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치야 깐치야
권정생 엮음, 원혜영 그림 / 실천문학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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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치야 깐치야

 

 

<민들레와 강아지똥>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받았던 권정생선생님의 동요집을 아주 모처럼 읽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아주 따스해졌습니다. 동요, 동화는 어린아이들만 읽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생각이 바뀔 만큼, 이 동요집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딸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아주 오랫동안 잔잔하게 여운으로 남던 이야기 때문인지...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선생님 책이 보이면, 꼭 꺼내 읽어보곤 했더랬습니다. 발문을 읽으면서 참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귀한 원고를 가져가서는 소식이 없다는 글귀를 읽을 때는 가슴이 참 많이 아팠네요. 부디 이 글을 읽는 해당 출판사는 그 원고를 세상 밖으로 내어놓으시길 양심에 대고 기도합니다.

 

깐치야 깐치야

내 눈에 가시든 거

꺼내 다고

니 새끼 웅굴에 빠진 거

건녀 주마

졸뱅이로 건질까

뜰뱅이로 건질까

헛 쉿!

 

- 깐치야 깐치야 - 전문

 

안동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린다. 직접 선생님께서 채집해서 들려주는 동요가 다정하기까지 하다. 시골 마을에 가면 이와 비슷한 동요들을 부르곤 하던 어린 시적이 생각난다. /앞니 빠진 갈가지/ 앞 또랑에 가지마라/ 붕어새끼 놀래죽는다/ ... 라던 노래와 /두꺼바 두꺼바/ 새 집 지어줄께/ 헌 집 나 다오/ ... 라던 리듬이 입속에서 머릿속에서 맴맴도는 것은 무슨 일일까?

 

헝글레야 헝글레야

방아찧라 방찧라

싸래기 받아 떡해 줄게

 

-방아깨비- 전문

 

이 노래도 비슷한 구절이 희미하게 나마 생각난다. 방아개비를 잡아서 두 다리를 잡아서 들어올리면 몸을 굴르며 손에서 벗어나고파 하던 방아개비, 녀석은 정말 노래에 맞추어 방아를 찧는 시늉을 하곤 하였다. 동요집을 읽는 내내 애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운 시인의 마음에 전해오는 듯하다. 애닮으면서도 시골냄새 물씬 나는 노랫말들이 구수하게 들려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지천으로 깔려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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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대처하는 10가지 태도 - 이순신과 9명의 승부사들
이희진.장준호 지음 / 아름다운날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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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대처하는 10가지 태도

 

 

 

요즘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임진왜란 때 선조와 이순신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왜 나는 자꾸만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순신을 떠올리는 것일까? 아마도 어려운 시대는 있고, 그 어려운 시대를 이겨나가는 모습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영웅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백성을 사랑으로 책임을 이끌고 나가는 위정자가 그리워서일까?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각박해진 상황 속에 이순신 같은 영웅 내지 리더를 학수고대하는 마음 때문일까?

 

이순신은 타고난 영웅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고의 결과를 낸 사람이다. 임진왜란이란 난세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았던 전란은 그를 백척간두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위대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1591(선조24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전라도 좌수사에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라좌수영 본영과 예하 부대의 군비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관할 지역을 직접 점검하고 관리 소홀로 규정 위반이 있을 때는 각 진의 첨사와 군관, 담당 관리와 자인까지 처벌하였다. 평상시 자기가 맡은 임무에 소홀함이 없이 엄격한 자세를 갖게 했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의 형평성과 일관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거북선을 새롭게 건조하여 언제일지 모르는 전란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1592415일 일본군 침략 소식이 전해졌다.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원 요청을 했다. 이순신은 구원 출정을 다음 전 해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첫째 전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차단하는 것, 둘째 지휘관 스스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과 군사들에게는 필사적으로 싸워야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장수로서 책임감과 임무수행자로서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전투를 지휘해야할 자신이 두려움이나 혼란에 빠지면 군 전체가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군의 침략상을 군사들에게 환기시켜 왜적들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냄으로써 적을 응징해야 한다는 전투의 동기를 심어주었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출전하되 물러서서 장수에게 군법의 지엄함을 보여 출정을

독려하였다. 이러한 태도를 엄수하면서 전쟁에 임해 매 전투마다 승리할 수 있었다.

 

선조는 자신이 살아야 조선도 있었다. 선조는 조선을 버리고 의주까지 몽진을 갔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 결국 후손들은 이순신을 난세의 영웅으로 알았고 선조는 비겁한 군주로 생각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행운이었을까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배신을 당한 그 순간, 순간 포착을 잘 잡아 오다 노부나가의 권력을 차지한 그는 일본을 통일하였다. 히데요시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막부와 쇼군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을 때, 스스로 힘을 키워 슈고다이묘를 쓰러뜨리고 지역을 독자적으로 지배하는 세력, 센코쿠다이묘이다.

 

히데요시 그는 주군의 눈에 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마침내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 후 그의 행보는 입지전적인 인물에게 갖게 되는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신분에 따라 거주지를 제한했고, 농민들의 무기 소지를 제한하여 자신과 같은 신분의 사람들이 자신처럼 출세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았다. 민초들이 힘을 합하여 권력에 저항할 길을 막았다. 거기다가 조선침공을 무리하게 감행해 내부의 불만과 위기를 외부로 화살을 돌려 잠재우려 했다. 7년을 끌다가 그의 죽음으로 허망하게 끝나버린 임진왜란, 히데요시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고 이를 개인적 욕망을 위해 이용했던 인물 이상 아무것도 아녔다.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장거정이라는 명재상을 기용하여 재위 10년 동안 국가 기강을 바로잡고 국가 재정을 튼실히 하여 쇠락하는 명나라 활기를 불어넣은 군주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복잡하고 냉혹한 정치 현실에 정치적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국내외 발생한 변란에 재력, 인적 재원을 소비하며 쇠락해 결국 후금하게 나라를 내주고 만다.

 

류성룡은 전란을 맞아 후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관료였다. 군주의 질책과 붕당세력들의 견제, 탄핵, 실각 등의 정치적 파란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나라를 위한 충성심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무했다. 통신사에 대한 잘못된 그의 판단, 그것이 임란의 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면 주변의 신망이 두텁고 백성들의 존경과 신뢰가 두터울수록 반대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지속적인 견제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왕조차도 내외의 신망이 두드러지는 자를 경계하기 마련이다. 선조는 임란의 책임을 재상에게 떠맡겼고 관료들은 책임 문제를 권력투쟁에 이용하였다.

 

 

신립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지만, 류성룡을 비호하는 세력과 대립하면서, 아무도 나서려하지 않는 전쟁터를 류성룡이 나가겠다고 하자 신립이 경험 없는 문신들이 상전 행세를 하면서 부대를 인솔하려는 것을 반대하였다. 류성룡의 예상이 맞아떨어지자, 신립을 그들은 오합지졸을 안겨 전쟁터로 내보냈다. 정작 죽을 자리로 신립을 보낸 것이다. 결국 신립은 충주까지 내려가면서 심각한 고민을 하였다. 훈련된 병력을 가지고 어떻게 일본군을 막아내느냐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밀리고 밀려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일본군을 맞아 전쟁에 패했다는 말은 정장인 고니시까자 바보로 만드는 발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 일본 조총은 화약에 불을 붙여 장전해서 쏘면...화살보다도 느렸다고 한다. 조총 때문에 전쟁에 졌다는 말도 어쩌면 맞는 말이 아니란다. 신립만 배수진을 쳤다고 몰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편견을 만드는 꼴이라고 저자는 말이다. 이 전쟁이 신립이 잘못했다기보다 고니시가 압도적으로 전략을 잘 활용하여 선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나의 이익이 주군의 뜻보다 우선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이묘에서 성장하였다. 반대하던 전쟁 선봉장이 되었지만, 그는 전쟁을 서둘러 끝내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했다. 최대한 주군의 뜻을 관철시켜야 하는 협상에서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협상의 상대와 짜고 자신의 주군을 속이는 일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무모한 것이었고 결국 실패했다.

 

만력제의 희망이던 이여송은 실리가 없으면 싸우지 않았다. 1952년 이여송에게는 명 제국의 명운이 달렸다. 그해 이월 영하에서 몽골 출신 보바이 난을 평정해, 이여송은 만력제의 희망이었다. 그러던 그가 임란 때 조선으로 파병되어, 평양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그러나 벽제관 전투에선 일본군에게 패하였다.

 

이여송에게는 보바이 난을 진압하던 용맹스런 장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 국왕과 대신들로부터 조선을 구한 영웅으로, 신격화된 존재로 남았다. 그것은 조선의 위정자들이 그를 임진왜란으로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임란을 통해 바라본 역사 속의 인물들이, 새삼스럽게 다른 인식의 척도를 갖게 만든다. 각자 입지에 따라 난세를 극복하는 방식이 다 달랐다.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전쟁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 새로운 의견들을 읽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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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지적 성과를 내는가 - 글로벌 컨설팅 펌의 지적 전략 99
야마구치 슈 지음, 이현미 옮김 / 인사이트앤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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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지적 성과를 내는가

 

 

첫장을 탁 열었다.

정보 수집은 미뤄라. 어떻게 고객의 생각과 차별화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나간다.

 

지적인 산출물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고려하라. 고객의 생각과 차별화를 하라. 여기서 고객은 지적 산출물의 수요자를 말한다. 상사나 타부서 사람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라. 차별화 대상은 고객이 이미 보유한 지식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자.

 

지적 성과의 수요자가 무엇을 어띠까지 알고 있는지 이해한 다음, 어덯게 해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 지적 생산 활동에 돌입하면 열심히 해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수집해야할 정보의 종류는 넓이와 깊이 중 어디에서 승부를 낼 것인지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정보 수집에 들어가기 전에 넓이에 깊이 중 어디에 승부를 걸 것인지 방향을 확실히 하자.

 

새로운 어떤 것과 깊이 있는 어떤 것을 판단할 때 누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수요자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마케팅의 틀에서 설명하면, 지적 산출물을 구매하는 고객을 분명히 해두자는 말이다.

 

누가 고객인가를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목표가 되는 품질 수준은 설정할 수조차 없다. 지적 산출물을 받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한 다음, 그 사람이 무엇에 부가가치를 느끼는 사람인지 확실히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마케팅 기본 전략이지만 대상에 대한 지식이 넓으면 넓을수록 메시지는 예리한 맛을 잃는다. 지적 산출물을 받는 고객은 누구인가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고객을 명확히 알았다면, 그 고객이 어떤 지적 성과를 원하는지 분명히 해야한다. 바꾸어 말하면 고객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가?이다.

 

이제 지적 성과에 요구되는 품질 목표이다. 이것은 생산자가 제품을 개발할 때부터 품질을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적 산출물의 품질 목표에 따라 프로세스의 첫 단계인 정보 수집과 분석 공정 수준도 결정된다.

 

지적 초기 단계에서 고객이 요구하는 풀빌 수준을 명확히 하자.

요구되는 지적 산출물의 품질과 규격 목표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지적 생산을 위헌 작업 프로세스는 설계할 수 없다.

 

품질 목표가 설정되면 다음에 분명히 해야하는 것은 <주어진 시간>이다. 언제까지 지적 산출물을 제시해야 하는가를 확인하는 단계이다. 이때부터 무엇보다 피해야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가능한 한 빨리...>라는 기간이다

 

저자의 생각들을 가만히 귀 기울이는 동안 평소 지적 결핍 같은 열등의식이 있던 내게... 차근차근 일러주는 저자의 위와 같은 내용들은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다. 공부하는 남편에게도 딸에게도 친구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우리들은 때때로 지적 작업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단 한 권의 책이 그 공포를 해소해준다면 기꺼이 나는 사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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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大전환, 한국의 大기회
전병서 지음 / 참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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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전환, 한국의 대기회

 

  중국은 장강 이남과 이북으로 나누어 보면 이북은 정복자 기질이고 이남은 장사군 기질이다. 북방사람들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문화적 우월감이 있다. 토지와 기후는 상당히 열악해서 사회 전반적인 발전 수준이 남방보다 뒤떨어져 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생존을 위해 정복자 기질을 갖고 있다. 중국의 역대 왕들은 대부분 북방의 사람들이다. 거의 남방 출신은 없다.

반면 남방 사람들은 상인들이 많다.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사근사근하다. 부유한 계층은 다 이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고의 부자들은 다 이남에 모여 있다. 160년 전 양쪽 사람들이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지금 중국 최고의 두뇌와 장사꾼이 뭉쳐진 곳이 상하이이다. 중국과 외교를 하려면 베이징 관리들과 친해져야 하지만, 장사를 하고자 한다면 상하이 상인과 친해져야 한다.

전쟁을 오랫동안 겪었던 나라인 만큼 전쟁문화가 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 중국 상인 머리는 보통 사람보다 8개나 더 많은 머리가 있다 한다. 그들에게는 머리가 9개 달린 상상의 새가 있다. 머리 한 개인 새보다 9개 달린 새가 더 영리하다는 생각에서 만들어 낸 새다. 전쟁 속에 살았던 민족답게 모략과 음모, 책략의 나라이다. 13억이 서로 치고받다보면 상대를 쓸어 넘어뜨리는 방법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사회주의 탈을 쓴 자본주의 나라이다. 마오쩌뚱의 어설픈 서방 따라잡기 덕분에 중국은 생고생을 했다. 마오쩌뚱은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이다. 농업사회 주력인 농민들을 자본주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편이었을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와 다른 체제를 선택한 것은 서구 자본주의 체계의 지배 하에서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서구 자본주의를 채택한 아시아 국가들의 농민과 농업사회는 모두 파괴되었다. 공업화를 이룬 나라들도 공업화의 선진국, 미국과 유럽의 손아귀에 놀아났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택한 것은 레닌-마르크스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중국의 기반이자 강점인 농업을 공업화된 자본주의로 넘겨주지 않기 위한,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에서 커닝의 도사, 베끼기의 도사이다. 비록 사회주의 체제였지만 속으론 자본주의를 도입했다. 중국은 30년 만에 자본주의를 따라잡았다.

 

  무늬만 사회주의인 중국 이제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세계에 우뚝 서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억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등에 진 이들, 우리는 결코 그냥 스쳐지나가서는 안 된다. 난세에 영웅이 나고 불황에 거상이 난다. 결국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고 궁핍은 부자가 되는 기회였다.

 

  현재 우리들은 문화 아노미, 정보의 아노미, 정치의 아노미,...아노미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머릿속이 혼미하다. 활과 화살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방패를 뚫는 힘이 나오지만, 새로 나온 활과 화살을 어떻게 조합해 쏘는지를 모르는 혼돈의 시대에는 이리저리 마구 조합해보는 것이 답이다.

 

  지금 아담 스미스 분업이론을 신봉하고 케인스와 시카고학파를 따라 한 미국과 유럽은 거덜 났고, 공자와 맹자를 신봉하고 빚을 알기를 호랑이처럼 안 아시아는 멀쩡하다. 지금 아담 스미스는 죽었고 공자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인문학이 유행하면 난세이다. 요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인문학이 대유행이다. 인문학이 유행하는 것은 세상이 어려울 때다. 신기술이 등장해 세상이 복잡할 때 인문학이 등장한다. 풀을 먹던 말이, 석유를 먹고, 석유를 먹던 말이 전기를 먹던 말이 이젠 무선전파를 먹는 시대, IT산업화 시대이다.

 

  전 세계 반도체와 컴퓨터, 휴대폰을 만들어주던 서비스 하청공장 중국이 이젠 IT 세계 최대 시장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숙원사업으로 부흥을 시켰던 부분이 IT산업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일으켜 세워놓은 기회를 어떤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가 말아먹었다. 대한민국 IT산업 혁명을 쓰레기통에 밀어 넣은 어리석은 대통령...지금도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지금쯤 1위를 달리고 있어야 할 경제적 혁명까지 몰고 올 수 있었던 기회를 우리는 닭좇던 개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더 이상 우리는 IT 강국이 아니다. 대통령이던 하급 공무원이던 뭔가 아는 사람이 수장을 해야 한다. 숫자,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대통령이라면 그 밑에 하수인들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들이 대통령을 수반했더라면 우리는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대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자격 미달의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아서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일속에 파묻혀 고단한 시대를 살아간다. 부디, 도장을 잘 찍어야 한다. 세계의 경쟁의 심오함 속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으려면 경제적으로 지식적으로 아주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아주 예리하게 중국의 미래와 한국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거대한 대국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열변을 토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두 손이 주먹을 쥐었다가 손뼉을 치다가 책상 앞을 서성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과연 한국이 어떻게 중국을 이제 따라잡아야 할까... 저자는 제조업, 주식, ... 이것 저것 이야기하면서 중국을 날아오르는 용으로 표현을 한다. 과연 우리는 용을 어떻게 요리해야할까?

 기후는 상당히 열악해서 사회 전반적인 발전 수준이 남방보다 뒤떨어져 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생존을 위해 정복자 기질을 갖고 있다. 중국의 역대 왕들은 대부분 북방의 사람들이다. 거의 남방 출신은 없다.

반면 남방 사람들은 상인들이 많다.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사근사근하다. 부유한 계층은 다 이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고의 부자들은 다 이남에 모여 있다. 160년 전 양쪽 사람들이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지금 중국 최고의 두뇌와 장사꾼이 뭉쳐진 곳이 상하이이다. 중국과 외교를 하려면 베이징 관리들과 친해져야 하지만, 장사를 하고자 한다면 상하이 상인과 친해져야 한다.

전쟁을 오랫동안 겪었던 나라인 만큼 전쟁문화가 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 중국 상인 머리는 보통 사람보다 8개나 더 많은 머리가 있다 한다. 그들에게는 머리가 9개 달린 상상의 새가 있다. 머리 한 개인 새보다 9개 달린 새가 더 영리하다는 생각에서 만들어 낸 새다. 전쟁 속에 살았던 민족답게 모략과 음모, 책략의 나라이다. 13억이 서로 치고받다보면 상대를 쓸어 넘어뜨리는 방법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사회주의 탈을 쓴 자본주의 나라이다. 마오쩌뚱의 어설픈 서방 따라잡기 덕분에 중국은 생고생을 했다. 마오쩌뚱은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이다. 농업사회 주력인 농민들을 자본주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편이었을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와 다른 체제를 선택한 것은 서구 자본주의 체계의 지배 하에서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서구 자본주의를 채택한 아시아 국가들의 농민과 농업사회는 모두 파괴되었다. 공업화를 이룬 나라들도 공업화의 선진국, 미국과 유럽의 손아귀에 놀아났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택한 것은 레닌-마르크스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중국의 기반이자 강점인 농업을 공업화된 자본주의로 넘겨주지 않기 위한,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에서 커닝의 도사, 베끼기의 도사이다. 비록 사회주의 체제였지만 속으론 자본주의를 도입했다. 중국은 30년 만에 자본주의를 따라잡았다.

 

  무늬만 사회주의인 중국 이제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세계에 우뚝 서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억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등에 진 이들, 우리는 결코 그냥 스쳐지나가서는 안 된다. 난세에 영웅이 나고 불황에 거상이 난다. 결국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고 궁핍은 부자가 되는 기회였다.

 

  현재 우리들은 문화 아노미, 정보의 아노미, 정치의 아노미,...아노미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머릿속이 혼미하다. 활과 화살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방패를 뚫는 힘이 나오지만, 새로 나온 활과 화살을 어떻게 조합해 쏘는지를 모르는 혼돈의 시대에는 이리저리 마구 조합해보는 것이 답이다.

 

  지금 아담 스미스 분업이론을 신봉하고 케인스와 시카고학파를 따라 한 미국과 유럽은 거덜 났고, 공자와 맹자를 신봉하고 빚을 알기를 호랑이처럼 안 아시아는 멀쩡하다. 지금 아담 스미스는 죽었고 공자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인문학이 유행하면 난세이다. 요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인문학이 대유행이다. 인문학이 유행하는 것은 세상이 어려울 때다. 신기술이 등장해 세상이 복잡할 때 인문학이 등장한다. 풀을 먹던 말이, 석유를 먹고, 석유를 먹던 말이 전기를 먹던 말이 이젠 무선전파를 먹는 시대, IT산업화 시대이다.

 

  전 세계 반도체와 컴퓨터, 휴대폰을 만들어주던 서비스 하청공장 중국이 이젠 IT 세계 최대 시장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숙원사업으로 부흥을 시켰던 부분이 IT산업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일으켜 세워놓은 기회를 어떤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가 말아먹었다. 대한민국 IT산업 혁명을 쓰레기통에 밀어 넣은 어리석은 대통령...지금도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지금쯤 1위를 달리고 있어야 할 경제적 혁명까지 몰고 올 수 있었던 기회를 우리는 닭좇던 개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더 이상 우리는 IT 강국이 아니다. 대통령이던 하급 공무원이던 뭔가 아는 사람이 수장을 해야 한다. 숫자,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대통령이라면 그 밑에 하수인들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들이 대통령을 수반했더라면 우리는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대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자격 미달의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아서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일속에 파묻혀 고단한 시대를 살아간다. 부디, 도장을 잘 찍어야 한다. 세계의 경쟁의 심오함 속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으려면 경제적으로 지식적으로 아주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아주 예리하게 중국의 미래와 한국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거대한 대국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열변을 토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두 손이 주먹을 쥐었다가 손뼉을 치다가 책상 앞을 서성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과연 한국이 어떻게 중국을 이제 따라잡아야 할까... 저자는 제조업, 주식, ... 이것 저것 이야기하면서 중국을 날아오르는 용으로 표현을 한다. 과연 우리는 용을 어떻게 요리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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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의 키워드로 읽는 자본주의 이야기 - 산업혁명에서 피케티까지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시리즈
김민주 지음 / 미래의창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자본주의 이야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 자연스레 공산주의가 나타나는 체제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며 어느 정도 사유재산을 국유화하자는 사회 민주주의는 유럽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점점 확산되었다. 그러나 영국 같은 경우 과도하게 진행하면서 경기 침체기를 맞아, 다시 1979년 집권한 보수당이 국유 기업의 민영화로 경제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영국은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을 다시 찾았다. 반면 자본가의 파워가 워낙 크던 미국은 공산주의가 발붙이지 못하면서 자유 자본주의 국가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미국식 사유재산 제도를 취하고 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2008년 미국경제 위기로 그 위세가 크게 꺾였다. 자유 시장경제는 국가의 경제 개입을 가능하면 최소화하려는 것이지만, 현재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혼합경제를 채택한 나라가 많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나라이던 자본주의 장점을 따고, 사회주의 장점을 따서 혼합경제를 추구한다. 표면상으로 사회주의 장점을 차용한다고... 주장할 수 없어 혼합경제라는 용어를 쓴다. 선진국을 보면 자유 시장경제보다 정도는 차이만 있지, 대부분 혼합경제이다. 공교육, 교통 인프라, 사회보장이 그 대표적이다. 또 경제 운영에 있어서도 민간의 자율에 맡겨두면 호황, 불황의 사이클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고 게다가 그 폭이 너무 깊어서 정부가 재정 정책이나 금융 정책을 통해 실업이나 물가를 조절해야만 했다.

  

  역사에 따른 사회 변화 양상은 지속적인 성장을 수반하기도 하고 어떤 변화는 발전 양상 없이 되풀이되는 순환이나 변동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 또 성장과 변동이 뒤섞여 일어나기도 한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로 경기 변동은 경제 성장과 경기 순환이 뒤섞이며 이루어진다. (P.72)

 

  콘드라티예프 사이클로 명명 되어진 전 세계 경기순환 사이클을 공부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인류가 겪어온 경제 순환 역사를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보았을까, 1600~2035년까지 조명하고 있는 이 순환 사이클을 우리는 공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잘못된 과거의 피해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자는 차원에서이다. 경제적 순환 사이클도 나는 그렇게 본다. 우리 미래에 닥쳐올 재난을 미리 준비하고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는 1, 2, 3차 산업으로 넘어가며 다양한 분류 방법이 등장한다. 월리엄 페티와 콜린 클라크에 의한 산업구조, 급성장한 인도 같은 경우는 맞지 않는다. 인도의 경우 지식인 계층이 뚜렷해 일부 교육 수준이 놓고 해외 유학생이 많다. 이들이 주로 첨단 분야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인도 제품들이 경쟁력이 낮아 해외 수출이 별로 없다. 인도는 IT, 제약, 의료, 영화 산업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설득 산업, 광고 대행사, 홍보 대행사, 마케팅 회사, 법률 회사, 금융 설계사, 펀드 레이진, TV 홈 쇼핑, 콜센터, 로비업체,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 이미지 컨설팅 업체, 카우슬링 회사.

 

  자본주의를 만든 혁명 중에는 인쇄혁명부터 시작해서 정보통신 혁명까지 참으로 어마어마한

혁명들이 일어나면서 자본주의는 발달해왔다. 또 자본주의를 만든 핵심 산업으로는 면직부터...커피까지 자본주의를 만든 핵심 산업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를 만든 유대인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존 메어너드 케이스, 존 데이비슨 록펠러...등을 읽으면서... 긴 여정을 책을 통해 자본주의 역사로 읽었다.

이처럼 자본주의에 대해서 읽는 동안 그동안 혼미한 안개 속에 헤매던 이 자본주의에 대해

뚜렷하게 이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젠 우리가 살아야 하는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대응해서 살아가는 태도, 정신을 제대로 챙겨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중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이 제일 부럽다. 특히 스웨덴 복지시설과 함께…….

"스위덴 사민당은 65년 장기 집권을 했다. 사민당은 스웨덴 노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사민당 정부는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대신 노동자는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로서 사민당을 충분히 지지했다. 스웨덴 노조 가입은 77%이다. 이렇게 노조 가입률이 높기 때문에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10%에 불과하다. 1989년에는 19.8%였는데 산업구조가 제조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변화했고 실업률 증가로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재 노동 시스템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갈라져 있다. 이 구조는 사회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벌써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노조 결성으로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 조건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불만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어 정치적 세력화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북유럽처럼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았다면 우리의 노동 사회는 더 없이 행복하였을 것이다. 미국, 일본, 한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은 상태로 언제까지 이 체제가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스웨덴처럼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나는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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