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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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남편이 죽고 스무 살에 과부가 된 나오미는 친정가족들과 함께 미래를 위해 서부로 떠난다. 이 시기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로 1850년~1890년대에 동쪽 보스턴에서 서쪽 끝 캘리포니아로 이동했던 시기다.

나오미 가족이 횡단하려던 길은 마치 황야에서 헤메이는 길고 지난한 길이었다. 고단하고 위험한 길이기도 했다. 이동하는 곳곳에는 각각의 색을 지니고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함께 이동하는 백인들과도 크고 작은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분쟁거리가 많았다는 것. 이런 다툼들은 단순히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임 당하고 얼굴 가죽까지 벗겨서 가져가 버리는 끔찍한 사건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오미와 가족들은 위험한 길에서 오염된 물을 끓여 마시고, 가지고 온 식량을 조금씩 나눠 먹고, 지독한 멀미를 일으키는 마차 대신 하루 종일 걸어서 이동한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곧바로 이주민의 삶을 시작한 나오미는 슬픔이 차오를 겨를 없이 오리건 트레일의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가족들을 살피며 일한다.

길에서 나오미는 존 라우리라는 남자를 만나고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험난한 길에서 존은 나오미 가족을 도와주고, 나오미도 병들어 죽어가는 존을 정성껏 간호하여 살려내기도 한다. 오리건 트레일의 삶이 가혹할수록 나오미와 존의 사이는 더 끈끈해져 갔다. 나오미가 이 후에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상실하고 길을 잃어버린 소녀가 됐을 때에도 존은 그녀를 찾아 다시 앞으로 걸어갈 수 있게 길을 내준다.

소설 속 존 라우리는 작가인 에이미 하먼의 남편의 5대 조부님이다. 작가는 현대에 잊힌 사람들을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되살아나게 했다. 아무리 역사적 배경이라해도 소설의 그릇으로 담겨 나오기에 사실과 상상은 함께 엮이기 마련이다. 사실을 토대로 유연하고 세밀한 글로서 풍성한 살을 덧대어 오히려 더 극사실화를 구현해낸 것 같다. 게다가 셀 수 없는 많은 개척자들의 일기와 글 모음집을 읽었다는 작가의 노력이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 책에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다.

오래전부터 미국을 바라보면 비빔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되기까지 수많은 인종과 민족들이 뒤섞이며 서로를 약탈하고 지배했다. 강대국으로 성장했을지는 몰라도 이런 역사들의 잔해가 언어와 후대에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로 남겨져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내 나라의 토착 유산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잊힌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주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이 소설은 과거의 사람들을 통해 교훈과 감동을 얻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떠난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다. 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들을 통해 나 또한 삶의 한 가운데에서 돌아온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갈 길을 다시 설계할 수 있게 동기를 주는 가치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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