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 - 역사의 고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어떻게 탄생했나
도널드 케이건 지음, 박재욱 옮김, 한정숙 감수 / 휴머니스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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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uchydides-The Reinvention of history로 '투퀴디데스, 역사를 재발명하다' 정도의 제목이 될 것이다. 역사의 아버지가 헤로도토스라면 케이건은 투퀴디데스가 '정치사의 아버지'(343쪽)라 생각하는데, 헤로도토스가 역사라는 학문을 발명했다면 투퀴디데스는 이를 정치사라는 측면에서 '재발명'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투퀴디데스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mythos)로서의 역사를 배격하고 엄격한 사실주의 역사를 창조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술한다는 그의 저술 원칙은 랑케의 'Wie es eigentlich gewesen'으로 이어져 이 책에도 언급되었듯 20세기에 이르도록 객관성을 가장 중요한 역사기술의 원칙으로 생각한 모든 역사가들의 표본이라 지칭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케이건은 이러한 통상적인 평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투퀴디데스가 '강력한 수사적인 기술'(338쪽)을 발휘하여 당대에 통용되던 전쟁의 원인과 결과 및 이와 결부된 여러 평가들을 수정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투퀴디데스가 뒤집으려 시도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페리클레스에게 패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쟁 패배의 실제적인 책임은 아테나이 민주정의 오만과 탐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투퀴디데스는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하거나 심지어 왜곡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아테나이인들이 시켈리아의 자세한 사정을 모른다는 주장이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퀴디데스의 서술 방식이 현대의 증거주의에 입각한 객관적 서술방식과 다르다고 하여 이를 '거짓'이라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다. 우선 사실 관계의 습득 자체가 당대 사람들의 구전에 의존했었기 때문에 문서 증거를 풍부하게 습득할 수 있는 근현대와 사정이 전혀 달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그가 '그때 그때 상황이 요구했음직한 발언'을 자신의 연설 인용 방식으로 스스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건(ergon)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는 주장하면서도 사건의 원인을 '숨겨진 진짜 원인(alethestate prophasis)'과 '알려진 이유(aitia)'로 나누는 태도가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즉 투퀴디데스는 '숨겨진 진짜 원인'이 당대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이를 밝혀 다른 이들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저술의 목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설득은 사실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강력한 수사적인 기술'을 동원해야 한다. 그가 동원한 수사적인 기술은 당대 수사학자들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했던 '생동감(vividness)'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때 그때 상황이 요구했음직한 발언'으로 당대의 연설을 인용한 이유도 설득을 위한 생동감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설득은 '날것 그대로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생동감에 근거하며, 이성은 단지 이를 정당화 하는 것이라는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건이 직접 밝히고 있듯이, '투퀴디데스의 관점보다 동시대인들의 견해가 진실에 더 가깝다'고 하여 그의 업적이 훼손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투퀴디데스는 아테나이의 오만(hubris)이 복수(nemesis)를 가져왔다는 시인의 플롯을 활용하여 수사학자의 태도로 펠로폰네소스인과 아테나이인의 전쟁에 대해 썼다. 그는 권력을 이루는 요소들이 무엇이고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명확하게 관찰하고 이를 생동감있게 서술하여 정치사로서의 역사를 재발명했다. 그가 당대인들을 설득하는 것에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이후 2천년간 거의 모든 이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분명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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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 - 역사의 고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어떻게 탄생했나
도널드 케이건 지음, 박재욱 옮김, 한정숙 감수 / 휴머니스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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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급 학자의 일급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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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평전
톰 라이트 지음, 박규태 옮김 / 비아토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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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이나 로완 윌리엄스의 추천글로 봐서 구매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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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끝과 시작 -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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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 1부는 '어떻게 읽을까'로 책에 접근하는 방식을, 제 2부는 '어떻게 쓸까'로 서평의 여러 형식들을, 제 3부는 '시대를 읽는 주제 서평들'로 근대와 정치,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주제서평이 제시되어 있어 읽기-쓰기-사례의 순서로 서평을 쓰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자세히 보면 제 1부와 제 2부의 읽기와 쓰기 방법론과 제 3부의 주제서평은 예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이러한 책들을 실제로 읽고 정리한 후 제 3부의 주제인 '근대의 정치적 인간'이라는 큰 주제로 정리한 결과로도 보인다. 즉 방법론의 제시와 잘 쓴 서평들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에서 제시된 방법을 저자가 직접 적용하여 어떻게 '책 읽기'가 '근대의 정치적 인간'이라는 정리된 '지식'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1~3부 전체를 통해 보여주는 것으로도 보인다. 

나아가 부록인 <<장미의 이름>> 서평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드소가 불타 버린 장서관의 책 조각을 줍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진리의 한 부분에 불과한 <<장미의 이름>>을 읽는 것"도 "어떤 시대의 특수한 조각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보편적 진리에 이르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준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를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이라는 서평집의 결론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의 한 부분에 불과한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을 읽는 것'도 '근대라는 시대의 특수한 조각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보편적 진리에 이를 수 있음'을 저자 자신이 실천적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물론 저자는 이를 직접 기술하지 않고 <장미의 이름>에 대한 서평을 통해 중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형식적인 면에서 이 책은 제 1부 8편, 제 2부 5편, 제 3부 23편에 부록까지 모두 3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단테 <<신곡>>의 지옥편을 연상시키는데, 만일 지옥편에 해당하는 것이 근대의 정치적 인간을 주제로한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이라면 향후 연옥편과 천국편에 해당하는 또 다른 서평집의 출간도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예상을 해볼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기존에 출간한 고전강의 시리즈 네권이 '무엇을' 공부할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책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고전강의 시리즈와 종합되면 '공부의 끝과 시작'을 위한 전체 시리즈로 완성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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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끝과 시작 -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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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선생님 서평집을 모두 여러번 읽었는데, 새로운 서평집 출간 알림이 반갑습니다. 책 소개와 목차만 읽었는데 배송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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