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브루클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민지현 역자 / 미래지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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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긴 외국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요 인물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가상의 빈민 주택 커즈하우스에 사는 이웃 모두가 인물이 된다. 이들에게는 모두 지금의 모습을 만든 과거가 있고 사연이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기간 동안 이 단지에 살고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매우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많은 인물들과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느라 초반에 살짝 힘들 수 있지만 이 소설에는 책을 놓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유쾌함과 관심을 전제로 둔 유머들이 고통스럽고 힘든 사회와 삶의 면면을 매끄럽고 심지어 활기차게 보이게 한다.

일흔한 살인 스포츠코트는 자신의 죽은 부인 헤티와 항상 대화를 한다. 남들이 보기에 허공에 대고 헛소리를 하는 듯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부인을 사랑한다. 늘 취해 있지만 한 순간도 부인과 대화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날도 스포츠코트는 술에 살짝 취해 커즈하우스의 주택단지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마을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마약상 딤즈를 향해 광장 한복판에서 총을 쏜다. 스포츠코트는 어렸을때 마약상 딤즈의 야구코치였고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쏠 이유가 없었는데도 일은 벌어졌고, 마약상을 건드린 이상 스포츠 코트는 죽은 목숨이었다.

재밌는 점은 굳이 필사적으로 도망다니지 않는데도 스포츠코트는 마약상과 경찰을 피해 또 일상을 잘 살아간다. 오히려 이 총격 사건 이후로 마치 나비효과처럼 밀수업자,마약 딜러등 주변인물들이 이야기에 섞여들고 변해가기 시작한다.

두께감 있는 긴 이야기에 스포츠코트가 던진 엉뚱한 총알이 브루클린 빈민가에 모여사는 다양한 인종의 이웃사람들의 사연들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결국엔 흐뭇한 결말로 이어지는 소설이다.

소설에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에 대한 동기, 결말이 뚜렷해야하는데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누가 어떻게 됐는지, 왜그랬는지 보다 개개인의 아주 사적인 일상들이 사실 얼마나 많은 타인의 영향을 받아 그려지는지 새삼 깨닫게 하는 것이 더 컸다.

그러니까 커즈하우스에 모든 이웃들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각자 돌아버릴 만한 사연들이 개인의 삶에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대개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들어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아주 사적인 나의 인생 이야기는 아주 긴밀하고 촘촘하게 타인과 연결되었다는 것이 이야기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신기하게도 사연과 그 이유들이 마치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포개져 있다. 뭔가 문장으로 소설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500페이지가 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니 단 한 마디로도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다양하고 깊은 사유를 할 수 있게 해줬다.

코믹 이웃 서사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장르를 접한 기분이다. 익숙한 느낌은 시끄럽고 정신없지만 어쩐지 지치고 슬픈 사회와 삶의 모습들을 보아 그런 것일테고, 새롭다는 느낌은 타인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서로 겹쳐지면서 그 교집합되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타인을 어떻게 보면 또 다른 가족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드는 기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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