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법정에 서다 - 신화와 환상에 가려진 석굴암의 맨얼굴을 찾아서
성낙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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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님의 비판에 대한 반론(3)

 

돌궐님의 <제가 글로써 업을 쌓았습니다>(마이페이퍼. 1/6)의 존재를 뒤늦게 알았습니다. 일찍 발견했다면, 반론(2)’(1/11)의 내용이 많이 달라졌을 터인데, 혼선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각설하고, 귀하가 붙인 번호에 따라 차례로 제 생각을 정리하겠습니다. 분량 문제가 있어 ‘1.’ 부분에 대해서만 먼저 올리겠습니다.

 

<‘논거 부족’? 등의 문제>

귀하는 시종 제가 공연히 기존학계를 공박했다는 입장을 취하셨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어김없이 기존 학설에 대한 선생님의 불공정한 평가(축소·과장의 두 측면에서)가 그 어떠한 검증도 없이 독단적으로 개진되었다면서, “억측과 논리적 비약, 그리고 논거의 부족등을 강조하셨습니다. 단지 그 점에 항의하고 지적했을 뿐이라는 합리화의 말씀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들 하지요.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몇 페이지만 넘겨도 금방 진위가 드러날 발언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던지는 귀하의 용기가 부럽다고 해야 할까요.

첫 문장에서 불공정한 평가라고 단정하셨습니다.

공정성 문제라면 친소에 따라 잣대가 굴절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소설쟁이에다 비전공자인 저를 학계로 이끌어주신, 문자 그대로 은인이라 할 고 장충식 교수님까지 비판했습니다.(p.257) 석굴암을 샘물 위에 지었다는 낭설에 신비주의적인 해석을 가해 기정사실화하는 데 일조하신 때문입니다. 결초보은은 못할망정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른 겁니다.

특히 논거가 부족하다시니 그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연말에 과분한 상 하나가 이 책에 주어졌습니다. 심사단은 석굴암 원형논쟁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세우면서 정확한 전거를 담아 문제점을 서술했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이 책의 장점으로 무엇보다 근거자료의 충실을 꼽은 것입니다. 설마 심사위원들이 논거가 엉망이고 억측과 비약으로 가득 찬데도 거짓말을 했겠습니까?

이밖에 수십 군데 언론의 서평은 생략하겠습니다만, 사정이 이럴진대 유독 귀하만이 전거 부족 운운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책을 포함해 그동안 제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순전히 비약과 억측으로 기존학계를 공박해 왔다면, 아마도 지금쯤 누추한 제 이름 석 자조차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방향을 바꿔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귀하가 저에게 씌운 혐의들은 주류학계한테 어울리지 않나요? 지난 수십 년간 원형논쟁을 이끌어온, 지금은 우리 문화학술계에 거대권력으로 군림 중인 소위 대가라는 분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분들이야말로, 불리한 자료는 감추고 증거능력이 의심스러운 자료들을 앞세워 비바람에 깎이고 폭설과 영하의 날씨에 얼어터지던 석굴암을 되살려낸 1960년대 복원공사의 성과를 부인해 왔지요. 자료 발굴에 힘쓰기는커녕 3년 묵은 노루뼈 우려먹는다는 말처럼 똑같은 자료를 재탕, 삼탕해 왔다고 해도 별반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멀쩡한 미술사학계의 선학 한 분이 학자로서의 생명이 끊기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학계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제물로 삼았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정황이 계속된 겁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주류학계의 그런 독단적행태를 정면에서 다루었습니다. 달걀로 바위치기가 될지 모르지만,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먼 황당한 가설들로 인해 한껏 신비화된 석굴암을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역사와 현실 속으로 되찾아오기 위한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저는 그들의 논거와 논리를 치사할정도로 파헤쳤고, 거기에 합당한 자료와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신라 적부터 21세기 초까지의 사서, 지리지, 답사기, 지도, 산수화, 현판, 논문, 수필, 교과서, 신문기사, 사진, 통계, 도면, 도표, 입장권, 엽서, 관광 직인, 그래픽, 포스터, 다큐멘터리 등 종류를 불문한 자료가 망라되었습니다. 하다못해 신라향가부터 경주지역의 지명과 산명, 유적명 등까지 뒤졌으며, 초등학교 자연학습자료까지 실었습니다.(p.258) 물론 다수는 처음 소개되거나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것들입니다.

그만큼 이 책은 자료가 넘쳐서 탈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귀하의 눈에만 안 보인다니, ‘원형논쟁과 관련해 혹여 이 책의 절반만큼이라도 자료를 발굴하고 인용하고 낱낱이 주석을 붙인 저술이 또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리합니다. 귀하가 아무리 부정해도 이 책에 실린 자료들은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10년 뒤든 100년 뒤든 혹여 단 한 분의 독자라도 들춰본다면, 그때도 변함없이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의 50년 동안 우리 지식시장의 초라한 자화상을 증언할 것입니다.

 

<이른바 조작혹은 논점 일탈’? 문제>

귀하는, “정제된 표현을 쓰지 못한 점을 인정하면서 죄송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돌연 저의 문제 제기 방식이 조작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앞뒤의 문맥들은 생략한 채 선생님께서 불편하셨던 문장만 뽑아서 나열하신 것은 상당히 정치적이며 논점의 핵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조작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 것도 같지만, 초점 흐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쭙겠습니다. 반론을 작성하면서 동의할 수 없는 문단이나 대목을 예시하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이고, “조작이 되는지요? 그러지 않고 누군가의 글을 비판하거나 시비를 가릴 방법이 달리 있습니까?

발췌 자체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발췌된 부분이 핵심이냐, 지엽이냐의 여부입니다. 핵심은 젖혀놓은 채 지엽적인 부분만을 놓고 논박한다면 그때는 치졸한 왜곡 내지 조작의 혐의를 둘 수도 있겠지요.

물론 제가 예시한 부분들은,(뒤에 다시 나오지만) 핵심에 해당하는 것들의 일부입니다.

똑같은 맥락에서, 귀하는 또 이렇게도 반박하셨습니다.

 

제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주요 논점들은 그저 귀하의 주관적 판단이자 소신의 영역이므로, 저자로서 아쉽긴 해도 존중해 드릴 부분’(제안글)이라며 넘어가시고, 논점들과는 별 상관도 없는 표현의 문제들만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내용을 얘기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제 글의 어투를 문제 삼은 것이죠. 이것은 명백한 논점일탈입니다.”

 

본체는 놔두고 곁가지나 가지고 분란을 일으켰다는 취지입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을 단지 표현(어투)의 문제로 축소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를 별것 아닌 것에 소동을 부리는 소아적 인간으로 인상 지우셨습니다.

이 역시 앞의 논법과 유사한 초점 흐리기의 일종입니다.

귀하의 리뷰는 서평(書評)입니다. 서평이라면 특정 책의 가치, 혹은 성패를 평가하는 글이겠지요. , 평가가 서평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그런데 제가 예로 든 대목들은 귀하가 진짜말하고자 하는 평가입니다.

한 가지만 다시 보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논거로 이처럼 단언을 한단 말인가. 남이 틀리면 자기는 다 맞은 건가? 남이 틀린 이유와 자기가 맞는 이유는 서로 다른 문제다. 아수라가 제자리에 없었다면 저자의 주장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므로 이렇게 우기는 것 같은데, 제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달라. 근거가 없으면 아무 말을 말자. 그게 지식인의 올바른 태도이다.”

 

이런 부분들이 어찌 단순한 표현이겠습니까. 이 주장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서평의 핵심인 평가 그대로입니다. 이것들을 단순한 표현이라고 우기신다면, 귀하는 서평을 쓴 게 아니라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핵심인 평가가 빠진 글을 서평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원론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이라는 것에서 이건 내용이고, 이건 표현이다, 하고 칼로 무 자르듯 나누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시든 소설이든 논문이든, 예외가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내용과 표현이 얼추 함께 가는 것 아닌가요?

정리하겠습니다. 제 반론들의 논점은 귀하의 리뷰에 나타난 평가(내용)의 타당성 여부입니다. 표현(어투)는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존중해 주겠다는 것(“주요 논점”)은 뭐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노파심에서 그 문제도 명확히 해두고자 합니다.

다음은, 저의 <돌궐님께 드리는 제언>의 관련 부분입니다.

 

귀하는 첫 번째 글인 마이리뷰(8/9)에서 이 책의 내용 전반을 대체로 부정하셨습니다. 기존학계의 시각과 거의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의 논점들에 반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귀하의 주관적 판단이자 소신의 영역이므로, 저자로서 아쉽긴 해도 존중해 드릴 부분입니다.

 

여기서 이 책의 논점들이란 더도 덜도 아닌 주류학계의 통설들에 대한 저의 견해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개방구조설, 절곡설 등에 맞서 전실전각은 종교성전의 절대적인 요구이고, 전실은 지금처럼 신중 두 상을 펼쳐놓는 게 타당하다는 것 등이 이 책의 주된 논점들입니다.(동해일출신화가 일제의 달콤한 문화식민이데올로기의 변종이라는 것도 이 책의 중심 논점이나 귀하가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으므로 생략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것들에 반대하는 것 자체는 귀하의 자유이므로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뿐입니다.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겠다는 걸 남이 뭐라겠습니까. 다만, 반대하는 건 좋으나, 남의 것을 가로챘다느니 논거가 부족하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비방과 야유는 삼가라는 것이고, 바로 그것이 제 반론들의 논점입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 책의 논점들과 제 반론들의 논점은 별개입니다.

저는 (A)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귀하는 (B)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은 것입니다. ‘논점이라는 단어를 뒤섞는 방식으로 제 반론의 초점을 흐리는, 귀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조작을 감행하신 겁니다. 따라서 논점일탈이라는 말은 귀하에게 돌려드립니다.

 

다음은 인터넷에 떠도는 <서평을 쓸 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일>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서평의 본분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책의 저자가 의도하는 바와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서평에서 책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인 인상이나 기호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그 평가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평가는 책의 분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므로, 책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동일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한 번쯤 돌아보실 대목이 없으신가요?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차차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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