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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까지 숨이 차면 - 제4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ㅣ 텍스트T 22
조은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8월
평점 :
핵전쟁 이후 황무지가 된 지구. 사람들은 거대한 우산아카시아가 만들어 내는 그늘 아래 도시를 이루고 살아간다. 이곳에서 그늘은 단순히 햇빛을 피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늘은 생존이고 안전이며, 동시에 계급이다.
나무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짙고 시원한 그늘을 누리지만, 나무에서 멀어질수록 폭염과 히트웨이브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적색 구역의 사람들이 ‘공정한 그늘’을 요구하는 장면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떠올렸다.
우리가 누리는 안전과 기회도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가.
교육, 주거, 의료, 돌봄, 노동 환경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닿을 수 없는 삶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판타지 속 ‘그늘’은 현실의 불평등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은유였다. 열여덟 살 영월은 학생이자 채집원 실습생이다. 위험한 숲에서 일하면서도 충분한 보호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일을 하니까 학생은 아닌가? 어른이랑 똑같이 생겼으니까 아이는 아닌가? 실습생이니까 직원은 아닌가?”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아직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에게 사회가 얼마나 쉽게 어른의 책임을 요구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런 영월 곁에는 그를 보호하려 애쓰는 ‘선배’가 있다. 보호자가 없는 영월에게 선배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자 닮고 싶은 어른이다.
교사인 나는 이 관계에 자꾸 마음이 머물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어른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아이가 자기 힘으로 삶을 살아갈 때까지 잠시 뜨거운 볕을 가려 주는 사람, 위험한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 주는 사람. 한 사람에게 기꺼이 그늘을 내어 주는 어른의 존재가 한 아이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인간의 신체를 대신하는 신종 식물도 흥미롭다. 등나무는 다리가 되고, 연꽃은 폐를 대신하며, 파나케이아는 잃어버린 신체의 여러 부분을 대체한다. 왼쪽 팔에 파나케이아를 이식받은 영월은 자신이 인간인지 식물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온전한 신체란 무엇인지, 정상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지, 한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지 묻게 된다. 식물과 인간의 경계를 허문 작가의 상상력이 장애와 몸, 정상성에 관한 우리의 익숙한 기준까지 흔든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소설이 절망적인 미래를 그리면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월은 자신의 삶만으로도 손끝까지 숨이 찰 만큼 힘겹다.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나에게 필요한 그늘’을 찾아 달리던 아이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그늘’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나는 그 변화가 이 소설이 말하는 성장이라고 읽었다.
작가의 말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이제 안전한 집을 떠나 알 수 없는 세계로 가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걸 압니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우리가 만들어 준 그늘 밖으로 나갈 것이다. 두려움이 없어져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자신의 길을 선택하며 앞으로 간다.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길을 대신 걸어주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그늘 하나쯤 내어 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손끝까지 숨이 차면》은 기후위기를 다룬 판타지이면서 청소년의 노동과 빈곤, 장애와 몸, 계급과 불평등, 좋은 어른과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무거운 질문을 품고 있지만 이야기는 힘 있게 앞으로 나아간다.
책을 덮으며 제목을 다시 바라보았다.
손끝까지 숨이 차도록 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떤 그늘을 내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그늘은 누구까지 품고 있는가.
청소년뿐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부모와 교사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