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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순례자 - 영적 깨달음을 구하는 순례자의 이야기 ㅣ 가톨릭 클래식
최익철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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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 안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힘을 내십시오.”(코린 1 16:13)

 

우리에게 ‘기도’는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어찌 보면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대부분의 기도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물음과 접근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도’에 대한 이러한 물음이 우문(愚問)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신앙적 측면에서 ‘기도’란 무엇인지를 되짚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들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흔히 ‘기도’는 비는 것에 아니라 비우는 것이며, ‘기도’는 해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하겠다는 다짐이며, ‘기도’는 없는 것을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도를 이렇게 이해한다는 것과 별개로 ‘비우고, 다짐하며, 감사하는 기도’를 삶 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일찍이 바오로 사도가 제2차 선교 여행 도중 1년 반을 코린토에 머물렀을 때 쓴 ‘테살로니카 1서’ 말미에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이렇게 간곡히 당부한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6-18) 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름 없는 순례자󰡕는 한 순례자가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한 순례의 긴 여정 속에서 ‘기도’가 갖는 의미와 목적, 그리고 그 속에서 나 스스로가 변화되는 것을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글을 따라 읽어 가다 보면 영성적으로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기를 갈망하는 이 책의 저자인 순례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지난 9월은 마침 한국 천주교회에서 순교자 성월로 지정되어 더 의미 깊게 읽었던 것 같다. 그저 평신도로서 당연하다고 여긴 ‘기도’의 의미를 좀 더 성찰하게 되었고, ‘순례’라는 것도 막연히 옛 성인들의 길을 찾아다니면 방문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 자신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 책 말미에 장상 신부와 수사, 순례자, 순례 동반자들이 함께 대담하는 과정에서 한 순례 동반자의 물음에 수사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사람의 기도가 하느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영과 능력이 기도의 대상을 정결하게 하고 그 영혼을 깨우쳐 하느님과 하나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책 357쪽)”이라고 말이다. 이는 이 책 초반부에 순례자가 한 수도원의 원장 신부께 기도의 방법을 묻는데, 이에 수도원 원장 신부가 “끊임없는 기도는 내심(內心)으로 해야 합니다. 사실 기도란 우리의 모든 행동과 덕행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에는 무엇보다도 선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책 26~27쪽)”라고 답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의 뜻을 내 뜻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도록 변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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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의 시대 공감
명형진 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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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먼저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 (베드로1 4:8)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가르침은 무엇일까? 신학에 대한 깊이는 한없이 얕지만, 감히 이 물음의 답을 하자면 그것은 사랑, 용서, 감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중에서 사랑은 바오로 사도가 믿음, 소망, 사랑 중 그 중에 으뜸은 사랑이라고 한 것처럼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불교에서 자비, 이슬람교에서는 자카트(사다카트)가 그러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사랑’은 용서를 통해 완전해질 수 있으며, 감사는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참된 사랑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할수 있다.

 

󰡔사제들의 시대 공감󰡕은 여섯 분의 사제들이 ‘사랑’이 신앙 안에서 어떻게 녹아드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신앙을 더욱 강고하게 하는지를 체험의 언어로 녹인 책이다. 이 책 안에는 시련, 침묵, 상처, 용서, 그리고 희망을 아우르고 있는 것도 결국 우리가 사랑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항해하는데 필연적으로 거칠 수 밖에 없는 여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여섯 분의 사제들이 공히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사랑’이지만, 언뜻 그 ‘사랑’을 풀어내는 방식이 달라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고서 깨닫게 된 ‘사랑’은 이러하다. 먼저 여섯 사제가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사랑’이며, 그 ‘사랑’은 곧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속적인 사랑과는 그 결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 말로 그 분의 사랑은 온전히 느끼고 그 분의 뜻에 맞갖게 사랑을 실천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는 살아가면 사랑이라는 것을 그저 베풀거나 나누는 것으로 이해하고 또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느끼는 세속적인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이러한 조야한 사랑의 정의 속에서 우리 스스로는 갖혀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선행을 베푸는 이는 분명 우리 눈에 사랑을 실천하는 이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그것 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느님의 방식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단지 선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이를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비유하지만, 엄밀히 말해 하느님의 사랑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눈에 사랑으로 여겨지고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하느님께서도 사랑으로 여길 실 것이라는 착각과 오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용서’도 우리가 무조건 타인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용서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를 이유나 조건을 따지면 용서하는 분이 아니시기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우리에게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며, 지극히 일상의 언어로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의미있는 삶이 될 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편의나 즐거움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본문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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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의 바다 - 영혼의 일기
이해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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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지나가는 것, 사라지는 것들을 허무로 보게 해 주시는

당신의 은총에 언제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본문 176쪽)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놓치고 산다. 삶이 온갖 희노애락에 연속이라지만 그 안에서 정작 우리는 많은 것들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만다. 이해인 수녀님의 [해인의 바다]은 그러한 소소함에서의 넘치는 감사의 마음을 바늘과 실로 천에 수를 놓듯 한 땀 한 땀 글로 그려낸 풍경화와 같다. 이 느낌은 이 책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글이 아니라 글쓴 이가 살아오면서 느낀 마음의 울림을 고스란히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책의 구성에서도 알수 있듯이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으로 다시 이어지는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한 인간의 삶의 흔적이 발견할 수 있다. 그 흔적이 독자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그동안 놓쳐왔던 소중한 것들에 감사의 마음이 차곡차곡 내 안에 들어서게 된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런 점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영성적으로 일깨움을 주는 책은 많다. 이 책도 그러한 책의 하나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다만 이 책만이 갖는 향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그것은 주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은 무엇인지를 일상에서 마주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에서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은 한 장 한 장 읽다보면 많은 공감을 하게 되고, 그동안 나 스스로 많은 것을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쳐 왔구나하는 한탄과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하느님께는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 정도는 한토막 밤보다도 짧디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작 인간은 그 안에서 온갖 기쁨과 즐거움, 분노와 슬픔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때론 고통으로 느끼기 십상이지만 결국 어리석은 인간은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으로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고 마음 속에서 닮고 싶은 것, 따라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것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 일기는 하루 하루 주님과 소소한 대화를 하는 것이면 좋겠다. 내 안에 사그러 들지 않는 크고 작은 욕망들의 파편이 오로지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지며, 그때의 내 눈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복되다 그 님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여 (시편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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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대화 - 그리스도교 관상의 길
토머스 키팅 지음, 이청준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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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할 줄 몰라서 침묵을 지키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말할 때를 알고 있어서 침묵을 지키는 이도 있다. (집회서 20:6)

 

일반적으로 ‘기도’란 단어에는 ‘간절함’과 ‘소망’, ‘안녕’ 등이 내포되어 있다. 나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든 우리는 ‘기도’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톨릭 신앙 안에서 ‘기도’라는 것이 무엇이며, 이 ‘기도’의 방법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리 간단치 않다.

 

토마스 키딩 신부의 [침묵의 대화]는 바로 ‘기도’에 관한 것이며, 더 정확하게는 ‘관상기도’와 이에 이르기 위한 ‘향심기도’의 구체적 방법을 우리에게 안내하고 있다. 가톨릭 굿뉴스(https://home.catholic.or.kr)에서 검색을 해보면 ‘향심기도의 이해’라는 글이 있다. 여기에는 ‘향심기도’라는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옛 전통을 새로운 감각에 맞게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발전시킨 관상기도의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상기도’란 무엇인가? 역시 위의 글에 따르면, 이는 “하느님과의 만남, 대화”이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한 몰입을 지향하는 기도”를 관상기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특히 이 기도는 일반 평신도의 영역이 아닌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풍조”로 까지 나아가게 된다. 바로 이처럼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이 영성이나 관상기도와는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도는 하느님과 관계”라는 점을 바탕으로 향심기도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토마스 키딩 신부의 [침묵의 대화」이다.

 

이 책 첫머리에서 향심기도는 “인간 조건의 현주소를 정확히 제시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앞서 언급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뤄지는 기도의 본질이 향심기도에도 관통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라고 할 때 향심기도는 그러한 여정을 함께하는 빛이자 신호라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향심기도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의 진폭과 그 뒤에 나타나는 고요와 일치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요컨대, 앞서 언급했듯 향심기도는 “나의 중심으로 들어가 거기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관상기도”에서 바로 나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을 도와주는 기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 키딩 신부가 강조하듯이 거짓된 자아에 참된 자아로 나가는 과정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온전히 감각에 의존하여 나가는 것과 같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침묵’ 그리고 ‘대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침묵’은 그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 아닌 내 안의 자아를 ‘거짓’과 ‘참’를 분리하기 위해 보이지 하나의 장치이자 도구이며, 더 나아가서는 ‘침묵’ 그 자체가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의 제목처럼 ‘침묵의 대화’는 곧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이뤄지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끝으로 이 책 말미에는 부록을 통해 제1장부터 제3장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의 거짓 자아의 활동을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반응 방식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 점검하면서 무엇에 현혹되고 있는지, 또 무엇을 집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향심기도(관상에 이르는 길)로써 영적 여정을 진진하게 시작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응답을 포함한 역동적 과정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본문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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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김의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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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구원을 이미 내 눈으로 보았나이다 (루카 2:30)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생전 메시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행복’이다. 그런데 여기서 ‘행복’은 통속적인 일상의 안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치 가톨릭 교회에서 ‘평화’가 뜻하는 것이 그러하듯이. 그만큼 프란시스코 교황님이 강조하신 ‘행복’을 이해하고 깨닫고 그 길을 향해가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이 ‘행복’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를 좀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설교, 연설, 문헌, 묵상 등을 통해 우리가 ‘행복’을 향해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안내하고 있다.

 

우선 프란시스코 교황님이 소개한 15가지의 행복을 향한 나침반을 간략히 살펴보자. 15가지의 나침반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용서를 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리키고 있다. 세속적인 ‘행복’이 나 자신의 만족과 기쁨에 머문다면, 가톨릭에서의 ‘행복’은 곧 나로 인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는 향기와 같은 것이며, 이를 위해 인내하고, 희망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들은 우리가 어떻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세세히 가르쳐 주신다. 요컨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설파한 ‘행복’은 곧 ‘위로’이며, ‘실천하는 용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행복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주는 것이며, 내일을 향해 꿈꾸며 희망하는 것인 동시에 혁명이며 구체적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하신다. 이러한 과정의 끝은 결국 “삶의 풍성한 열매”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자상하게 안내하신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의 정도와 크기는 제 각각이겠지만, 개개인의 수많은 행복의 공통점은 어찌보면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타자의 시각으로 상대가 행복해 보이더라도 정작 그 본인은 그 행복의 소중함을 간직하기보다는 자칫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차”에 몸을 실은 것처럼 그 보다 더 큰 행복을 무한히 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느낀 행복은 어느새 불행과 고통, 슬픔, 좌절 등으로 뒤엉켜 버리고 만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에게 안내하는 ‘행복’의 길은 이런 세속적인 행복이 아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참된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총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주신 그 선물의 소중함을 깨닫는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참된 기쁨은 어떤 물건이나 소유에서 오지 않습니다.(중략)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라시는 것을 느끼는 기쁨입니다. (본문 302-303쪽)



*이 리뷰는 가톨릭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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