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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이 치유였어 1
호림 지음 / JUNE Books(ㅈㅜㄴ)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여행 에세이인데 색(色)이 따라온다. 블루, 다크블루, 오렌지, 레드, 옐로우, 핑크... 저자가 여행을 하며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사유의 조각들이 색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있다.
<모든 여행이 치유였어1>은 컬러감이 풍부한 사진을 중심으로 여행과 일상에서 접하는 마음의 색깔들을 스케치해 놓은 책이다. 색채심리 상담사인 저자의 여행에 물든 컬러 테라피가 독자로 하여금 지친 마음을 시각적으로 힐링시켜줄 것이다.
산뜻하고 또 묵직한 여행의 색에 저자의 솔직하고 담담한 문체가 만나 마치 나도 스무살짜리 배낭 여행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 경험할 날 것에 대한 기대와 그동안 걸어왔던 길들을 되돌아보는 사유의 시간까지 덤으로.


나는 사람들이 떠나는 여행이 어떤 것으로부터 달아날 때 쓰는 좋은 핑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항상 빠른 속도로 뛰듯이 걸어가는 현대인에게 여행은 자유이며 치유일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여행은 일관적으로 빠르게 살라고 하는 사회안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를 다시 점검해 보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사람마다 그 보폭의 크기가 다르듯이 말이다. 느리지만 힘 있는 걸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근육을 여행을 통해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글도 사진들 만큼이나 굉장히 오감을 자극한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시선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인가 궁굼해진다. 마치 시인의 시선처럼 거기까지 들여다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나보다.
부둣가에는 말레이시아의 국화인 진분홍빛 히비스커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는데, 같은 자리에서 오는 이를 환영하고 가는 이를 환송하고 있었다. 날짐승들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고, 좀 더 귀를 기울이면 활엽수의 뿌리가 물을 흡수하는 삼추압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47p

저자는 스무 살 즈음 악몽 같은 가난을 통과했다. 고시원에 머물며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해도 돈이 빠져 나갔다. 2천원이 필요해 단골 슈퍼에서 돈을 겨우 빌린적도 있고, 고시원 총무에게 거지 같다는 말을 듣고 싸움에 휘말려 경찰까지 개입되고 사회적 약자의 모욕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후에 그는 난처할 때 웃는 부류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죽을 듯이 힘든 상황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힘내기 위해 먼저 웃어 보이는 사람. 저자에게 웃음이란 악착 같이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각오였다.
그런 힘든 삶에서 여행이 그에게 치유를 주었기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책을 쓴 듯 하다. 그 따뜻한 마음이 사진의 색과 자신의 이야기와 사유를 담담히 쓴 글들을 통해 잘 전달된다.
사람마다 마음의 수위가 다 다르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홍수가 나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댐을 단단히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여행이든, 책이든, 자신만 바라봐주는 반려동물이든 뭐든간에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을 설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이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수많은 책을 통과하며 지나온 나의 사계절들은 어떤 색이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