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는 인간이 과학을 통해 완전해질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으나 최종적으로는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대규모 전쟁과 살육으로 귀결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18세기 계몽의 기획이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대답은 오늘날의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할 가장 큰 질문일 것이나, 한계를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는 인간의 야망에서 이러한 실패가 비롯된 것임은 분명할 것이다. 역사 고전을 공부하는 목적은 이렇게 '전진하는 세계'에서 '성찰하는 인간'이 되기 위함일 것이고, 이 책은 이러한 성찰에 큰 도움을 준다. '전진하는 세계'의 사상적 근거로 계몽주의를 들 수 있는데, 계몽주의는 이 책의 23장~24장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18세기 계몽주의는 볼테르, 몽테스키외와 같은 프랑스의 사상가들이 영국으로부터 뉴턴주의와 자유주의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계몽주의는 사회적 처방까지 내놓은 사회 운동의 원리로서의 이성으로 콩도르세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런 희망과는 다르게 계몽주의의 최종 귀결은 제 1,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대규모의 전쟁과 살육이었다.

30년 전쟁 이후 유럽의 체제를 지탱한 최종적인 근거는 과학혁명이었다. 전쟁 이후 종교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확실한 것을 찾고자 하는 시대 흐름에서 과학 혁명은 자연, 인간, 인간 조직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을 통해 미래에 대한 전망과 비전의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과학 혁명의 최종 성과를 뉴턴주의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자유주의가 결합하면서 계몽주의가 시작되었다. 계몽주의는 '이성적 사색을 통한 자연과학과 정신학의 결합'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작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추론 모형으로서의 수학에 기반을 둔다. 둘째 계몽주의는 자연법칙을 발견하여 이를 정신학과 연결하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계몽주의는 발견된 자연법칙을 토대로 미래의 사건들을 예측하고자 하였다. 결과적으로 계몽주의는 과학적 방법을 삶의 모든 영역에 도입하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에 잘 나타난다.

콩도르세(1743~1794)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는 계몽주의의 시대정신을 집약한 역사철학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역사관은 '인간의 완전 가능성의 성취에 의한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다는 신념, 즉 진보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 등의 진보사관이 여기서 기원한 것으로 이들 모두는 자연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언젠가는 지상 천국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구체적으로 그는 진보의 실현을 통해 '여러 국가 사이의 불평등의 파괴', '한 국민 내에서의 평등의 진보', '인간의 현실적 완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 전 세계에 프랑스 헌법의 원리를 적용하면 첫째 목표가, 경제적 부와 생계수단 그리고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면 둘째 목표가, 마지막으로 과학을 통해 인간 자체가 개조되면 세번째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최종 결과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그곳에서 그는 본성의 존엄성과 권리들을 복권한 인간에 대한 생각을 갖고 살며, 탐욕, 두려움, 시샘이 순환하고 부패한다는 생각을 잊는다. 그곳은 바로 그가 그의 이성이 스스로 창조해낸 어떤 낙원에서 동류들과 더불어 진정으로 존재하며,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이 더욱 순수한 향유를 아름답게 하는 곳이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그러나 계몽주의는 이러한 낙관적 전망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계몽주의 이후의 역사적 흐름이 계몽주의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 것이다. 19세기는 부르주아의 지배가 관철된 시기로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 경제적으로는 농민의 폭력적인 노동자로의 전환과 산업혁명에 기반한 산업자본주의가 성립된 시기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의 발달은 여러 국가 사이의 불평등을 파괴하기는 커녕 공업 생산물의 원료 공급처로서의 식민지 확보 경쟁을 유발시켰고, 이는 19세기 후반에 서구 열강에 의해 전 세계의 1/4이 지배되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의 미합중국과 같은 상위권위체가 없던 상황에서 이들 서구 열강들 사이의 경쟁은 무력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발생시켰고, 여기에 장기간의 이윤율 저하에 의한 불황이 겹치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계몽주의는 여러 국가들 사이의 불평등을 파괴하지도, 한 국민 내에서의 평등을 진보시키지도 못했으며 인간을 완전하게 하기는 커녕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덧.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세번 정도 읽으면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전체를 통독하고, 이후 관심있는 부분을 읽으면서 책의 말미에 있는 관련도서를 읽은 후에 다시 전체를 읽으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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