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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김수환 -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
김수환 구술, 재단법인 가톨릭평화방송 엮음, 조한건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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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시편 8:5)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신지 어언 20여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덧없이 빠름을 새삼을 느끼지만, 김수환 추기경께서 남기신 울림 있는 말씀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시간이 모든 것을 덮고 퇴색시키며, 망각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시기 5년 전인 2004년 가톨릭평화방송에서 펴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의 개정판이다. 여느 책처럼 개정판이라고 해서 책의 내용이 증보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현재 가톨릭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가 진행하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시복 건과 관련하여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을 홍보와 현양 차원에서 다시 재판하기 위해 개정판으로 재출간된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그야말로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다.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가 성직자로서의 그의 발자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 회고록을 통해 잘 드러난다. 특히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30(1968-1998)을 역임했던 그였지만, 그 역시 취임 초기에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 자리를 면할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이 자리가 결코 녹녹한 자리는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개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의 회고록 속에서 가장 울림을 주는 단어는 사람사랑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장면이 이 단어들 속에 오롯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1987년 이른바 ‘6.10 민주항쟁당시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위대 수백명이 이를 해산하려는 경찰병력들과의 대치상황이 그것이다. 수일째 계속되는 경찰과의 시위대의 대치 속에서 정부가 급기야 경찰병력의 투입과 시위대의 연행하려 하자 김수환 추기경은 다음과 같은 단호한 입장을 천명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중략)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갑시오.” 이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이러한 외침은 종교란 무엇인가를 처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 어떤 힘으로도 물러서질 않았을 것 같았던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강압과 독재를 한 성직자의 단호한 외침으로 멈칫거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이번에 이때의 아스라한 기억을 갖고 이 회고록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 성직자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이 사람이며, 사람들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하신 대로 살아가는 참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번 개정판에 말미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2009년에 이 책 초판이 발간되었을 당시 서문을 맺음말로 다시 실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수환 추기경이 이 당부는 그 분이 선종하신 후에도 여전히 살아서 울리는 종소리와 같다. 서로 서로 이웃끼리 사랑하는 세상이야 말로 이 땅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기본 조건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세상이 바로 하느님께서 맞갖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저물어 가는 2025년은 얼마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포한 희년이자, 한국 교회에서는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아울러 그동안 한국의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오랫동안 염원해온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시성 절차가 본격화된 해이기도 하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시성은 최근의 시복 건에 대한 시복재판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회고록은 단순히 한 성직자의 삶을 재조명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신앙의 신비를 발견할 수 있는 뜻깊은 기록이다.

 

 

나의 사목 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처럼

성체성사의 주님처럼 생명의 빵이 되는 삶,

모든 이의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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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도의 언어 -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지음, 이기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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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창세기 1:31)

 

구약성경의 시편은 주일미사 전례를 통해 화답송으로 매주 접해 친숙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의 시편은 크게 기도찬양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편이 작성된 연대는 기원전 1440년에서 기원전 586년까지로 약 900여년 간 기록된 것이다. 시편의 영어 이름이 ‘psalms’도 그리스어로 ‘psallo’, 즉 현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편은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쓰여졌고, 하느님께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인간의 신앙고백이라는 점에서 성서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이다. 그런 점에서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신부님의 시편, 기도의 언어는 시편을 통해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하는지를 안내하는 유용한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103편으로 이뤄진 시편에서 기도를 표현하는 낱말들 중 핵심어 40개를 추려 이 낱말들이 성서 속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그리고 현대적 사고방식으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씨줄과 날줄로 천을 짜듯이 촘촘히 다루고 있다. 요컨대, ‘가련한(불쌍한)’이라는 낱말에서부터 (영혼)’이라는 낱말에 이르기 까지 총 40개의 낱말들을 중심으로 구약성경에서 언급되는 빈도수와 각각의 단어의 뿌리와 성경 속의 쓰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통독하면서 부딪히는 말씀의 난해함이나 이해가 필요할 때 이 책은 유용한 참고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이 책에서 다루는 낱말 중 ()’만 하더라도 그렇다. ‘은 시편의 저자들이 사람을 언급할 때 사용한 용어로, 궁극적으로 인간과 하느님을 구분하기 위해 쓰였다는 점이다. 하느님은 히브리어로 네페스루아흐를 지니신 분이시다. , ‘을 지니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며, 인간은 ’, 즉 히브리어로 바살을 가졌다는 점에서 구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요한복음 1)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신부가 이 말뜻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요컨대, “예수님의 강생으로 이 육화의 신비가 성취될 때까지, 성경은 인간을 하느님으로부터 분리하여 이신 하느님과 인 인간의 존재 사이에 놓인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를 상기시켜 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낱말들은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맥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평소 많은 신자들이 시편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감정과 의문인 시편은 폭력적인가?’,‘시편은 남성의 기도인가’, ‘시편에 빈번히 등장하는 원수의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등에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성경 속에서 쉽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궁금했던 부분들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책을 통해 이해하고 깨닫음을 바탕으로 온전히 하느님께 다가가는 일이다. 시편이 오랜 세월에 걸쳐 기도찬양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이 책을 읽은 후에야 좀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책 제목처럼 시편은 우리에게 기도의 언어이며, 그 기도는 곧 하느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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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동물과 식물
허영엽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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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창세기 1:31)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정경(Canon)성경이라고 한다. 잘 알듯이 성경은 예수님 이전(기원전, BC)에 기록된 구약 39권과 예수님 이후(기원후, AD)에 기록된 신약 27권 등 총6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허영엽 신부님의 󰡔성경 속 동물과 식물󰡕은 이 66권으로 구성된 성경에 나오는 각종 동물과 식물에 깃든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허영엽 신부님께서 서문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이 글은 2009년부터 3년여간 가톨릭평화신문에 책 제목과 동일한 제목으로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이다.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 무심코 지나쳤거나 그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던 성경 속의 동식물들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있었는지를 깨닫는 것 못지않게 성경 속에 언급된 동식물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창세기에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느님이 여섯째 날까지 빛과 어둠, 하늘과 물, 땅과 바다, 그리고 식물, 태양과 달, 그리고 별, 물고기와 새, 육지동물과 인간 등을 차례 차례 만드시면서 매번 보시기 참 좋았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왜 하느님은 천지창조를 하시면서 동물보다는 식물을 먼저 창조하셨던 것일까? 그리고 이 동식물들은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 두 물음의 답을 찾아가면서 읽다 보면 금새 책 한권을 다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동식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경에서 무려 50여 차례나 언급되는 은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창세기에서 등장하는 뱀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게 만든다. 그런데 신약 성경의 요한복음(3, 13-14)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 16)”고 말씀하시도 한다. 구약의 탈출기에서는 모기메뚜기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리는 재앙과 경고의 피조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여우’, ‘’, ‘이리’, ‘하이에나’, ‘전갈등은 거짓과 교활함, 탐욕, 이단과 악마를 상징하는 동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한편 성경 속의 식물들은 동물들에서 발견되는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대부분 신성하거나 평화, 사랑, 부활, 축복 등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예컨대, 우리가 복음을 통해 자주 접한 겨자씨만 하더라도 성경에 나오는 모든 식물 중에 가장 작지만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그 어떤 식물보다도 원대하다. 예수님은 이 겨자씨를 하느님 나라와 믿음에 비유하셨고(마태 13, 31-32; 17,20), 이는 누룩의 비유(마태 13,33)로 연결된다. 물론 식물들 중에서 부정적 의미를 상징하는 것도 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쐐기풀의 경우 구약성경에서 폐허와 몰락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와 회복의 발판이 되는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책은 성경을 통독하거나 필사하면서 등장하는 각종 동식물들이 나올 때마다 곁에 두고 찾아서 그 동식물의 의미나 상징을 일별 하는데 활용하면 성경 말씀의 깊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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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 - 그리스도인의 묵상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서명옥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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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의견과 슬기를 올바로 갖추고 그분의 신비를 묵상하리라. (집회서 39:7)

 

우리는 미사 참례 때마다 복음 말씀을 듣고 짧은 묵상을 하곤 한다. 때론 이 짧은 시간을 그저 침묵으로 보내기도 하고, 복음 말씀을 떠올리면서 잠시나마 나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묵상의 사전적 의미는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자에게 묵상은 과연 무엇을 위함일까? 묵상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기도해야 하는가? 󰡔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는 바로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는 이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묵상에 관한 책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묵상을 해야하는지를 일깨워 영성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다만 조금은 긴 호흡으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갈 필요가 있다. 그만큼 이 책에서 다루는 묵상은 내용적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깊고 또 그 속에서 우리가 놓쳐왔던 것들을 하나 하나 짚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발타사르 신부님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크게 침묵’, ‘경청’, 그리고 순종이라는 묵상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침묵은 그저 말하지 않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이라는 보따리를 풀어헤치면 그 속에는 예수님과의 교감을 통해 영적인 내면의 닫힌 문이 열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비로소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과의 일치를 이루게 되며, 이 일치는 곧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성모 마리아가 바로 이러한 묵상과 관상의 원형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를 수태하는 과정은 완전한 내맡김이며, 이를 통해 모든 것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일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성모님의 수태와 아기 예수의 탄생,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그 여정에 성모님은 언제나 주님과의 일치를 향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발타사르 신부님이 강조하듯이 그리스도교 묵상은 개인적 영성을 위한 것에 그치지 않으며 교회적 차원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묵상은 로부터 시작하였다 하더라도 결국은 우리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갖게 되며, 이는 곧 개인의 경계와 교회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를 발타사르 신부님은 “‘사랑으로 이르기 위한묵상이며, 이는 크게 다음과 같은 네 단계를 거친다고 강조한다. 첫째 단계는 자신의 세속적 존재를 아주 광범위하고 널리 드러내는 모든 것은 순수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더 깊이 숙고하게 되는 단계이다. 셋째 단계는 이 모든 것이 결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이다. 마지막 단계는 세상의 현존과 그것의 모든 가치를 그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단계이다.

 

묵상은 믿음에 대한 깨달음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하느님의 말씀의 광대함을 깨달는 시간이며, 이를 통해 내 자신의 내면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읽은 󰡔사막 교부들의 금언󰡕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침묵경청은 초대교회의 신앙에서 이른바 사막의 교부로 일컬어지는 수도자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덕목이었다. 이들 중에는 침묵을 지키는 법을 깨우칠 때까지 입에 돌을 물고 살았던 이도 있을 만큼 그 무엇보다도 침묵을 중시했다. 그것은 침묵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듣기 위함이었고, 하느님 말씀을 경청한다는 것은 곧 순종하며 일치의 길을 가기 위한 수행이자 여정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을 우리는 경청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묵상은 그저 침묵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아주 가까이 계신다. 마치 우리가 길을 걷다 돌아서는 모퉁이에서 마주치는 분이 바로 주님이신 것이다.

 

그리스도교 묵상은 예수님의 말씀뿐 아니라 그분의 모든 상황과 행위 안에서

하느님의 상황과 태도를 알아보기 위해 있는 것이다. (본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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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레오 14세 - 최초 공식 전기
도메니코 아가소 지음, 이재협 외 3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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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 모퉁잇돌을 놓았느냐? (38:6)

 

 

인류의 역사를 가장 극단적으로 압축한다면 전쟁평화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그 참혹함을 끝내려는 노력은 어김없이 평화를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길고 긴 전쟁속에서 얻는 짧은 평화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길고 긴 전쟁 중에서도 무려 30년을 지속했던 참혹한 전쟁이 있었다. 바로 종교전쟁(1618-1648)’으로도 알려진 중세 유럽에서 벌어졌던 전쟁이 그것이다. 이 전쟁은 잘 알려져 있듯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간의 갈등에 비롯되었고, 그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끝맺을 수 있었다.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가톨릭교회의 막대한 영향은 이 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약해졌고, 이른바 종교와 정치가 완전히 분리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전쟁은 가톨릭교회가 오늘날까지 지속될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을 찾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요컨대 가톨릭교회가 다시 인류의 평화에 진지한 물음에 답을 구하고자 노력하고, 또 실제로 그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모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전쟁을 통해 얻은 교훈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세속적인 권력이 아닌 세상의 평화를 통해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는데 교회가 제역할을 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이었다. 이때 이후로 가톨릭교회는 전쟁의 중심에서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찾는데 인류가 진심을 다하도록 독려하고 또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반목은 전쟁이라는 처절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2025년 현재,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고,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갈등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콘클라베를 통해 새로이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스스로를 레오14로 명명하고 첫 인사말로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라고 외쳤다. 그의 인사말이 의례적인 종교적 인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바로 작금의 세계 정세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레오14세 교황의 첫 일성인 평화가 단지 세상에 모든 전쟁을 끝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차별 없는 것이며, 그를 통해 하느님의 뜻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교황에게 주어진 힘은 과거 중세 시대까지 세상을 지배했던 현실적인 권력에 비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만큼 지대하다. 그러나 그 힘은 과거처럼 세속적인 권력보다는 세상의 평화를 이룰 있도록 하는 근간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교황이 탄생할 때마다 그분이 걸어갈 교회의 여정에 어떻게 우리가 조응해 나갈 그것인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교황은 콘클라베를 통해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선출하지만, 선출된 교황은 바로 하느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 우리는 왜 레오14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는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레오14세의 전기가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지 불과 2개월여 만에 출간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이런 물음의 답을 찾는데 매우 소중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길었던 코로나 팬데믹을 헤치고 나온 우리에게 전임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크나 큰 상실감을 주었지만, 그의 뒤를 이은 레오14세 교황은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종하시기 직전인 2025418일에 2024년에 이어 묵상을 통해 직접 작성한 기도문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거행하였다. 우리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말씀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기도문은 세상의 회심을 위한 교회의 기도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새로운 길은 이제 새로운 교황 레오14세와 우리들이 열어가야 한다.

 

성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표현한다. 여기서 모퉁잇돌은 눈에 띄는 두드러진 돌은 아니지만 건축물에서는 가장 기초를 이루는 돌을 의미한다. 레오14세의 전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평화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그의 전기에서 드러나는 일관된 방향성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이 세상의 모퉁잇돌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감히 레오14세의 교황 선출의 의미를 함부로 재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이어 이 세상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가리라는 것이다.


* 이 책은 '가톨릭출판사'로 부터 도서 제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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