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법정에 서다 - 신화와 환상에 가려진 석굴암의 맨얼굴을 찾아서
성낙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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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님의 비판에 대한 반론(5)

 

제 반론(4)에 대한 답변(‘성낙주 선생님께 드립니다’)을 진작에 읽었습니다만, 반론이 아주 많이 늦어졌습니다. 붙잡고 있던 일도 있었지만, 이 진흙탕 싸움을 우려하시는 분들이 있어 주저한 탓입니다.

지금도 귀하와의 이 험악한 공방이 이 혼탁한 세상에 숨 쉬는 값이다’, 하고 접어 두고 싶은 맘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귀하의 여전한 음해성 주장을 곱씹으면서 침묵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반복되는 말이지만 귀하는 남의 것을 가로채고서 시치미를 떼었다는 비판을 앞세운 다음, ‘근거없이 기존학계를 공격했다는 혐의를 저한테 씌웠습니다.

거기에 대해 저는 굳이 밝힐 의무가 없는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비록 어투는 격하지만 나름으로는 성의껏 해명했습니다. 저자로서 다른 독자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판단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책임 질 수 없는 발언을 귀하 스스로 통제하시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또 한 번 저를 엉터리 글쟁이로 덧칠하셨습니다.

 

실체적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화려한 수사로만 남을 설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닮은 건지는 두 책을 나란히 읽어보고 독자들이 직접 판단할 일입니다.”

 

강희정 교수님의 저서와 제 책을 어떡하든 엮기 위해 나온 말인데,

저에게는 귀하의 이런 막무가내 식 어법이 특별히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습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원형논쟁의 현장에서 징그럽도록보아온 매우 익숙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학계를 쥐락펴락하는 분들은 버젓한 자료들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존재 자체를 모른 척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과장과 축소, 오독과 표절, 심지어 조작 등 온갖 비윤리적인 방식을 동원해 1960년대 복원공사의 의의와 성과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은, 뺄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전형적인 혹세무인이었지요.

저는 그분들이 제기한 어떤 논점도 회피하지 않았으며, 아주 미미한 논점에도 꼭 실체적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모든 논점을 증거에 입각해 해석을 가함으로써 그분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에 차 있는지 빠짐없이 밝혀낸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바로 앞의 인용문이 말해주듯 제 작업을 시종일관 부정일변도로 평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기존학계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장난을 쳤는지, 또 저와 귀하 중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있는 그대로 규명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논점인 전실 전각(목조 전각)과 관련해 제가 제시한 핵심 증거 두 가지를 놓고 확인하겠습니다.

 

첫 번째 증거를 보겠습니다.

다 알듯이 석굴암 연구의 대가라는 분들은 전실 공간에 전각을 덮어 결로가 발생하는 등 석굴암이 위기에 빠졌다고 1960년대 공사 책임자인 황수영을 몰아세웠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다 젖혀두더라고, 현재 동국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토함산석굴중수상동문> 목조편액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주장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모함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사진 1>) 거기에는 유실된 전각을 1891년에 울산병사 조순상의 주도로 중창한 사실이 상세하고 명료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량식에서 부른 노동요까지 실려 있습니다. 전실 전각의 타당성 여부를 가릴, 문자 그대로 천금에 값하는 물증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이 결정적 물증을 어떻게 했습니까.

속이나 한 듯 상동문이라는 게 있긴 한데, ‘()구조에 관한 것뿐 목()구조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고들 정반대로 왜곡했습니다. 비판하는 제 낯이 뜨거울 정도인데, 눈앞에 뻔히 있는 데도 별 볼 일 없는, 시답잖은 것쯤으로 깎아내린 겁니다. 그리고 그런 가공된 언사들을 혹자는 토씨만 바꾸어 베끼고, 혹자는 아예 외면해온 게 물경 반세기입니다.

이 부끄러운 사태의 전말은 이 책(pp.294298)에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이것에 대해 반 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불리한 자료는 눈을 질끈 감아 버리신 겁니다.

 

 <사진 1> <토함산석굴중수상동문>(1891) 목조편액(이 책 p.295)

 

두 번째 증거는 더 기가 막힙니다.

남천우, 유홍준 교수 등은 전각 건립이 독재자 박정희의 뜻이었다면서 황수영을 곡학아세의 어용학자(御用學者)로 묘사했습니다. 전실 전각이 황수영과 박정희의 합작품이라는 논리인데, 이 역시 철저하게 가공돤 허구입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전각 신축을 포함해 1960년대 공사의 대강은 자유당 정권에서의 조사를 거쳐 민주당 정권 아래서 확정된 사안입니다.

 

 

<사진 2> 석굴암석굴의 현황과 보수대책()(문교부, 단기 4294. 2) 표지(이 책 p.233)

 

여기에도 부동의 물증이 있습니다. 석굴암석굴의 현황과 보수대책()이라는 제목의 누런 가리방본 책자가 그것입니다.(<사진 2>) 5.16.군사정변 석 달 전인 19612월에 당시 주무부처인 문교부에서 발간한 것인데, 전각 신축 등의 결정이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남김없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의 실물 원본은 지난해 624일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 바 있습니다.(http://news1.kr/articles/?1740672.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6/25/0200000000AKR20140625143800005.HTML?input=1179m.)

 

그러니까 5.16.정변이 일어나기 전, 또 황수영이 공사 책임자가 되기 전에 결정된 사항을 덮어씌웠던 것입니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의 현대판 사화라고 부름직한데, 후학(後學)이라는 이들이 속절없이 훼손되어가던 석굴암을 살려낸 선학(先學)을 민족 최고의 유산을 만고의 역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어디 석굴암만의 일입니까. 그분들은 황수영과 관계된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지요. 예를 들어 감포 앞바다의 대왕암이 문무왕의 수중릉임을 최초로 고증한 황수영과 신라오악조사단의 활동을 두고도 대국민사기극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저는 석굴암 원형논쟁을 순수한 학술논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학계의 패권주의 세력이 벌인 추한 전쟁, 학문을 빙자한 집단적 이지메라는 게 저의 추정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한 사람의 학자를 무리 지어 달려들어 그토록 오랫동안 유린한 까닭이 당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저는 논점마다 근거를 제시했고, 주류학자들은 그 반대였습니다.

귀하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과 배경, 혹은 이 실체적 증거들을 건성으로라도 언급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대가라는 분들이 앞세운 증거라는 것들을 단 한 건이라도 검증한 적이 있으신지요?

귀하는 오직 근거가 없다고 저를 공격하셨을 뿐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또 강조해온 핵심 증거들은 용케도 피해가는 교묘한 글쓰기를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분들은 황수영을 매도하고, 귀하는 똑같은 수법으로 저를 깎아내리는 이중의 모략이 연출된 것입니다.

 

귀하는 또 이런 말씀도 주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좀 더 확실한 근거를 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근거는 자료만 나열한다고 성립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적절히 배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성립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자료의 ''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의 '선택''해석'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해석도 할 줄 모르면서 자료나 잔뜩 쌓아놓고 자랑하는 속물(俗物), 자료를 ()’이 아닌 ()’으로 밀어붙이는 얼치기로 저를 치부하신 겁니다.

백보 양보해서 저는 구제불능의 속물이라고 칩시다. 하면, 원형논쟁과 관련해 저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주석을 달고 공개한 다른 연구자가 있습니까?

정확한 자료와 엄밀한 주석은 재야의 생존수칙입니다. 자료가 엉터리고, 주석이 엉망이라면 귀신도 모르게 수장되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요구합니다. 제가 어떤 자료를 어떻게 잘못 선택하고 잘못 해석했는지 적시해주십시오.

남사스런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여러 학회에서, 미술사와 관련해서는 그 흔한 석사과정조차 밟지 않은, 명백히 비전공자인 저에게 문호를 열었습니다. 논문도 발표하고, 토론도 하고, 심사도 합니다. 올 가을에는 국제학술회의에도 참가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근거도 없이 황당무계한 주장을 일삼아 왔다면, 관계자분들의 눈과 귀가 멀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더 이상 남의 노고를 헐뜯지 마십시오. 기본적인 자료조차 조사하지 않고, 식어빠진 자료를 두고두고 우려먹는 분들의 게으름이나 질타하십시오.

 

()

귀하의 첫 리뷰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생면부지의 귀하가 저를 향해 이토록 지독한 적의와 반감을 품게 된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번 글에서 그 궁금증을 상당 부분 풀어주셨습니다.

 

선생님 논조에 따르면 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터무니없는 주장만 할 거라고 생각하니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전공자도 아니면서 미술사학계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소속 학계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 저의 죄목인 셈입니다.

물론 저는 미술사를 전공하는 분들모두를 싸잡아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원형논쟁을 앞에서 이끌어 진실을 호도해온 일부 대가라는 분들의 시시비비를 가렸을 뿐입니다. 그것도 그분들의 연구영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원형논쟁에 국한된 일입니다.

 

당연한 지적이지만, 그분들은 금단의 성역이 아닙니다. ‘극장의 우상이라는 말이 왜 생겼겠습니까. 기존의 권위에 안주하고 맹종하는 한 학문의 발전은 난망한 일입니다.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때 새로운 담론의 문이 열린다는 건 지성사의 법칙 아닙니까.

만약, 우리 학계의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그리하여 토함산의 현실에 눈감고 토목공사 자체가 불가한 황당한 주장들이 걸러졌다면, 저 같은 문외한이 주제넘게 나서는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없었을 것이고, 이 책도 당연히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 중에는 소장연구자들이 하루 속히 권력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 십 년째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음악만 틀어내고 있는 현재의 우리 석굴암학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법당의 지붕을 뜯어 내자거나 광창을 뚫어 놓자는, 또 샘물이 법당 밑으로 흘러가게 하자는 등 석굴암을 지상에서 영영 지워버리고도 남을 희론들이 천하의 탁견인 양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튼 귀하가 털어놓으셨으니, 이참에 저도 분명히 하겠습니다. 저는 이 책의 속표지 이면에 아예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석굴암을 사랑했으되 세상은 그의 정심(淨心)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동해의 소금안개와 토함산의 눈비, 진흙먼지로부터 석굴암을 구해냈지만, 세상은 그를 석굴암을 망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201121, 그가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황수영입니다. 이 책을 그의 영전에 바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을 쓴 목적 중에는 일군의 후학들에게 평생을 물어뜯기다가 유명을 달리한 불운한 선구자의 넋을 신원해드리려는 뜻도 있습니다.

미술사를 전공하신다니, 여쭙겠습니다.

단 일순이라도 우리 미술사학의 개척자로서 그분의 학문, 그리고 그분의 잃어버린 삶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귀하의 어설픈 글이 혹시라도 구천을 떠도는 그분의 넋을 다시금 슬프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없으십니까.

지금의 학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계속 저를 비판해 오셨는데, 바로 그분들이 선학의 등 뒤에 대고 온갖 조롱과 비난을 수십 년 동안이나 퍼부은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씀도 없으신 건 과연 공정한 일인가요.

 

  <사진 3> 표지 사진의 원본(박정훈)

 

이 책의 표지 사진을 보셨겠지요.(<사진 3>)  왜 석굴암 본존불의 정면 모습이 아닌, 하필 뒷모습 사진을 택했겠습니까. 부처님도 돌아앉을 정도의 추한 일들이 이 개명천지에 버젓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학문은 시비와 진위, 정사를 논파하는 공적인 분야입니다. 치기와 만용으로 하는 분야도 아니고, 자기만족이나 과시를 위한 분야도 아닙니다. 개인적 공명심이든, 혹은 소속집단에 대한 충성심이든 사()가 끼어들면 파사현정은 요원해집니다. 비뚤어진 자존심은 스스로를 해칠 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저에게는 현재 우리 학계의 몇몇 분들, 혹은 귀하의 자존심보다 그분의 명예가 더 무겁고 더 소중합니다. 그분의 명예가 옳게 회복될 때 공리공론에 빠진 오늘의 석굴암학이 실사구시의 정신을 되찾아 바로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밖에 이에 의하면부분, 강교수님 저술 관련 부분 등에서도 허망한 주장을 펼치셨으나 얽힌 일도 많고 분량도 너무 길어져 반론을 부득이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201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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