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노예)의 역사


가부장제에서는 "아내"라는 가내 무임금 노예가 꼭 필요하다. 이 사실은 동서 고금을 통틀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책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 가내노예가 없으면 이 문명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소유의 시작은 아내였다. 인류 공통이다. 만국의 아내 처지는 똑같다. 가난한 아내(딸)의 처지란 살만하면 남은 밥 먹여 살림밑천으로 일부리다가 살만하지 않으면 남의 집에 팔아먹는다. 그집에 가서 억수로 고생한다. 정말 만국 공통이다. 

 

우리의 아내들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내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가 뭘까? 우릐의 스윗 홈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와 꼭 닮아 있다. 저 아래서 누군가의 고혈을 빨아야 이윤이 남는다. 내가 최저가를 찾을 때 나는 누군가의 등골을  빼먹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이 동양고전사상에서 대안을 찾는 이유를 알 것같다. 도가의 소박한 자급자족주의, 공자의 인仁사상을 문자그대로 적용하면 서로를 착취하는 메커니즘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에게 하라고 권유하는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 이것이 공자의 仁이다. 내가 하기 싫은 청소 설거지 아내에게 미루지 않고 스스로 하는 것, 자기 어머니 밥은 자기가 챙겨 드리는 것, 그러다 도움이 필요하면 정중히 요청하는 것, 무수한 노예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서비스를 받느니 좀 더 힘들어도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는 것. 힘들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이런게 아니면 이 착취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방도가 없다.

 

낙원은 아무 일도 안하고 먹고 사는 곳이 아니라 그 낙원에 널려있는 먹을 만한 것들을 스스로 구해 먹는 세상이다. 누군가 놀고 먹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에 그의 일을 대신할 노예가 있다.(지금 우리는 민주노예사회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아내가 소유물이 된 이후로 그 처지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일을 많이 하는 여성은 임금을 적게 받고 일을 적게 하는 여성은 부유했고, 높은 계급이었고, 조금 자유로왔다. 아내의 역사는 계급과 빈부의 문제도 포함한다. 젠더 문제는 남녀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착취의 문제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남녀의 권리 투쟁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포함한다. 착취의 그늘에서 존재하지만 목소리 없던 존재들, 인식의 범위로 들어오지 않았던 자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한거다. 세상에 이보다 충격적인 한방이 또 있을까.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희생해야 하는 아내가 아닌 진정 동반자로서의 아내상을 새롭게 수립하는 것은 꼭 "가정'의 문제 만은 아닌, 이 거대한  착취 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하는 유익한 책이었다. 그러니 제발.. 나는 아내를 존중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지 말자. 여전히 매맞는 아내가, 여친이 있다. 남의 노동을, 서비스를 착취하는 구조속에서 그 누구도 떳떳할 수 없다.


이 책이 절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아내의 역사>로 번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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