혼에 대하여는 너무 많은 사회의 틀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꽤 20대 초반부터 결혼식을 작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공주님 드레스를 입을 필요도 없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단아한 원피스 정도를 입고, 하객들에게 맛있는 식사 한 끼 대접할 수 있는 장소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냅 촬영 정도는 하고 싶지만 스튜디오 촬영을 꼭 해야 할지 의문이 있었고, 신혼집도 가능하다면 원룸 두개로 해서 각자 옆집에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지금 생각하니 이건 조금 극단적이었던 상상이었다.) 남편은 나랑 이야기가 잘 통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하지만 몇몇 결혼식에 가서 하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조건이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의 학력, 회사, 가족의 재력, 신혼집의 위치, 신혼집의 형태, 결혼식장의 크기, 손님의 수, 예단, 예물, 혼수 등... 뭐 이렇게 타인의 결혼생활에 관심이 많은 걸까? 신경 끄고 흘려들으면 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나도 저 입방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결혼이라는 건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답답해졌다.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다시 큰 관문을 거치는 과정이다. 교육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어머니들의 고민을 많이 접하는 편인데, 이런 고민을 보면 볼수록 나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 책에서는 좋은 부모는 이래야 한다 당위적 신념이 너무 높은데 이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럭저럭 좋은 엄마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는 책의 내용이 이해되었지만, 나는 그래도 준비돼야 할 것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되기 전, 엄마에게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훈육, 교육관이 없으면 갈대처럼 흔들리기 좋은 것이 아이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무서운 게 옆집 엄마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엄마의 옆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오고 가는데 이 정보는 다 맞지도, 다 틀리지도 않는다. 이 정보를 우리 가정과 아이에게 맞는 방향으로 걸러서 듣고 행하는 중심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는 함께 대화를 나눌 남편의 역할도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키울 때 즈음이면 아이가 걸어가야 할 길이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지금보다 조금 더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가야만 성공한 삶이라고 보는 시선이 조금만 줄어든다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부모가 마음 편하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되면서도 한편 고민된 부분이었다. 좋은 직장이 지방에도 있다면, 나는 과연 내려가서 살 수 있을까? 서울만큼 좋은 직장이 있다면 주변에 인프라도 당연히 서울만큼 금세 좋아지겠지만 그 지방의 문화가 바뀌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그 지역의 입장으로 보면 바뀌어야 할 것도 아니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디선가 실험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성공사례가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저출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청년들의 삶을 우리보다 선배인 기성세대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책이었다. 이런 고민들이 모이면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알아서 지구의 자생능력에 맞춰서 세계적 추세가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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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 메뚜기, 불가사리가 그렇게 생긴 이유 - 생김새의 생물학
모토카와 다쓰오 지음, 장경환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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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 메뚜기, 불가사리 딱 들어보면 이 아이들은 어떤 공통점으로 책 제목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일으킨다. 바다생물이라고 하기에는 메뚜기가 있고, 성게와 불가사리가 곤충은 아닌 것 같고... 그러고 보니 성게와 불가사리는 어떤 종이라고 불러야 할까? 생각에 꼬리를 물면 이 책은 표지만으로도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동물이란?

이 책에서는 산호초, 곤충, 소라, 불가사리, 해삼, 멍게, 사지동물 등 다양한 동물의 세계를 소개한다. 동물이라는 단어는 움직일 동/ 물건 물이라는 한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생물은 모두 동물이라고 칭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산호초, 해삼, 멍게가 동물이라고 인식이 되지 않았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동물에 대하여 설명해주는데 현재 알려진 동물은 약 130만 종에 이르는데 그중 우리가 동물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많이 떠올리는 척추동물(사자, 호랑이, 코끼리 등)는 전체 동물의 5% 이하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외 대부분의 동물은 무척추동물이다. 내가 동물을 떠올렸을 때 생각한 척추동물들이 겨우 5%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동물이 훠어어어어어어어얼씬 많은 모양이다.


책의 구성

사실 나는 이 책을 완독하지는 않았다. 생물학이 재미있어서 골랐지만, 읽다 보니 너무 생경한 주제여서 단어가 어렵거나 내용이 상상되지 않아 집중력을 잃는 구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산호초, 곤충, 해삼, 멍게 부분만 읽었다. 생물학에 평소에 관심이 없었다면 생경한 단어들이 많은데 다행히도 이 책은 그림 자료가 아주 잘 삽입되어 있다. 그래서 조금 읽다 보면 그림으로 내용을 한 번 더 되새김질할 수 있어서 이해하기에 좋았다. 그림체도 과학 책 삽화스러우면서도 귀여운 일러스트 같기도 한 느낌이 들어서 매력 있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

책을 읽으며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해삼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해삼은 늘 횟집에서 멍게와 세트로 함께 먹어서 어떤 게 해삼인지 늘 헷갈렸는데 해삼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다시 먹어보고 싶어졌다.(인간이란 참 무서운 존재이다!)

음식 걱정도 없고, 포식자의 위협에도 별 걱정이 없을 해삼에게 유일한 두려움은 인간일까? 우리가 먹고 있는 해삼은 대부분 양식으로 길러지는 것일까? 다음 생에는 아주 깊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심해에 사는 해삼으로 태어나도 꽤 괜찮을 것 같다. 느릿느릿 생물체 같지 않은 속도로 움직이는 동물이지만, 그들 나름의 커뮤니케이션과 삶의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해삼은 모래 위에 산다. 모래는 도처에 있고 다른 동물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해삼은 먹이 위에 사는 셈이다... (중간 생략)... 해삼은 넓은 과자집을 독점하므로 먹을 기회를 놓칠 걱정이 전혀 없다. 그리고 해삼은 캐치 결합조직이나 독을 갖추고 있어서 포식자에 대한 걱정도 거의 없다. 즉 도망갈 걱정도, 먹이를 찾아 우왕좌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성게, 메뚜기, 불가사리가 그렇게 생긴 이유> p.236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

이 책을 읽으며 동물이라는 범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우리는 5%뿐인 척추동물을 동물의 범주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할까? 인간도 척추동물이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껴서일까? 나는 어린이 낱말카드와 동물원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이에게 동물카드라고 보여주는 것에는 대부분 척추동물만 담겨있다. 이는 어른들의 기준으로 어린이의 시야를 좁혀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아이의 낱말카드를 만든다면 나는 산호초도 넣고, 성게도 넣고, 해삼도 넣고, 소라도 넣고 더 다양한 동물의 세계를 아이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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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 산문집 2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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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에서 많은 사람과 만났고,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사람에 대한 글과 책에 관한 글을 모으니 책 한 권 분량이 넘는다.

사람의 평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좋은 만남은 나를 들어 올려주고, 이전의 삶과 구획 지어준다.

책 속의 짧은 일별로 나른하던 일상에 생기가 차오른다.

지금의 나는 이 같은 만남이 가져다준 변화와 소통의 결과일 뿐이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서문中, 정민, 김영사

이 책의 서문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학자라고 표지에 쓰여있지만, 사실 나는 정민 교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른 채 교수님의 산문집을 선택했다. 사람을 읽고 책을 만난다고 표현한 제목을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보니 정민 교수님은 책을 읽듯 천천히 요리조리 사람을 읽어내시고, 사람을 만나듯 책에 마음을 담아 하나하나 만나 오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교수님이 읽어오던 책 속의 몇백 년 전의 선학, 지금은 만나 뵐 수 없는 스승, 그리고 교수님이 읽어왔던 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전을 많이 안 읽어서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이나 책을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익숙한 이름은 벌써 십 년 전인 고등학생 때, 사회문화를 할까? 윤리를 할까? 고민하며 찔끔 접하고 국어 지문을 빨리 읽기 위하여 읽어보았던 고전문학 찔끔의 경험 덕분에 생각이 났다. 이 책에 나온 인물이나 책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내 생각과 교수님의 생각을 핑퐁 핑퐁 하며 더 재미있게 읽었겠지만,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감명받은 페이지들이 곳곳에 있었다.


오래된 벗이 먼 길을 떠나는데 친구를 위해 근사한 술자리 한번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할 때, 대나무 상자 속에 아껴둔 종이를 꺼내 작게 잘라서 공책을 만들고 그 안에 수백 수의 고시와 근체시를 적어 시집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 글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현하기 위한 가난한 친구의 마음에서 한 번, 친구의 진심을 느끼며 멀리 떠나는 친구의 마음에서 한 번. 어떤 입장이어도 절절하지 않을 때가 없었을 것 같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친구의 좋은 일, 슬픈 일에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마음을 전한다는 건 이렇게 정성을 담아야 하는데, 나는 요즘 너무 쉽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착각하였다.


정민 교수님은 대학교 4학년 때 이기석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고 한다. 8년 가까이 선생님을 모시고 한문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과 정민 교수님의 관계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유품정리 때 사모님이 선생님의 한자 옥편과 한적을 정민 교수님께 물려줄 정도로 각별했던 것 같다. 갑갑증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 될 때, 선생님의 산소로 달려간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나는 찾아뵙고 싶은 선생님 한 분을 찾지 못했다. 분명 좋은 선생님들도 많으셨는데, 이렇게 된 이유에는 내 성격이 한몫했다. 학년이 지나고 선생님을 찾아뵙기 쑥스럽기도 했고, 더 좋은 성적을 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에 내 현실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상황이 좋아지면 찾아봬야지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매년 담임선생님과 과목 선생님이 바뀌고, 대학입시라는 좁은 목표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 못 했던 게 지금은 참 아쉽다.

대학에 와서는 4년간 정말 좋은 교수님들을 많이 만나 뵐 수 있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장기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선생님과 교류하는 감정을 느껴보았다. 하지만 역시 취업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다시 소통을 막았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이건 정말 변명이지만 선생님을 찾아뵙기에는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보니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거의 없다. 회사의 선배는 존재하지만 선배는 선생님의 느낌은 아니다. 회사와 사적인 일상 이 분리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회사는 더욱 일만 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8년씩 선생님을 모시지 않으면 인생의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걸까? 내 평생에 정민 교수님이 선생님을 만나신 것과 같은 인연이 있을 수 있을지, 그런 인연을 위해서는 내가 가장 중요한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 바꾸어야 하는 것일지 생각이 많아지는 페이지였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해야겠다고 (실천은 참 어렵지만)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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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 - 신냉전 시대, 우리는 어떻게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김택환 지음 / 김영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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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책 편식이 있는 편이다. 평소에는 소설이나 에세이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 조금씩 역사, 정치 쪽에 관심이 간다. 이게 바로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 것인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평소라면 잘 안 읽을법한 <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이 너무 어려운 것 아니야?

친구들에게 책을 보여주었을 때 10명 중에 9명은 너무 어려운 내용이지 않냐고, 무슨 재미로 읽는 거냐고 물어봤다. (딱 한 명 재미있겠다고 반응해주고 궁금하다고 말한 건 남자친구뿐... 역시 내남친!) 제목이나 표지의 심플한 디자인이 어려운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28살 정치, 세계사는 1도 모르는 뽀시래기 독서인이 읽어보았을 때 느낀 소감은 정치나 세계사를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보았겠지만 잘 몰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국가 비전 전략가, 4차 산업혁명과 독일 전문가, 특강 강사 및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다는 김택환 님이 쓰셨는데 한국인이 쓴 책이어서 그런지 문체가 이해하기 쉽다. 외국 서적을 번역한 책일 경우 번역체가 정치, 역사서를 읽을 때 더 어렵게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하는데 이 책은 문체가 깔끔하게 떨어져서 이해하기 쉬웠다. 그리고 표와 그림 배치가 적절해서 책을 읽는 템포가 좋았다.




현재를 만날 수 있는 책

이 책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이 모두 현재 뉴스를 키면 볼 수 있을만한 최근의 이야기들이라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딱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국/중국/일본/러시아 4개 국가만 다루고 있어서 너무 광범위하지 않고 적당하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중국/일본/러시아를 바라본 시각은 정리되어 있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이 정리된 챕터는 없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아직 실권을 잡고 있는 정권에 대하여 평가한다는 것이 어렵겠지만 지은이의 관점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보일지가 궁금했다.




생각해볼 만한 내용

책을 읽으면서 혼자 상상에 나래에 빠진 지점들이 많았다. 독서모임을 한다면 재미있는 주제를 뽑아낼 요소가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모임에서 정치 쪽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 대화가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으로 가기 쉽긴 하지만 정치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 그리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등 생활에 관련되어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많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나만의 정치적 잣대나 소견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뽀시래기라 이런 방향으로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알아보고 싶은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쓴 <예정된 전쟁>이라는 책과 13억 중국인이 열광적으로 시청했다고 하는 12부작 <대국굴기>라는 다큐멘터리이다. 특히 대국굴기에는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 9개국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더욱 궁금하다. 책을 읽을 때 더 궁금한 점이 생기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책은 친구들과 함께 읽고 수다 떨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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