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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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견디며 글을 써 온지 3년이 지나간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경쾌하게 자판을 두르리는 시간이, 부드러운 소파에 몸을 말아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내게 글쓰기는 좋은 느낌만을 주지는 않았다. 우리 나라의 소설은 예쁜소설이 많아 읽으면 하품이 많이 났다. 가슴을 찌르는 소설이 아니라 가슴을 보듬어주는, 물론 때론 그런 소설이 좋을 때도 있지만, 나는 조금씩 그렇게 예쁜 소설에 염증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천운영의 소설집을 기다리게 되었다. 신춘 문예 등단작부터 분명 그녀의 소설은 한국의 현대 여성 소설과 뛰어난 변별력을 가진 작품이었다. 아니,여성 소설을 뛰어 넘어 현대의 한국 소설에 칼을 들이밀었다. 식물성을 지향하고, 낮게 울먹거리던 소설과는 달리 역동적이고, 소설의 가운데에 뚜벅뚜벅 걸어가 가슴을 후벼파는 무언가가 있었다.

늙은 할머니와 쇠골을 끓여 먹으며 살아가는 마장동의 청년은 식물성(가장 식물적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을 꿰뚫어보는 힘이 있다. 또한 <바늘>에서 육식을 좋아하는 문신수의 동물적인 움직임에는 둔탁하면서도 뛰어나게 민첩함을 느낄 수 있다. 짜가가 더 진짜같고, 유행하는 요즘의 시절 <눈보라콘>에서는 그 시절 누군가 한번은 먹고 싶었던 부라보콘을 등장 시켜 짜가와 실제의 차이를 드러낸다.

글을 쓰는 나에게 천운영은 두려움의 존재였다. 나는 그녀의 소설이 나오면 꼼꼼히 읽고 구성과 내용을 분석하였다. 아무리 읽어도 그녀의 소설에서 헛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질투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가였다. 그녀의 소설은 구성의 단단함과 묘사력의 뛰어남, 인물을 만들어 가는 힘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의 마음을 휘두르는 작가의 칼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는 내내 내 등뼈를 만져보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소설 속의 인물을 떠올려 본다.

현재의 우리나라에는 예쁜 소설이 많다. 읽으면 눈물이 나고, 설레이게 만드는 그런 소설. 그러나 읽는 독자의 가슴을 칼로 후벼파는 소설은 처음 접하는 것 같았다. 그런 천운영의 소설을 한데 묶여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여러가지 바쁜 일에 치여 근 한달 동안 짧은 묘사 하나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후배가 소포로 보내준 소설집을 읽었다. 내 가슴을 후벼판 칼이 빠져나오기 전에 나는 밤을 견디며 자판을 두들겨야 한다. 경쾌하게 소리내는 자판에 손가락을 걸고, 언어를 빚어보고 싶다. 노란 은행잎이 거리에서 사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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