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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
황루시 / 풀빛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외갓집을 가기 위해선 서낭당을 지나야 했다. 어렸던 나는 그곳 나무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럴 때마다 왼쪽 귀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내게 무속은 두려움이고, 무당은 신기가 가득한 비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주변에는 점을 치러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점을 친적이 없다. 무속의 힘을 빌릴 정도로 힘든 일도 없지만, 무속의 힘으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책을 읽고 눈물이 났다. 무속인의 삶이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우리굿 보유자도 아들 딸 두려워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자신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무속은 다른 종교와 같이 신적인 힘으로 무언가를 치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있다.무당들이 전도사와 스님들과는 달리 천시받고 있다. 단순한 점바치로 돈을 버는 것을 목적을 두지 않고, 우리 나라 굿을 잇기 위해 굿판을 벌이는 무당들을 접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신기가 내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도 되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무당들은 대체로 세습무가 많다. 어릴 때부터 가족이라는 공통체에서 자연히 굿판을 익히고, 굿판의 열기를 느끼는 것이다.
책을 읽고 지난 오월에 강릉 단오굿을 보러 갔다. 그곳에서 황루시님을 만났다. 그녀가 살아 온 삶의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무속 연구를 위해 전국을 다니며 굿판을 돌아다닌 그녀는 현재 무속 연구에서 가장 중심이다.
그녀가 단오굿에서 바쁘게 무녀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았다. 무녀들의 신비한 모습에 가슴 두근거리던 나는 무녀들 막사로 갔지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강릉 단오에서 느낀 것은 굿을 잇기 위해 온 가족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굿판을 주관하는 사람은 며느리고, 딸이 애기무당이고, 상쇠는 삼촌이고. 단오굿을 보기 전에 책을 읽어 굿을 주관하는 무당들에 대해 알고 가서인지 굿 시작하는 날부터 굿판을 떠날 수가 없었다.
길게는 네 시간 굿을 하는데, 무녀의 얼굴에서 땀이 흘렀지만 말 그대로 신명이 나는 굿이었다. 할머니들 또한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바리공주가 아버지 약을 구하러 가는 대목과 춘향이 물에 빠지는 대목에서 모두들 소리내어 울었다.
어떤 할머니는 아주 멀리서 온 듯 피곤한 기색으로 지팡이를 들고 굿판에 들어왔다. 굿판에 오자마자 보따리를 베고 누워 잤다. 그렇게 우리네 할머니들은 한 해에 한번은 꼭 굿판에 와 굿을 보아야 여름을 시원하게 맞이하는 것이다.
내가 그 굿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애기 무당이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귀를 세 군데 뚫고, 화려한 한복을 입은 애기 무당 이름은 은희였던가. 그 무녀는 처음으로 굿을 하였는데 아직 목소리와 춤사위에 태가 나지 않았지만, 나에겐 그 나이에 힘든 무녀의 길을 당당히 걷기 위해 첫발을 디디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애기무당의 굿이 끝나자 할머니들은 애기 무당 앞에 가 옷섶에 천 원짜리를 끼워주었고, 애기 무당은 할머니들을 위해 축원(할마씨들 손주가 잘 되길 빌며 우리 할머니 그저 아프지 말고, 내년 굿판에서 또 봅시다. 혹, 세상을 뜨시더라도 세상 뜨실 때, 아프지 말고, 낮잠 자듯 그렇게 편안히 가십시요.)을 했다. 그 대목에서 할머니들은 모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애기 무당은 뽕짝 노래를 불렀다.(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언제 울었냐는 듯 할머니들은 애기무당의 노래와 춤을 보며 웃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은 주위가 어두워 질때야 끝났고, 할머니들은 다음 날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아쉬운 듯 일어섰다.
나는 단오에서 돌아와 다시 이 책을 읽었다. 다른 무속에 관한 책을 샀다. 가장 무속인의 마음 깊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저자 황루시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다. 그녀는 한 일주일 후에 답장을 보냈다. 그동안 전주에 굿을 보고 밤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삶의 경험이 훑고 지나간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오늘 또 남도의 어느 곳에서 하는 굿을 보기 위해 밤 기차를 탈지도 모른다. 그녀가 바람 속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