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 출산율 제로 시대를 바라보는 7가지 새로운 시선
조영태 외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슬슬 압박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2년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년 후엔 과연 내가 어떻게 넘길지 모르겠다. 바로 가족행사가 있을 때 친인척들이 압박해오는 '결혼'이야기이다. 27살에서 28살이 되었을 때 가장 다른 점은 이제 어른들이 나를 보면 남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너무 자연스럽게 하시는 점이다.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아직 언제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혼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상을 해봤어야 언제, 어떤 사람과,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텐데 그런 상상을 해볼 겨를이 없었다. 어른이 된 나의 삶은 20대 초반을 신나게 즐기다가 졸업 준비로 피폐해지고, 졸업 이후 바로 취직을 해서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는 디자인 회사를 거쳐 이제 겨우 저녁의 삶을 즐겨볼까 싶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이조차도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곳이라 하루의 대부분이 {출근하는 시간-회사-퇴근하는 시간-녹초가 되어 뻗음}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생활 속에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단어는 아직 나에게 멀기만 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직 먼 이야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 중 결혼을 한 친구는 딱 두 명인데, 한 커플은 둘 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공무원 커플이고, 한 커플은 남편이 직업군인이라 나라에서 집을 지원해주었다.

이 책은 인구학, 진화학, 동물학, 행복 심리학, 임상심리학, 빅데이터, 역사학 총 7개 분야의 전문가가 각자 전문분야의 관점으로 저출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했던 건 마땅히 결혼해야 할 때인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청년들이 비혼주의, 비출산주의라고 말하는 것을 놀기 좋아하는 애들의 철없음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청년들의 스트레스와 감정적 밀도를 이해해주고 있다. 그래서 저출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얼마 전 졸업했던 대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경기도에 있는 학교지만 학교 주변에 논밭이 펼쳐진 풍경이 있어서 시골에 온 느낌이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 주변을 달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한 달에 생활비가 얼마나 들까? 시골에서 욕심 없이 살면 지금보다는 편안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괜찮지 않을까? '

별생각 없이 떠오른 생각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수도권의 밀도에 꽤 지쳐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내 스트레스를 조절하기 위해 운동도 하고,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 장소도 있고, 해소법도 가지고 있으며 소소한 것에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타입이라 책에서 말하는 긍정 정서 경험은 많이 하고 있는 편이지만 이것이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결혼에 대하여는 너무 많은 사회의 틀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꽤 20대 초반부터 결혼식을 작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공주님 드레스를 입을 필요도 없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단아한 원피스 정도를 입고, 하객들에게 맛있는 식사 한 끼 대접할 수 있는 장소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냅 촬영 정도는 하고 싶지만 스튜디오 촬영을 꼭 해야 할지 의문이 있었고, 신혼집도 가능하다면 원룸 두개로 해서 각자 옆집에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지금 생각하니 이건 조금 극단적이었던 상상이었다.) 남편은 나랑 이야기가 잘 통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하지만 몇몇 결혼식에 가서 하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조건이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의 학력, 회사, 가족의 재력, 신혼집의 위치, 신혼집의 형태, 결혼식장의 크기, 손님의 수, 예단, 예물, 혼수 등... 뭐 이렇게 타인의 결혼생활에 관심이 많은 걸까? 신경 끄고 흘려들으면 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나도 저 입방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결혼이라는 건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답답해졌다.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다시 큰 관문을 거치는 과정이다. 교육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어머니들의 고민을 많이 접하는 편인데, 이런 고민을 보면 볼수록 나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 책에서는 좋은 부모는 이래야 한다 당위적 신념이 너무 높은데 이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럭저럭 좋은 엄마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는 책의 내용이 이해되었지만, 나는 그래도 준비돼야 할 것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되기 전, 엄마에게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훈육, 교육관이 없으면 갈대처럼 흔들리기 좋은 것이 아이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무서운 게 옆집 엄마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엄마의 옆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오고 가는데 이 정보는 다 맞지도, 다 틀리지도 않는다. 이 정보를 우리 가정과 아이에게 맞는 방향으로 걸러서 듣고 행하는 중심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는 함께 대화를 나눌 남편의 역할도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키울 때 즈음이면 아이가 걸어가야 할 길이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지금보다 조금 더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가야만 성공한 삶이라고 보는 시선이 조금만 줄어든다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부모가 마음 편하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되면서도 한편 고민된 부분이었다. 좋은 직장이 지방에도 있다면, 나는 과연 내려가서 살 수 있을까? 서울만큼 좋은 직장이 있다면 주변에 인프라도 당연히 서울만큼 금세 좋아지겠지만 그 지방의 문화가 바뀌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그 지역의 입장으로 보면 바뀌어야 할 것도 아니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디선가 실험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성공사례가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저출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청년들의 삶을 우리보다 선배인 기성세대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책이었다. 이런 고민들이 모이면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알아서 지구의 자생능력에 맞춰서 세계적 추세가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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