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40대가 되면서 고민(?)한 게 있다. 어떻게 어른이 될까?
30대는 그래도 젊은 느낌이 있었다면 40대는 정말 어딜가나 어른인 것 같고 스스로도 그래야 한다고 느끼는데 주변에 어른스런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어른스럽게 어른이 될까 고민스러웠다. <인간의 조건>은 그런 고민에 답을 주는 책이었다.

저자 한승태는 <인간의 조건> 6부, 본인은 픽션이라고 했던 "퀴닝"장에서 비명을 지른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남자들은 어린 세대의 존경이라는 열차에 무임승차를 해왔는데 이제는 그들도 대가를 치를 때가 됐다. 당연한 권리 행사라도 하듯 식구를 때리고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주고 후임병을 군홧발로 걷어찬 대가를, 피부 빛이 검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시한 대가를,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으로 새 아파트를 사고 자식들을 유학 보낸 대가를, 일 끝나고 돌아온 아내가 청소를 하고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는 동안 소파에 드러누워 스포츠 채널이나 뒤적거린 대가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은 대가를, 자기의 잘난 애새끼들이 아빠 흉내를 내기 시작했을 때 바로잡지 않은 대가를."

문제는 그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해가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실 지구가 움직이는거라는 사실을 알려주는거나 마찬가지다. 절대, 내가 무슨? 왜? 이렇게 열심히 산 내가 왜 대가를 치러야 하나고 화내고 불평할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본다. 아주 복장 터지고 개빡치는 상황)

저자는 인간의 최저생활을 전혀 보장해주지 않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생활한다. 그는 경험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그가 여러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그나마 배려 받은 건 '우리사람'이라는 내부자 의식 때문이라는 걸 알았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받는게 아니라 하찮은 대우를 받는데 이런 괴상망측한 사회가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는 그런 일이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먹고 사는 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함에도 그걸 움켜쥐고 인간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는 사회. 저자는 인간의 존엄 따위는 책에나 있는 사회를 체험하고 이상하지 않냐고 말한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의 돈 벌기가 원래 그렇게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거 잘못된거 아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맞다. 그가 맞다. 열심히 일하지 말고 잘못된거 아니냐고 소릴 질러야 한다. 인간적 생활을 할 수 있는 방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해야 한다. 굽실굽실 열심히 어른들 비위 맞추는척 하지 말고 저들처럼 살지 않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하기 위해 <인간의 조건>은 아주 좋은 책이다. 생각이란 본디 문제를 앞에 두고서야 시작하는게 아니던가...<인간의 조건>이 제기하는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참으로 해결이 어려운...

이익을 남겨야 하는 사회에서 저자가 경험한 일들이 개선이 될까? 프레스에 손이 찍히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몸이 절단나도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사회에선 계속해서 기계 앞에 사람을 2교대로 세워 놓을 것이다.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그 앞에 세울 것이 아니라 그 컨베이어 벨트를 멈춰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저자가 "퀴닝"이라고 했던 것이 "이익 남기는 제도"자체를 폐기해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여 공동으로 이룩한 사회적 자산을 누군가의 호주머니에 넣을 이익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고용주이든, 노동자이든 마찬가지다) 퀴닝은 불가능하다. 졸이 여왕이 되는 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급변이다. 사람들은 이런 급변을 바라면서도 두려워한다. 그래서 세상이 잘 안 변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문명 자체가 이익독식 체제다. 자본주의는 이익독식을 미덕으로, 구원으로 모두의 욕망으로 제도화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이말, 3천년전 전국시대 유세객들도 하던 말이다. 이 말을 여전히 하고 있다.(억울해서 출세한 사람 극히 드물고..그렇게 출세한 사람의 대부분은 말년에 극형을 당해 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수준의 재난을 당하며 살고 있는데도 정신은 여전히 이익독식체제를 지지하고 그걸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슬프게도 퀴닝은 체스에서나 가능하다.

나는 몸과 마음이 함께 늙어가길 바란다. 어린 애가 어른스러우면 "애늙은이"라고 하고 어른이 애스러우면 철을 모른다하여 "철부지"라고 하지 않는가. "마음은 청춘"이란 말 정말 싫다. 그 청춘이란 것이 고작 자신들이 젊은 시절의 '과거' 아닌가 그들은 과거에 매여 미래 세대에게 감놔라 배놔라 하며 충고질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앞으로 살 수 없다. 부모 세대의 경험이 나에게도 도움이 안되는데 내 자식 세대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박물관에 보내든, 쓰레기장에 보내든 둘 중 하나다.

어떻게 어른이 될까? 나는 내 윗세대가 나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넘기려는 그 전통이니 예의니 하는 것들 다 쓰레기통에 넣어주는 것이 사십대가 된 어른이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냥 내가 싸가지 없다고 욕먹고 젊은 사람들에겐 넘겨주지 말자. 세대간 절연체가 되어서 끊어주자. 허생이 무인도에 사람들 이주시키고 지식인은 남겨두지 않은 걸 기억하자. 어른이 되어서 젊은 사람들에게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말고 다 안해도 된다고 말해줘야겠다. 열심히 일하지 말고 일 안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고민해보라고..
간단히 말해, 누군가의 등골을 뽑아서 내 새끼 입에 넣어주고 키우면 누군가 내 새끼 등골 빼먹는 세상. 고작 이런 세상 만들어 놨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업보겠다. 나라도 끊어줘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