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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법정에 서다 - 신화와 환상에 가려진 석굴암의 맨얼굴을 찾아서
성낙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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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님께 제안합니다.

 

돌궐님의 리뷰에 대한 저자의 입장”(8/25)에 붙인 댓글(9/21)을 읽고, 답변을 드립니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먼저 정리합니다.

귀하는 첫 번째 글인 마이리뷰(8/9)에서 이 책의 내용 전반을 대체로 부정하셨습니다. 기존학계의 시각과 거의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의 논점들에 반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귀하의 주관적 판단이자 소신의 영역이므로, 저자로서 아쉽긴 해도 존중해 드릴 부분입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 책의 핵심 주제인 일출담론부터 남의 연구 성과를 훔치기라도 한 양 묘사하는 일방, 개탄과 조롱조의 언사들로 끝없이 저를 할퀴신 일입니다. 구차하지만 몇몇 대목을 인용합니다.

 

(서두 부분)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 함부로 짐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이렇게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비판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1햇살신화부분)

다만 글쓴이가 전개하는 주장의 기본 아이디어가 근래에 강희정이 발표한 몇몇 석굴암 재발견연구에 힘입고 있음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 잠깐 소개할 뿐이다. 물론 이 경우도 강희정 연구의 내용과 이 책에 끼친 영향에 대한 언급은 없다.”

 

(2석굴암의 20세기부분)

앞서 밝혔듯이 ---(강희정 교수와의 관련성 반복 강조)---학계에 자기가 영감을 받은 연구가 있다는 건 은근히 감추고 자신이 반대하는 연구(특히 그 연구의 공과 중에서도 과)만 제시하면서 미술사학의 비극이나 누추함같은 자극적인 용어로 싸잡아서 폄하하는 건 공정하고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저자 스스로 말하듯이 강박증 맞는 거 같다. 전혀 학술적인 글이 아니라 소설이다. 학술적 글쓰기는 개연성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고 근거를 가지고 완성되어야 한다.”

소설에나 어울리는 상황 묘사 글인데, 이런 게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건 사실도 아니고 의견도 아니며 그저 추정에 따른 묘사일 뿐이다.”

김중업과 김원룡이 일제 때의 상태가 옳다는 쪽이었다는 게 일제가 복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나마 보수공사 이전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걸 일제 때라는 말을 붙여서 고의로 반감을 유도하고 있다.”

“‘확언한다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하나? 왜 이렇게 확신에 가득 차 있는지 모르겠다. 자기 의견을 뒷받침한다는 자료들은 간접 자료가 대부분이고, 반대 의견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은 죄다 오독이라고 한다. 햇빛에 개방되면 무조건 일출 담론이다? 난 모르겠다. 모르겠으면 그냥 모른다고 해야지 모든 걸 혼자만 아는 듯 현상을 멋대로 재단하고 해석한다면 거기에서 건전한 토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그런데 무슨 논거로 이처럼 단언을 한단 말인가. 남이 틀리면 자기는 다 맞은 건가? 남이 틀린 이유와 자기가 맞는 이유는 서로 다른 문제다. 아수라가 제자리에 없었다면 저자의 주장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므로 이렇게 우기는 것 같은데, 제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달라. 근거가 없으면 아무 말을 말자. 그게 지식인의 올바른 태도이다.”

 

(3석굴암, 역사의 법정에 서다부분)

그냥 기존의 해석들은 무조건 다 틀렸다고 하는데, 선학들의 연구가 전실의 일부만 개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지 원형 주실까지 노출되었다고 본 것은 아니다. 전실 전각 철거론은 원형돔 철거론이 아닌데, 마치 선학들이 원형돔(지붕)까지 철거하자고 주장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針小棒大의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牽强附會의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다.”

여태까지 팔부중상과 전각을 연관시켜 설명해 놓고 전혀 별개의 문제라니? 팔부중상은 석굴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面石에 조각된 상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결국 석굴암 구조의 문제와도 직결됨이 자명한데 어떻게 별개의 문제가 되나?”

모르는 걸 그냥 모른다고 용감하게 말하는 학자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엘리트들은 이게 한계다.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태도.”

저자의 20년 석굴암 연구는 관련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존중한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까지 굳이 말해야만 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나 역시 평생에 단 한 권만이라도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지만 이렇게는 아닐 것 같다.”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틀을 정해놓고 거기에다 현상을 끌어 맞추는 태도는 저자가 줄곧 비판하는 바가 아니던가.”

 

이 문장들이 이를테면 귀하가 저를 향해 날린 화살들입니다.

그렇게 귀하는 저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글쟁이, 불확실한 근거와 허황된 논리로 기존학계를 매도하는 유아독존형의 교만한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덕분에 이 책은 들춰볼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즉시 귀하의 리뷰 전체를 이 코너에 올려놓고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코너가 독자들의 소통공간이라는 점, 3의 연구자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점, 또한 옳든 그르든 볼썽사나운 이전투구로 비칠 우려 등을 놓고 고심 끝에 완곡한 표현으로 저자의 입장을 작성했던 것입니다.

, 강 교수 논문 운운은 학계의 동향을 헤아리지 못한 곡해이며, 나머지 주장들도 대부분 이 책의 진의와 문맥을 오도한 것임을 원형돔 철거설을 예로 들어 간단히 지적하면서, 정 견해를 달리하신다면 다른 공론의 자리에서 매듭을 짓자는 뜻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귀하의 댓글리뷰의 논리를 중언부언하는 것으로 일관했습니다.

강 교수의 논문 발표 연도에 대한 오류 한 가지만을 실수로 인정한 후 또 다시 저를 강 교수의 논문에 옭아매는가 하면, 나머지 부분도 억측과 궤변으로 이 책의 진정성에 거듭 회칠을 가한 것입니다.

 

이것은 두 분의 글들 사이의 영향 관계 여부와 관계가 없는, 학술적 글쓰기의 기본적인 절차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에 관한 좀 더 자세하고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또 한 번 저를 글쓰기의 기본적인 절차조차 지키지 않고, 합당한 이유와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남을 공격하는 비양심적인 연구자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안한 다른 공론의 자리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으셨습니다.

 

하여 저는 부득이 이 코너를 빌려 반론을 올리고자 합니다. 귀하가 제기한 모든 의혹을 하나하나 되짚는 방식으로, 귀하의 글들이 학문적 진실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음해성의 독백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일정상의 제약도 있고, 여러 주제를 뒤섞을 경우 논점이 흐려질 우려가 높기에 쟁점별로 정리해 시차를 두고 올릴 것입니다. 가급적 일주일 단위로 한 편씩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할 생각입니다.

 

저의 이 옹졸한 결정은,

첫째, 지난 20여년 기존학계와 대척점에서 연구자의 길을 걸어온 저의 짓밟힌 명예를 환수하기 위해, 그리고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작든 크든 이 책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이 책을 세상에 소개해준 수십 군데의 언론종사자, 이 코너를 포함해 여러 인터넷 서점의 리뷰 란에 애정 어린 독후감을 남겨주신 순수독자, 또 성원을 보내주신 많은 블로거들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귀하의 글대로라면, 그분들 모두가 저의 파렴치함과 교만함에 속아 넘어간 물정 모르는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귀하는 리뷰에서 관련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자신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귀하의 리뷰가 일반 독자의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미술사 전공자의 학술적 견해임을 스스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따라서 귀하의 여러 주장을 검증대 위에 올리는 것이 불합리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재반론 여부는 귀하의 권리입니다.

저는 귀하의 의견에 성의껏 대응할 것입니다. 부적절하긴 하나 이 코너가 건설적인 토론의 장으로 기능해 석굴암과 관련한 수많은 낭설 가운데 진실의 한 귀퉁이라도 드러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토론의 장에서 한 사람은 실명으로, 다른 사람은 익명으로 공방을 벌이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것은 십분 공감하실 줄 믿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글은 실명으로 임해주시기 바라며, 특히, 전공자라고 하셨으니 그 부분도 정확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귀하 스스로 발언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본적인 절차일 것입니다. 물론 이 문제 역시 귀하의 선택사항입니다.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고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2014. 11. 22.

 

저자 성낙주 올림

    

(추기1) 경위야 어떻든 자기 책의 서평란에 저자가 직접 나서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초유의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곳은 올곧은 지식과 정보가 소통되어야 하는 공적 공간입니다. 부정확한 정보 내지 흠집 내기의 언사들까지 용인될 수는 없습니다. 하여 불가피하게 소견을 밝히게 된 것에 대해 다른 독자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합니다.)

(추기2) 평점을 저자 자신이 올리는 것도 극히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평점을 누르지 않고는 등록이 되지 않아 민망함을 무릅쓰고 돌궐님의 리뷰 이전에 서평을 주신 분들의 평균 평점에 맞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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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궐님의 리뷰에 대한 저자의 입장

 

 

   먼저 <석굴암, 법정에 서다>에 대한 돌궐님의 깊은 관심과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리뷰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릇 책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으며, 설령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혹평이라고 해도 응당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기본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않거나 책의 논지를 굴절시킨 것이라면 바로잡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것 또한 책임 있는 저자가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며, 이 점은 돌궐님도 동의하실 줄로 믿습니다.

 

   돌궐님의 리뷰를 접하고 검토한 결과, 돌궐님의 글이 일반 독자의 통상적인 독후감의 범주를 넘어 과도한 비판의식 아래 작성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돌궐님의 연락처를 알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순수독자들의 소통 공간인 ‘알라딘’ 리뷰 란에 저자가 직접 나서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의 여부, 그리고 돌궐님이 언급하신 제3의 연구자에게 본의 아니는 아니지만 혹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 등을 두고 여러 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본인의 입장을 밝히기로 한 것은, 만약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경우 돌궐님의 지적 사항들을 저자인 본인이 사실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높고, 그러한 상황은 이 책의 출간 이후 많은 매체에서 보여준 과분할 정도의 서평, 그리고 독자들의 성원과 지지에 대해 저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제3자의 연구성과에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그 사실을 애써 감추었다는 식의 대목들입니다.

 

“다만 글쓴이가 전개하는 주장의 기본 아이디어가 근래에 강희정이 발표한 몇몇 ‘석굴암 재발견’ 연구에 힘입고 있음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 잠깐 소개할 뿐이다. 물론 이 경우도 강희정 연구의 내용과 이 책에 끼친 영향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앞서 밝혔듯이 1부의 ‘햇살 신화론’이나 위 부분의 아이디어는 결국 강희정이 90년대 말부터 이어 온 ‘석굴암 재발견’ 관련 몇몇 연구에 커다란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그렇게도 비판하고 있는 ‘기존 학계’의 일원으로 볼 수 있는 강희정의 연구는 왜 본문에서 단 한 번도 다루지 않고 말미(거두는 글, 386쪽)에만 제목 포함 단 3줄로 짧게 언급하는가. 학계에 자기가 영감을 받은 연구가 있다는 건 은근히 감추고 자신이 반대하는 연구(특히 그 연구의 공과 중에서도 과)만 제시하면서 미술사학의 ‘비극’이나 ‘누추함’ 같은 자극적인 용어로 싸잡아서 폄하하는 건 공정하고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강희정 교수님이 19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발표해 온 석굴암 ‘재발견’ 글에 빚을 지고 있음에도 저자인 본인이 ‘기존학계’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돌궐님의 지적은 학계의 동향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첫째,

   강교수님의 1990년대 석굴암 관련 논고는 확인되지 않으며, 그 분의 저서에는 2007년에 처음 발표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결국 ‘90년대 말부터’라는 연대부터 사실로 인정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혹여 본인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명시해 주었다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본인과 강교수님의 석굴암 관련 작업은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각자 나름의 지향점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으로, 그 결과 주제며 내용이 같지 않습니다.

   먼저 강교수님의 작업에 대해 말하자면, 일본 학자들이 ‘조선미술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석굴암이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정착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재구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강교수님의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의 목차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반면, 본인의 작업은 우리의 석굴암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일출신화가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일제의 달콤한 문화식민사관이며, 해방 후 우리 학계가 그것을 청산하지 않고 도리어 이른바 ‘원형논쟁’ 과정에서 확대재생산함으로써 심대한 혼란이 초래되었음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셋째,

   본인은 그동안 강교수님의 작업을 높이 평가해 왔으며, 강교수님의 논문이 발표되는 학회에 지정토론자로 참여하여 그 점을 천명한 바도 있습니다.(필요하다면 관련 자료를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덧붙이면, 본인은 지난 2009년, 수년 동안의 준비를 거친 석굴암 사진전 <석굴암, 백년의 빛>을 불교중앙박물관에서 73일 동안 개최한 바, 그때 이미 이번 책의 핵심 주제인 일출신화가 일제의 식민사관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바 있습니다. 이는 당시 펴낸 도록 『석굴암, 백년의 빛』(동국대출판부, 2009)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또한 2010년에는 포항MBC와 손잡고 역시 같은 주제의 다큐멘터리《경술국치 백년, 석굴암 백년의 진실》을 제작 방영하였으며, 또한 저자의 블러그(‘성낙주의 석굴암미학연구소’)에 본서의 초고가 되는 원고(<석굴암, 역사의 법정에 서다>)를 2010년 12월 26일부터 분재를 시작해 2011년 2월 23일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이유로, 이 문제에 관한 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식의 평가는 성립될 수 없으며, 굳이 연관성을 따지자면 양쪽의 작업이 상보관계에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이 책의 ‘거두는 글’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학계에서 거둔 학술적 성과로 강교수님의 저서 단 한 권만을 소개한 것은 강교수님의 노고에 대한 최고의 극찬으로, 그 자체로 본인의 공정한 시각을 드러내는 대목일 것입니다.

   요컨대 일출신화와 거기서 파생된 이 책의 여러 주제들이 마치 강교수의 작업에서 비롯된 듯이 소개한 돌궐님의 지적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일반 독자로 하여금 본인의 학문적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본인의 명예를 손상시킨 잘못된 접근입니다.(물론 강교수님의 논고에는 당연히 일출신화나 광창설, 석조신전설 같은 문제들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부분 이상으로, 본인이 또한 우려하는 것은 이 책의 진의나 문맥을 굴절시킨 경우들입니다. 한 가지만 예로 들면, ‘원형돔’ 철거 문제가 있습니다.

 

“(저자는) 그냥 기존의 해석들은 무조건 다 틀렸다고 하는데, 선학들의 연구가 전실의 일부만 개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지 원형 주실까지 노출되었다고 본 것은 아니다. 전실 전각 철거론은 원형돔 철거론이 아닌데, 마치 선학들이 원형돔(지붕)까지 철거하자고 주장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針小棒大’의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본인은 그동안 단 한 번도 기존학계가 원형돔(지붕)을 철거하자고 주장한다고 생각한 적도 말한 적도 없으며, 이번 책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침소봉대 운운하는 표현 역시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밖의 지적 사항들도 대부분 같은 양상인데, 그 같은 태도가 글쓰기의 금도는 아닐 것입니다.

 

   본인은 『석굴암, 법정에 서다』에서, 20세기 후반 우리 학계와 사회의 큰 이슈로 떠오른 이른바 원형논쟁의 허실을 드러내고, 앞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 사견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공인으로서의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돌궐님은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말씀드린 것들을 포함해 돌궐님의 지적 사항 모두를 다른 공론의 장에서라도 다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본인은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궐님이 동의하신다면 어떤 형식이든 그런 자리를 마련할 의향도 있습니다.

 

   돌궐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2014. 8. 25.

 

   <석굴암, 법정에 서다>의 저자 성낙주 배상 

 

  (본서의 평점은 돌궐님의 평점대로 별 둘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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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4-09-2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낙주 선생님, 안녕하세요. 돌궐입니다.
우선 제 리뷰에 대해 선생님의 자세한 입장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견에 대해 몇 가지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강희정 선생님의 석굴암 관련 연구가 `90년대말부터 이어`왔다고 쓴 건 제 실수입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2007년 출간된 미술사논문집 『시각문화의 전통과 해석』에 처음 나왔습니다. 이처럼 연대가 명시되는 중요한 사항을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고 쓴 것은 완전히 제 잘못이며 이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논점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2007년과 2008년에 연이어 나온 `석굴암 재발견`관련 강희정 선생의 논문들은 기본적으로 석굴암을 바라보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 말씀처럼 강교수님의 글들이 ˝일본 학자들이 ‘조선미술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석굴암이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정착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재구성하는˝ 연구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 논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 즉 석굴암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과 해석에 대한 매우 혁신적인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던 강희정 선생의 글들이 2009년 이후 발표하신 성낙주 선생님의 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선생님께선 두 분의 연구가 서로 아무런 영향 관계가 없이 독립적으로 작성되었고, 결과적으로 ‘상보적’ 관계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1999년에 『인물과 사상』에 쓰신 「강우방 관장은 석굴암의 현실을 직시하라」라는 글에서 선생님께서는 이미 ‘햇살 콤플렉스’라는 낱말을 쓰셨기 때문에 ‘석굴암의 햇살신화’라는 관점은 이 때 시작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강희정 선생의 연구와 성낙주 선생님의 연구가 <일제가 바라본 석굴암>이라는 거의 똑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는 『석굴암, 법정에 서다』 서두 부분에서 강 선생의 글들은 기존의 주요 연구 성과로 반드시 언급되고 넘어갔어야 합니다. 책의 말미에서 잠깐 언급되고 말 정도의 논문이었다면 차라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두 분의 글들 사이의 영향 관계 여부와 관계가 없는, 학술적 글쓰기의 기본적인 절차입니다. 선생님께서 강희정 교수의 발표에 질의자로 참여하신 적이 있었다고 하셨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굳이 또 다른 예를 들자면 2001년 『동악미술사학』에 선생님께서 쓰신 논문 「歸納推理에 의한 石窟庵과 佛國寺 관련 문헌사료의 연구」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석굴암) 관련 사료들과 기존 연구 성과들을 최대한 충실하고 공정하게 제시하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지적한 것이며 선생님께서 강희정 교수님의 연구 주제와 내용이 선생님의 연구와 같지 않다고 말씀하신 점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다루는 내용과 표현, 방법에 조금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석굴암에 반영된 `식민사관`을 연구하는 기본적 접근 방향은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제가 원형돔 철거론 운운한 부분입니다.

선학들이 전실을 철거하자고 주장한 것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이는 잘못된 것이고 이 전실이 없어지면 마치 석굴암의 모든 부분에 피해를 줄 것처럼 설명하셨습니다. 개방구조로 인정했던 학자들과 유네스코에서 전각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던 것에 대해 ‘지붕과 출입문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라는 평범한 상식에 비춰보면’(282쪽)이란 표현을 써서 전각의 유무 문제가 갑자기 지붕의 유무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 원형돔과 사천왕이 새겨진 비도 안쪽으로는 원형 지붕이 멀쩡히 남아 있는데 왜 지붕이 없는 집이 되나요?

그뿐 아니라 앞에서도 총독부에서 전실 공간을 노천상태로 열어둔 점을 ‘‘집’의 기본이 지붕이라고 할 때, 이러한 조치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되는 일이었다’(138쪽)고 비판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전실과 그 지붕이 갑자기 석굴암의 지붕인 것처럼 표현하신 겁니다. 걸러서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겠지만 이후 이어지는 석굴암 피해 상황들에 대한 서술은 마치 그 모두가 전실의 지붕이 없어서 일어난 것처럼 독자들의 판단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지붕이 없는 집’이란 글이 일정 부분 수사적 표현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뉘앙스를 지닌 것으로 해석하기 쉬운 문장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의 지붕은 원형돔이지 전실의 지붕이 아닙니다. 전실의 지붕은 그야말로 전실의 지붕일 뿐입니다. 석굴암 원형논쟁의 중심에 왜 자꾸 전실이 언급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원형돔을 철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재 학계에서 전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건 선생님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실이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그 합리적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야 하며, 없었다고 주장하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실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조각상들이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실은 없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전실은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숭례문에 화재 방지 스프링클러와 CCTV가 없었다면 화재가 나도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숭례문이 불타서 전소된 것을 보면 이 시스템들이 있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스프링클러와 CCTV는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허망합니다.

당시의 여러 기사를 찾아보니 스프링클러는 없었고 소화기만 8대 있었다고 합니다. CCTV는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들을 제대로만 갖춰 놓으면 숭례문이 안전했을까요? 도움은 됐을지 몰라도 토지보상금을 못 받아 억울하여 악에 받친 또 다른 노인이 나타난다면 그마저도 완전한 대책이 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숭례문이 불탄 것을 철저한 훼손방지 대책 없이 공개한 정부와 전 서울시장, 야간 경비 인력 한 명 배치하지 않은 문화재청과, 문화재 소방 방법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소방청, 누구나 알 수 있는 ‘랜드마크’로써 헤아릴 수 없는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보존과 관리 문제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인근 시민과 상인들의 탓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지 아니면 토지보상금을 못 받아 억울한 어떤 사람과 스프링클러 및 화재경보기 탓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지는 평범한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될 것입니다.
전실 존재의 여부와 석굴암 조각상 보존 사이, 그리고 숭례문 스프링클러-CCTV 시스템과 화재방지 사이에는 ‘상관관계’는 있어도 ‘인과관계’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전실 원형 문제는 우선 팔부중상과 금강역사상 면석으로 구성된 전실이 석굴암 창건 때부터 현 상태로 계획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강우방 선생님을 제외하곤 대부분 팔부중상이 원안 설계에 들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이 있습니다. 전실의 원안 설계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팔부중상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들이 지금처럼 계획되고 조각되었을 거라는 근거가 현재의 상황에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석굴암 창건주는 팔부중상이 서로 4상씩 짝지어서 마주 보도록 설계했을 것이라고 단언하지 못합니다. 이들 여덟 상들이 두세 종류의 서로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는 사실은 더더욱 전실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의심해야 하고, 그 끝에서 의심이 걷히게 되면 그 때 거기서 새로운 이론과 가설들을 세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의 이런 궁금증과 관련해서 많은 시사점을 준 아래 두 저술이 있습니다.

신형준, 「석굴암의 수학적 비례미, 과연 존재하나」, 『한국고대사에 대한 반역』(조선일보사, 2004), 113-219쪽.
허형욱, 「석굴암 관련 조선후기 문헌기록의 검토」, 『신라문물연구』 5(국립경주박물관, 2011), 26-46쪽.

이 논문들을 보고 나면 현재 선생님을 포함한 학계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석굴암의 원형(圓形) 주실과 방형 전실의 수학적 비례관계뿐만 아니라 석굴암 창건시의 원형(原形)의 ‘실체’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학계에서 이런 글들에 대한 언급이나 반론이 전혀 없는 것인지 저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학술 서적에 대한 듣기 좋은 비평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판 정신이 없는 맹종은 학문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생님 저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외람된 비판을 했던 것은 그만큼 선생님의 연구와 이 책의 성과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라딘에 서툴게 휘갈긴 제 서평이 혹시 나중에 이 책의 개정판이라도 나온다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자에게 직접 글을 받게 되어 매우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에 관한 ‘좀더 자세하고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여러 가지 석굴암 문제 논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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