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 시간 한입
플로라 안 지음, 천미나 옮김 / 안녕로빈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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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제공*

달콤쌉쌀 시간 한입

플로라 안 지음 ㅣ 안녕로빈


『달콤쌉쌀 시간 한입』은 시간 여행이라는 장르적 설정을 빌려 가족이라는 가장 개인적인 세계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시간 여행은 특별한 능력이나 거창한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할머니가 차려 준 한식을 “한입” 먹는 순간, 기억과 시간이 겹쳐지듯 자연스럽게 과거로 스며든다. 그래서 이 판타지는 빠르거나 화려하기보다, 음식처럼 천천히 우러나는 감정에 가깝다.


미국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마야의 일상은 조용하다. 데워 먹는 음식, 말수가 적은 엄마,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내지지 않는 아빠의 존재. 그런 집에 갑자기 등장한 할머니는 낯설고도 불편한 인물이다. 기억은 자주 흐트러지지만, 요리 앞에서만큼은 단단한 할머니의 모습은 집 안의 공기를 바꿔 놓는다. 부엌에 퍼지는 미역국과 송편 냄새는 단순한 음식의 향이 아니라, 봉인되어 있던 가족의 시간을 깨우는 신호처럼 작용한다.


이야기는 할머니의 밥상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마야는 시간 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의 할머니, 어린 엄마와 마주하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가족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한다. 그 과정은 신기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하고 아프다. 왜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숨겨졌는지, 왜 엄마는 침묵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아빠는 왜 마야의 삶에서 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경계’에 선 감정을 지나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마야는 늘 완전히 속하지 못한 감각을 느끼지만, 작가는 그 감정을 정답처럼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림 자체를 성장의 일부로 두고, 그 불안한 상태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래서 이 소설의 성장 서사는 단번에 해결되거나 명확한 결론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아빠의 부재’를 다루는 방식이다. 아빠는 이야기 내내 중심에 있지만,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마야에게 아빠는 반쯤 사라진 퍼즐 같은 존재이고, 그 빈칸을 채우려는 시도는 곧 가족이 감춰 온 상처를 마주하는 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은 그 상처를 미화하지도, 빠르게 봉합하지도 않는다. 대신 왜 어떤 가족은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분히 보여 준다.


『달콤쌉쌀 시간 한입』은 제목처럼 달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해, 상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 그 쓴맛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쓴맛을 지워야 할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달콤함과 쓴맛이 함께 섞여야 비로소 시간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한식처럼 익숙한 감각으로 전한다. 읽고 나면 가족이라는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 일부러 피해 온 기억, 설명하지 못한 감정들이 각자의 시간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만든다. 큰 위로를 내세우지 않지만, 그 대신 오래 남는 여운을 건네는 소설,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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