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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김의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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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구원을 이미 내 눈으로 보았나이다 (루카 2:30)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생전 메시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행복이다. 그런데 여기서 행복은 통속적인 일상의 안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치 가톨릭 교회에서 평화가 뜻하는 것이 그러하듯이. 그만큼 프란시스코 교황님이 강조하신 행복을 이해하고 깨닫고 그 길을 향해가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이 행복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를 좀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설교, 연설, 문헌, 묵상 등을 통해 우리가 행복을 향해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안내하고 있다.

 

우선 프란시스코 교황님이 소개한 15가지의 행복을 향한 나침반을 간략히 살펴보자. 15가지의 나침반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용서를 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리키고 있다. 세속적인 행복이 나 자신의 만족과 기쁨에 머문다면, 가톨릭에서의 행복은 곧 나로 인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는 향기와 같은 것이며, 이를 위해 인내하고, 희망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들은 우리가 어떻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세세히 가르쳐 주신다. 요컨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설파한 행복은 곧 위로이며, ‘실천하는 용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행복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주는 것이며, 내일을 향해 꿈꾸며 희망하는 것인 동시에 혁명이며 구체적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하신다. 이러한 과정의 끝은 결국 삶의 풍성한 열매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자상하게 안내하신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의 정도와 크기는 제 각각이겠지만, 개개인의 수많은 행복의 공통점은 어찌보면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타자의 시각으로 상대가 행복해 보이더라도 정작 그 본인은 그 행복의 소중함을 간직하기보다는 자칫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차에 몸을 실은 것처럼 그 보다 더 큰 행복을 무한히 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느낀 행복은 어느새 불행과 고통, 슬픔, 좌절 등으로 뒤엉켜 버리고 만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에게 안내하는 행복의 길은 이런 세속적인 행복이 아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참된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총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주신 그 선물의 소중함을 깨닫는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참된 기쁨은 어떤 물건이나 소유에서 오지 않습니다.(중략)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라시는 것을 느끼는 기쁨입니다. (본문 302-303)



*이 리뷰는 가톨릭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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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김수환 -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
김수환 구술, 재단법인 가톨릭평화방송 엮음, 조한건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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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시편 8:5)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신지 어언 20여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덧없이 빠름을 새삼을 느끼지만, 김수환 추기경께서 남기신 울림 있는 말씀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시간이 모든 것을 덮고 퇴색시키며, 망각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시기 5년 전인 2004년 가톨릭평화방송에서 펴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의 개정판이다. 여느 책처럼 개정판이라고 해서 책의 내용이 증보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현재 가톨릭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가 진행하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시복 건과 관련하여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을 홍보와 현양 차원에서 다시 재판하기 위해 개정판으로 재출간된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그야말로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다.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가 성직자로서의 그의 발자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 회고록을 통해 잘 드러난다. 특히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30(1968-1998)을 역임했던 그였지만, 그 역시 취임 초기에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 자리를 면할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이 자리가 결코 녹녹한 자리는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개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의 회고록 속에서 가장 울림을 주는 단어는 사람사랑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장면이 이 단어들 속에 오롯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1987년 이른바 ‘6.10 민주항쟁당시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위대 수백명이 이를 해산하려는 경찰병력들과의 대치상황이 그것이다. 수일째 계속되는 경찰과의 시위대의 대치 속에서 정부가 급기야 경찰병력의 투입과 시위대의 연행하려 하자 김수환 추기경은 다음과 같은 단호한 입장을 천명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중략)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갑시오.” 이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이러한 외침은 종교란 무엇인가를 처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 어떤 힘으로도 물러서질 않았을 것 같았던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강압과 독재를 한 성직자의 단호한 외침으로 멈칫거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이번에 이때의 아스라한 기억을 갖고 이 회고록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 성직자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이 사람이며, 사람들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하신 대로 살아가는 참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번 개정판에 말미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2009년에 이 책 초판이 발간되었을 당시 서문을 맺음말로 다시 실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수환 추기경이 이 당부는 그 분이 선종하신 후에도 여전히 살아서 울리는 종소리와 같다. 서로 서로 이웃끼리 사랑하는 세상이야 말로 이 땅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기본 조건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세상이 바로 하느님께서 맞갖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저물어 가는 2025년은 얼마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포한 희년이자, 한국 교회에서는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아울러 그동안 한국의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오랫동안 염원해온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시성 절차가 본격화된 해이기도 하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시성은 최근의 시복 건에 대한 시복재판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회고록은 단순히 한 성직자의 삶을 재조명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신앙의 신비를 발견할 수 있는 뜻깊은 기록이다.

 

 

나의 사목 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처럼

성체성사의 주님처럼 생명의 빵이 되는 삶,

모든 이의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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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도의 언어 -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지음, 이기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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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창세기 1:31)

 

구약성경의 시편은 주일미사 전례를 통해 화답송으로 매주 접해 친숙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의 시편은 크게 기도찬양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편이 작성된 연대는 기원전 1440년에서 기원전 586년까지로 약 900여년 간 기록된 것이다. 시편의 영어 이름이 ‘psalms’도 그리스어로 ‘psallo’, 즉 현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편은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쓰여졌고, 하느님께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인간의 신앙고백이라는 점에서 성서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이다. 그런 점에서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신부님의 시편, 기도의 언어는 시편을 통해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하는지를 안내하는 유용한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103편으로 이뤄진 시편에서 기도를 표현하는 낱말들 중 핵심어 40개를 추려 이 낱말들이 성서 속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그리고 현대적 사고방식으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씨줄과 날줄로 천을 짜듯이 촘촘히 다루고 있다. 요컨대, ‘가련한(불쌍한)’이라는 낱말에서부터 (영혼)’이라는 낱말에 이르기 까지 총 40개의 낱말들을 중심으로 구약성경에서 언급되는 빈도수와 각각의 단어의 뿌리와 성경 속의 쓰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통독하면서 부딪히는 말씀의 난해함이나 이해가 필요할 때 이 책은 유용한 참고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이 책에서 다루는 낱말 중 ()’만 하더라도 그렇다. ‘은 시편의 저자들이 사람을 언급할 때 사용한 용어로, 궁극적으로 인간과 하느님을 구분하기 위해 쓰였다는 점이다. 하느님은 히브리어로 네페스루아흐를 지니신 분이시다. , ‘을 지니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며, 인간은 ’, 즉 히브리어로 바살을 가졌다는 점에서 구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요한복음 1)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신부가 이 말뜻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요컨대, “예수님의 강생으로 이 육화의 신비가 성취될 때까지, 성경은 인간을 하느님으로부터 분리하여 이신 하느님과 인 인간의 존재 사이에 놓인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를 상기시켜 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낱말들은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맥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평소 많은 신자들이 시편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감정과 의문인 시편은 폭력적인가?’,‘시편은 남성의 기도인가’, ‘시편에 빈번히 등장하는 원수의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등에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성경 속에서 쉽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궁금했던 부분들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책을 통해 이해하고 깨닫음을 바탕으로 온전히 하느님께 다가가는 일이다. 시편이 오랜 세월에 걸쳐 기도찬양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이 책을 읽은 후에야 좀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책 제목처럼 시편은 우리에게 기도의 언어이며, 그 기도는 곧 하느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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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동물과 식물
허영엽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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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창세기 1:31)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정경(Canon)성경이라고 한다. 잘 알듯이 성경은 예수님 이전(기원전, BC)에 기록된 구약 39권과 예수님 이후(기원후, AD)에 기록된 신약 27권 등 총6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허영엽 신부님의 󰡔성경 속 동물과 식물󰡕은 이 66권으로 구성된 성경에 나오는 각종 동물과 식물에 깃든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허영엽 신부님께서 서문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이 글은 2009년부터 3년여간 가톨릭평화신문에 책 제목과 동일한 제목으로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이다.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 무심코 지나쳤거나 그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던 성경 속의 동식물들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있었는지를 깨닫는 것 못지않게 성경 속에 언급된 동식물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창세기에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느님이 여섯째 날까지 빛과 어둠, 하늘과 물, 땅과 바다, 그리고 식물, 태양과 달, 그리고 별, 물고기와 새, 육지동물과 인간 등을 차례 차례 만드시면서 매번 보시기 참 좋았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왜 하느님은 천지창조를 하시면서 동물보다는 식물을 먼저 창조하셨던 것일까? 그리고 이 동식물들은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 두 물음의 답을 찾아가면서 읽다 보면 금새 책 한권을 다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동식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경에서 무려 50여 차례나 언급되는 은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창세기에서 등장하는 뱀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게 만든다. 그런데 신약 성경의 요한복음(3, 13-14)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 16)”고 말씀하시도 한다. 구약의 탈출기에서는 모기메뚜기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리는 재앙과 경고의 피조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여우’, ‘’, ‘이리’, ‘하이에나’, ‘전갈등은 거짓과 교활함, 탐욕, 이단과 악마를 상징하는 동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한편 성경 속의 식물들은 동물들에서 발견되는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대부분 신성하거나 평화, 사랑, 부활, 축복 등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예컨대, 우리가 복음을 통해 자주 접한 겨자씨만 하더라도 성경에 나오는 모든 식물 중에 가장 작지만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그 어떤 식물보다도 원대하다. 예수님은 이 겨자씨를 하느님 나라와 믿음에 비유하셨고(마태 13, 31-32; 17,20), 이는 누룩의 비유(마태 13,33)로 연결된다. 물론 식물들 중에서 부정적 의미를 상징하는 것도 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쐐기풀의 경우 구약성경에서 폐허와 몰락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와 회복의 발판이 되는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책은 성경을 통독하거나 필사하면서 등장하는 각종 동식물들이 나올 때마다 곁에 두고 찾아서 그 동식물의 의미나 상징을 일별 하는데 활용하면 성경 말씀의 깊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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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 - 그리스도인의 묵상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서명옥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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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의견과 슬기를 올바로 갖추고 그분의 신비를 묵상하리라. (집회서 39:7)

 

우리는 미사 참례 때마다 복음 말씀을 듣고 짧은 묵상을 하곤 한다. 때론 이 짧은 시간을 그저 침묵으로 보내기도 하고, 복음 말씀을 떠올리면서 잠시나마 나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묵상의 사전적 의미는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자에게 묵상은 과연 무엇을 위함일까? 묵상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기도해야 하는가? 󰡔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는 바로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는 이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묵상에 관한 책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묵상을 해야하는지를 일깨워 영성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다만 조금은 긴 호흡으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갈 필요가 있다. 그만큼 이 책에서 다루는 묵상은 내용적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깊고 또 그 속에서 우리가 놓쳐왔던 것들을 하나 하나 짚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발타사르 신부님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크게 침묵’, ‘경청’, 그리고 순종이라는 묵상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침묵은 그저 말하지 않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이라는 보따리를 풀어헤치면 그 속에는 예수님과의 교감을 통해 영적인 내면의 닫힌 문이 열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비로소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과의 일치를 이루게 되며, 이 일치는 곧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성모 마리아가 바로 이러한 묵상과 관상의 원형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를 수태하는 과정은 완전한 내맡김이며, 이를 통해 모든 것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일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성모님의 수태와 아기 예수의 탄생,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그 여정에 성모님은 언제나 주님과의 일치를 향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발타사르 신부님이 강조하듯이 그리스도교 묵상은 개인적 영성을 위한 것에 그치지 않으며 교회적 차원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묵상은 로부터 시작하였다 하더라도 결국은 우리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갖게 되며, 이는 곧 개인의 경계와 교회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를 발타사르 신부님은 “‘사랑으로 이르기 위한묵상이며, 이는 크게 다음과 같은 네 단계를 거친다고 강조한다. 첫째 단계는 자신의 세속적 존재를 아주 광범위하고 널리 드러내는 모든 것은 순수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더 깊이 숙고하게 되는 단계이다. 셋째 단계는 이 모든 것이 결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이다. 마지막 단계는 세상의 현존과 그것의 모든 가치를 그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단계이다.

 

묵상은 믿음에 대한 깨달음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하느님의 말씀의 광대함을 깨달는 시간이며, 이를 통해 내 자신의 내면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읽은 󰡔사막 교부들의 금언󰡕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침묵경청은 초대교회의 신앙에서 이른바 사막의 교부로 일컬어지는 수도자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덕목이었다. 이들 중에는 침묵을 지키는 법을 깨우칠 때까지 입에 돌을 물고 살았던 이도 있을 만큼 그 무엇보다도 침묵을 중시했다. 그것은 침묵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듣기 위함이었고, 하느님 말씀을 경청한다는 것은 곧 순종하며 일치의 길을 가기 위한 수행이자 여정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을 우리는 경청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묵상은 그저 침묵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아주 가까이 계신다. 마치 우리가 길을 걷다 돌아서는 모퉁이에서 마주치는 분이 바로 주님이신 것이다.

 

그리스도교 묵상은 예수님의 말씀뿐 아니라 그분의 모든 상황과 행위 안에서

하느님의 상황과 태도를 알아보기 위해 있는 것이다. (본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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