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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 그 해 여름
김성문 지음 / 서울문학출판부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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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품고 있는 여러 모습들 중에서 하나를 잔잔하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소설이다.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고 막연히 생각했지 막상 이 소설에서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사뭇 놀라움을 갖게 되었다. 내 짧은 생각에는 인생에서 사랑을 하는 시기는 유효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다지 많지도 않은 나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면 깊숙한 곳에 가둬뒀던 것이 사실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사랑은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사랑은 피 끓는 이십 대에나 하는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여 서른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억누르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사랑을 하는데 유효기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하는데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사춘기 때나 느껴 봄직한 설레임 역시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익숙한 감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불 같은 사랑만이 유일한 사랑이라고 결론지으며 사랑은 열정적인 키스와도 같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왔으며, 정렬이 빠진 후에 하는 그 어떤 것도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책의 제목을 보면서 과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제목만으로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사랑의 느낌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까지도 사랑에 관해 그 어떤 감흥도 없었고, 내용도 공감하지 못했다. 그저 그런 시시한 이야기려니 생각하면서 책을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졌다. 주인공들이 50을 넘어선 인물이라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푸릇푸릇한 20, 30대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설레임을 느끼기에는 세상을 너무 많이 아는 중년의 사랑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나 인생에 대해 충분한 경험이 있는 노련한 나이임은 틀림없다. 그런 그들이 사랑을 하면서 설레이는 감정을 느꼈다는 자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을수록 잔잔하게 밀려오는 사랑의 느낌은 책 밖의 내게도 전해져 왔다. 그들이 느끼는 몸짓하나 섬세한 감정까지도 머릿속에서 그려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사랑의 시작은 파릇파릇한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대생이던 남자는 우연한 계기로 한 여자에 대해 지독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물론 여자는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사건 이후로 남자의 지독한 짝사랑이 30년 동안 지속되며 남자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게 된다. 물론 30년 후에는 사랑의 빛을 보게 되는 아주 무서운 야기니까 말이다. 어찌 보면 남자의 무서운 집착의 승리랄까, 하지만 글속에서는 그 남자의 사랑이 무섭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책의 첫 부분을 읽으면서 이야기 전개에 적응을 못했다. 인물의 이름을 다 기억했다면 이해하는데 수월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을 파악한 것은 책 후반부에 들어서이다. 그러다 보니 여자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 전개에 내용이 헷갈렸던 것은 사실이다. 바보 같았지만 이야기가 붕 뜨는 느낌이랄까, 제대로 줄거리의 흐름을 잡지 못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을 책의 중반부터는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다. 은근한 매력이 있다고 할까, 인생이나 사랑에 노련한 주인공들처럼 이 책 전반에 깔려있는 은근함은 책 속에 빠져들게 하는 또 다른 요소이다.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이 책 역시 수많은 사랑 중에 하나를 가슴 뭉클하게 그려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앞으로 경험할 수도 있는 느낌을 저자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저 그런 풋사랑의 기억이 아니라 인생이 녹아있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그저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밖에는 방법이 없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 또한 많이 바뀌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외적인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는 사랑을 위해서는 물질적인 요소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냥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우리 가족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