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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평소 자유로워보이고 남의 시선따위 거칠 것 없어보이는 그가
그와 참 잘 어울린다 싶은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화면에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그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다고,
난 이미 저 제목으로 그를 속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을 읽고 보니
그 역시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면서도 자기만의 세계는 지켜가고 싶어하는
그저 소중한 한 사람일뿐이라고 느껴져서 좋았다.
살짝 예민한듯하면서도 둔해지고파하는 옆집 오빠?
쿨한 듯 상관없는거 아닌가?라도 내뱉으면서도 참 많이 상관하는 그.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책을 읽고 나니 그의 음악이 좀 더 잘 이해되는 거 같다.
물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그 밖의 무엇에 대해서든, 욕심을 하나하나 줄여가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욕심마저 딱 버리고 죽으면 정말로 멋진 삶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중략) 어떤 물건에 큰 애착을 가지는 이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었다. 집착을 버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실 무언가를 많이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아무튼 행복한 일 아닌가. 내 경우에는 그 대상이 너무 적어서 심심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나 자신의 어딘가가 조금 고장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냉동실 안의 식빵을 보며 뿌듯해하는 걸 보면 확실히 고장은 아니다. - P46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어린 생명을 키우는 보람을 느낄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면서 인간으로서 얻을 수 있는 성장도 말이다. 값진 것들이다. 분명 아이를 키워보지 않고서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귀한 경험일 터이다. 하지만 반대도 마찬가지다. 육아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아이가 없는 이들의 인생에는 한 명 혹은 두세 명의 인간에 대한 집중적인 헌신이 빠져 있지만, 그 자리는 언제까지고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직업이 채우기도 하고, 종교가 채우기도 하며, 더 다양한 이들과의 인간관계가 채우기도 한다. 반려자와의 더욱 깊은 사랑이 채울 지도 모르고,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진기한 모험이 채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뜻하지 않게 인생의 큰 파도에 휩쓸려 육아의 기회를 잃었을 것이고, 다른 이들은 적극적으로 육아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을 찾아나갔을 것이다. - P70
필요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분들은 아마도 내가 느끼지 못하는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돈을 아끼도 말고와도 좀 다른 문제다. 인생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다. - P79
내가 인간이라고 해서 돼지나 대파 앞에서 으스댈 이유는 전혀 없다, 뭐 그 정도 생각을 할 뿐이다. 그러니 육식을 줄이는 것의 즐거움은 음악의 여백을 늘리거나 아이서티를 탈 때의 그것과는 달리, 내가 다른 생명에게 끼치는 민폐를 조금이나마 줄이고 있다는 기쁨도 포함하는 것이다. - P80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 일상의 일부를 콘텥츠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ㅇ상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55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멋진 음악을 들을 때, 나는 내가 패배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음악을 즐겁게 듣고,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창작을 해나가면 그만이다. 마치 서퍼가 거대한 바다 앞에서 작디작은 자기 자신에 대해 슬퍼하지 않고 어찌어찌 파도를 타고 나아가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처럼.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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