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죄와 벌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1. 몽상가, 라스꼴리니꼬프
아마도 뽈랴도 똑 같은 길을 걷게 되겠지.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에요! 하느님이, 하느님이 그런 무서운 일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오.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느님이 그 애를 보호하실 거예요…! 그래요? 어쩌면 하느님은 안 계실지도 모르잖소. (469)
하느님은 안 계신다. 마치 잘되면 내 덕, 못되면 조상 탓 하듯 신을 욕한 적은 있어도 뭘 간절하게 바란 적도 없고 기도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어쩌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나는 그런 단서도 달지 않은 채 하느님은 없다고 믿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이란 존재는 의지할 데 없는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낸 영적인 허구라고 생각한다. 빼쩨르부르그의 대학생 라스꼴리니꼬프도 이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신이 있는데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가? 착한 소냐는 창녀가 되었고 소냐가 매춘으로 벌어 들이는 돈이 아니면 소냐의 동생 뽈랴도 창녀가 될게 뻔하지 않은가? 당신을 시궁창에 처박은 현실이 증오스럽지 않아? 널 그렇게 만든 아비와 계모가 원망스럽지 않아? (그런데 이 자식은 왜 죄 없는 소냐를 추궁하지?) 하지만 나도 은연중에 라스꼴리니꼬프와 함께 소냐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니, 지금 니 처지에 하느님 타령하고 있니? 하느님이 널 구해 줄 것 같아?” 그렇다면, 하느님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걸 믿지 않는 나는 이 억울함과 불합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빈곤한 대학생이다. 학비가 없어 학교는 그만두었고 좁고 더러운 골방에서 지내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낸다. 과외라도 하라는 하숙집 하녀의 빈정거림에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답하는 일종의 룸펜이다. 나름 정의롭고 인정도 많아서 자기도 살기 어려우면서 돈이 생기면 적선도 하고, 소냐의 아버지인 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의 신세한탄을 듣고 인사불성이 된 그를 집에 데려다주고, 죽었을 땐 장례비도 쾌척했다. 이 인연으로 소냐와 알게 되었고 라스꼴리니꼬프와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소냐를 알게 된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는 여동생의 결심을 단호히 반대할 정도로 자존심은 강하지만 앞날이 보이지 않는 가난 속에 ‘생각’만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일까? 라스꼴리니꼬프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전당포 노파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은행이 서민 금융을 담당하기 전에 전당포는 만인의 인생을 전당잡고 만인의 저주를 받는 곳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해악만 끼치는 사람 하나 죽이고 여럿이 행복 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까?) 결국 그는 사전답사까지 마치고 무더운 어느 여름날, 스스로 생각해도 혐오스런 그 일을 결행하고 만다.
주인공이 전당포 노인과 그의 여동생까지 우발적으로 살인한다는 것은 『죄와 벌』의 길고 긴 이야기 중에 하나의 에피소드다. 문제는 그의 윤리 의식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며 이 혼탁한 세상에서 도덕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는 특이한 범죄론을 쓴 적도 있는데, 매우 이성적인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발각될 일이 없다는 것과 세상 사람들은 ‘평범한’사람과 ‘비범한’사람이 있어 평범한 사람들은 순종하며 살고, 비범한 사람들은 설사 그것이 범죄가 되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장애물이라면 제거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였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이 논리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매우 합리적인 이론이며 인류의 문명은 이러한 비범한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저지를 수밖에 없는 죄에 의해 발전해 왔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기가 그런 비범한 사람인지 확인해보고자 노파를 살해한다. 그러나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인공의 이런 생각이 아무 근거 없는 망상이자 궤변일 뿐임을 살인 전후에 벌어지는 그의 불안정한 심리와 환영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는 노파를 이성적으로 죽이려고 했으나 이미 그 집에 들어 갈 때부터 정신이 없었으며 예상치 못한 여동생이 등장하자 당황해서 우발적으로 죽였으며, 증거를 남기지 않겠다며 노파의 집에서 훔쳐온 전당물을 강물에 던질까 말까 하다가 겨우 공사장 돌 밑에 숨겨놓고 남들이 알까 봐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등 말 그대로 제정신을 잃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범죄 이론과 완전히 어긋난 채로, 그야말로 ‘심신미약’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도대체 노파는 왜 죽였는가? 돈을 훔치려고? 얼마 훔쳤는지도 자기도 몰랐다. 살인의 목적은 단지 내가 비범한 사람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내가 그런 혐오스런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강심장인지 시험해 보기 위해 힘 약한 노파에게 가서 도끼를 휘둘렀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진 자기만의 ‘궤변’을 믿고 결행한 살인. 그런데 그의 이론이 은근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우리도 늘 뉴스를 보면서 한탄하지 않는가? 왜 한 사람 때문에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저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인간들, 남의 피를 빨아먹는 저 ‘이’같은 존재들은 어째서 저렇게 죽지 않고 사는가? 왜 신이 있다면 저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가? 왜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가? 누군가 저 악랄한 인간들을 골라내 이 세상에서 제거해 준다면 그는 영웅이 되지 않을까? 나는 살인까지 결행하는 라스꼴리니꼬프를 조롱하면서도 그의 이론에 동조하는 이상한 ‘분열’을 겪고 있었다. 라스꼴리니꼬프만 분열증을 앓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