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의 책을 읽으며 삿포로에 대한 로망을 키웠다.
라디오 작가라는 것 밖에 알지 못했던 그 사람과 우연히 스친 일이 있었는데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떠났다가 이제 막 돌아온것 같은 사람. 뭐랄까 무척이나 바람냄새가 나는 사람 같았다고나 할까 -
떠남이란 여유있는 사람의 사치쯤으로 여기는 것이 떠나지 못함에 대한 핑계였던 나였다. 그렇다. 나는 떠난다거나 여행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때까지 기차란걸 타 본적도 없으니 더 무얼 말하랴 . 그런 사람이 지독히도 바람냄새 나는 사람을 만났으니 고깝게 보였을수도 있다. 사치스럽게 보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 나에게는 질투랄까 부러움이랄까 혹은 동경이랄까 - 알수 없는 감정들이 동시에 복잡하게 엉켜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후 바람냄새 지독하던 그가 원래는 시인이며 여행산문집을 냈다는걸 알게됐다. 그렇게 처음 접한 그의 책이 끌림이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더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우연히 스치던 그때의 그 사람과 너무도 닮아 있는 책속의 이야기들에 놀라며, 그에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나는 왜 이 사람에게 바람냄새가 느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후의 나는 조금씩 변했다.
혼자 다니는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아니 오히려 더 편하게 생각되어져갔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때론 걷기 시작했다. 동네 산책도 여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했고, 여행도 동네산책이라는 생각을 가지니 모든게 새롭게 보이고, 모든게 편안해 졌다. 그리고 언젠가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리는 겨울에 삿포로에 간다면 그 사람을 삿포로 어느 골목이나 술집에서 만날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혹은 연착되는 비행기를 기다리다 그를 만나게될지도 -
그리고 결국 나는 재작년 겨울,
연착을 꿈꾸며 홋카이도에 발을 디뎠다.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그와 스치는 상상을 하며, 그가 지났을 골목이라 생각하며, 그가 술을 마셨을 술집이라 생각하며 ,삿포로를, 오타루를, 하코다테를, 후라노비에이를, 이름모를 작은 동네를.... 무섭게 쌓여가는 눈밭을 헤치며 누비고 다녔다.
끌림의 미니북을 들고 다니며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함께 걷고 술잔을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곳곳에서 그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에게 대답을 하기 위해 질문을 보냈다. `お元気ですか`(오겡끼데스까)라고 쓰인 러브레터를 흉내낸 러브레터를!
바람이분다 에서 였나?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이 문구는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문구인데 여행이 끝날 때쯤 문득 그가 나에게 이렇게 대답같은 질문을 던져 준 것 같은 착각에빠졌다.
`삿포로에 갈까요?`
그리고 나는 그 책의 힘에 이끌려 그렇게 홋카이도로 향하게 된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결국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듯한.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홋카이도의 겨울이었다.
운이 나쁘게도? 비행기가 연착되는 일은 없었지만 이병률이란 사람과 무척이나 가까워진듯한 착각에 빠졌다.
내가 눈속에 파묻혀 죽을때 끌림 이라는 책한권이 함께 놓여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