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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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보 같은 소냐 


내가 하느님의 섭리를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은 왜 해서는 안 될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내 결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지요? 누구는 살아야 하고, 누구는 죽어야 한다고 심판할 권리를 누가 내게 주었나요?(599) 

궤변이 이론인 줄 아는 라스꼴리니꼬프와 달리 소냐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일찌감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가 몸을 팔았던 여자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었어도 시궁창 쥐로 살지는 않았다. 더러운 연못에서 피지만 더러움이 물들지 않는 연꽃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매일 술에 절어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기면서 스스로를 모욕하며 살았지만 소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생활고로 정신이 이상해져 가는 계모를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서 자책하는 여자. 착하지만 바보 같은 소냐. 그래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가 바보같은 성인 '유로지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라스꼴리니꼬프라면 없애버려야 마땅한 ‘이’들에게 소냐는 자진해서 제 몸을 내어주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여동생이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데 소냐는 자기를 팔아먹은 부모인데도 원망하지 않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전당포 노파를 죽인 후 그는 무턱대고 소냐를 찾아간다. 그리고 소냐를 자극하고 괴롭힌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한 일이지만 스스로를 죽이고 팔아먹은 일이 아니냐? 당신이 그렇게도 증오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런 짓으로는 아무도 도울 수 없고, 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게 무서운 일이 아닌가? 차라리 그들을 버리든가 스스로 죽어버리는 게 수 천 배 더 정당하고 이성적인 일이 아닌가?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은 음탕한 생활을 즐기는 건가?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의 입에서 “죽여라” 또는 “죽겠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 그녀가 회피하는 질문들을 집요하게 해댔다. 그러나 소냐의 입에서 그런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소냐라고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일을 하고 싶었겠는가? 절망에 빠져서 단번에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아주 진지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은 어린 동생들과 미쳐가는 계모를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나마저도 없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소냐보다 어린 뽈랴가 매춘의 길로 나섰을지 모른다. 뽈랴를 구하기 위해 소냐는 죽지 않고 모욕을 견뎌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여동생 두냐는 한 남자에게 자신을 팔려고 했지만 소냐는 여러 남자에게 자신을 팔았다. 역사 이래로 전세계 수많은 딸들이 졌던 짐을 그녀들도 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의 발에 키스하며 온 인류의 고통에 절을 했다고 말한다. 고통스런 삶을 묵묵히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소냐가 시궁창에서도 영혼을 더럽히지 않은 것은 기도 덕분이었다. 그녀는 진정 간절하게 하느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 믿었다. <나자로의 부활> 대목을 읽는 소냐는 부활 장면에서 정말로 기쁨에 겨워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가학적 질문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냐도 하느님을 부정하는 말에는 무섭게 화를 내고 정색했다. 나처럼 믿지 않는 사람은 눈 앞에서 부활이 일어나도 부활이 아니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자에게 부활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다. 소냐는 정신 나간 살인자를 불쌍히 여기고 유형지까지 따라가서 결국엔 새로운 삶을 얻도록 해서 그를 부활시킨 신이었다. 하느님을 믿고 아버지의 말씀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사람들 옆에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눠지는 사람은 라스꼴리니꼬프가 아니라 바보 같은 소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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