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906/pimg_7043651704006219.jpg)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을 인터뷰한다.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일의 베테랑들에게 묻는다.
"자신을 베테랑이라 생각하세요?"
한 때 일류 기술자가 되었으나 시대가 변하여 쓸모가 없어지고 기계에 밀리고 점점 수요가 없어지고 사라져가는 기술자들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서 더 이런 기록이 좋았나보다. 모두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했고, 기술이 켜켜히 쌓여 일하는 가짐들이 몸에 붙는다. 몸 자체가 하나의 기술이 된 것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906/pimg_7043651704006224.jpg)
오래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 그 일에 최적인 자세로 몸을 고정시키고 있다보니 지금은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데가 없다. 10년, 20년 이상을 성실하고 바지런하게 몸에 새긴 매일의 기억은 또 하나의 피부가 된 듯 일체형으로 변형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당연히 쉽지 않다.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인내하고 버텨내야하는 시간들이었다. 억지로 무리해서 몸이 다치거나 아예 일을 손에 놓을 뻔한 적도 여러번이다. 이 과정을 다 지나온 그들은 누가 봐도 일류였다.
"내가 그들에게서 본 것은 어떤 '가짐' 들이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들을 단단하게 만들었던 삶의 태도와 일에 대한 마음가짐들이 모두 견디고 버티고 인내하며 갖춘 생각과 행동의 가짐들이었다. 각자 다른 인내의 기억들이 결국 경력이 기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기술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일의 종류보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하게 된다. 항상 '어떻게'가 나의 일상과 삶 전체의 구조를 설계하는 큰 축이되는 것 같다. 같은 직종에 일을 해도 어떤 태도와 가짐으로 행동하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906/pimg_7043651704006230.jpg)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배우, 식자공까지 모두 사연 많고 넓은 문보다 좁은 문을 선택해 남들보다 더 힘든 길을 걸어온 인물들이다.
하지만 인터뷰들은 한결같이 스스로의 일과 삶에 만족해하고 있다. 경력이 단절되고 이 후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이전 자격증이 모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조리사 하영숙씨. 대화 마지막에 그래도 "이렇게 산 게 참 고맙다"고 까지 말한다. 한 길로 살아온 자기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이다. 따스한 존엄이 느껴졌다.
"그런데 실전만 한 게 없어요. 현장에서 일을 배우면 초집중 상태라 일이 몸에 달라붙어요. 한 번을 해도 내 것이 되는 거죠."
기록들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말들. 인내, 성실함, 긍정적인 생각.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어쩌면 흔한 말들. 하지만 이 말들이 다양한 기술 직업군과 오랫동안 성실히 한 그들의 몸에 붙어있는 기억들을 밖으로 표현하고 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어떤말보다 단단하고 진실된 가치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