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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평점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을 인터뷰한다.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일의 베테랑들에게 묻는다.
"자신을 베테랑이라 생각하세요?"
한 때 일류 기술자가 되었으나 시대가 변하여 쓸모가 없어지고 기계에 밀리고 점점 수요가 없어지고 사라져가는 기술자들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서 더 이런 기록이 좋았나보다. 모두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했고, 기술이 켜켜히 쌓여 일하는 가짐들이 몸에 붙는다. 몸 자체가 하나의 기술이 된 것이다.
오래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 그 일에 최적인 자세로 몸을 고정시키고 있다보니 지금은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데가 없다. 10년, 20년 이상을 성실하고 바지런하게 몸에 새긴 매일의 기억은 또 하나의 피부가 된 듯 일체형으로 변형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당연히 쉽지 않다.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인내하고 버텨내야하는 시간들이었다. 억지로 무리해서 몸이 다치거나 아예 일을 손에 놓을 뻔한 적도 여러번이다. 이 과정을 다 지나온 그들은 누가 봐도 일류였다.
"내가 그들에게서 본 것은 어떤 '가짐' 들이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들을 단단하게 만들었던 삶의 태도와 일에 대한 마음가짐들이 모두 견디고 버티고 인내하며 갖춘 생각과 행동의 가짐들이었다. 각자 다른 인내의 기억들이 결국 경력이 기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기술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일의 종류보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하게 된다. 항상 '어떻게'가 나의 일상과 삶 전체의 구조를 설계하는 큰 축이되는 것 같다. 같은 직종에 일을 해도 어떤 태도와 가짐으로 행동하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배우, 식자공까지 모두 사연 많고 넓은 문보다 좁은 문을 선택해 남들보다 더 힘든 길을 걸어온 인물들이다.
하지만 인터뷰들은 한결같이 스스로의 일과 삶에 만족해하고 있다. 경력이 단절되고 이 후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이전 자격증이 모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조리사 하영숙씨. 대화 마지막에 그래도 "이렇게 산 게 참 고맙다"고 까지 말한다. 한 길로 살아온 자기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이다. 따스한 존엄이 느껴졌다.
"그런데 실전만 한 게 없어요. 현장에서 일을 배우면 초집중 상태라 일이 몸에 달라붙어요. 한 번을 해도 내 것이 되는 거죠."
기록들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말들. 인내, 성실함, 긍정적인 생각.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어쩌면 흔한 말들. 하지만 이 말들이 다양한 기술 직업군과 오랫동안 성실히 한 그들의 몸에 붙어있는 기억들을 밖으로 표현하고 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어떤말보다 단단하고 진실된 가치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