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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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까이에 있는 북한이지만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나의 빈 공간을 조금이라도 채우기 싶었기 때문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 78년이 지났지만 분단 전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사라졌고, 지금의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생존하며, 무슨 미래를 꿈꾸는지 궁굼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와 군사쪽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항상 북한과 연동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사회가 예민하게 다루고 알아야 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저자 역시 이것에 대해 책의 첫머리부터 단단하게 짚어간다.

그들이 사실은 우리의 거울상이라는 것, 남과 북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해야 자신을 온전히 반추할 수 있으며 분단으로 인한 사회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들어가며 9p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놀란점은 북한 사람들의 다면성이었다. 다큐멘터리나 방송에서 일명 '선전'을 목적으로 소개한 이들을 보면 국가와 수령은 자신과 가족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1부에서 나오는 길확실이라는 여성도 이런 인민의 전형, 인간개조의 선구자, 여성 노동자의 지향점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의 삶은 많이 달라보인다. 수동적이지 않고 국가의 강압에도 살아 남려는 강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점이 두 번째로 놀랐던 점이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뒤에서 북한 경제를 이끌고 있는 시장의 주요 인물들이 바로 북조선의 결혼한 주부들이었다. 이들의 생활력과 높은 사업수완, 진취력은 두려운 국가의 개입과 억압되고 갇힌 사회 구조 안에서도 꿈틀대며 그 틈을 파고 들었다.

모든 살림살이가 다 여자들이 시장에 나서서 겨우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은 당이 하라는 대로 쌀 1킬로그램도 사지 못하는 낮은 봉급을 받는 직장에 나가야 하니 먹고 살기 위해서는 북조선 여성들이 집안 경제를 맡아야하는 것이다. 머리트인 여자들이 없었다면 북조선 사람들은 다 죽었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한의 경제는 이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활동하는 시장이 빠지면 안되는 구조가 됐다.

 

또 이 책의 매력 중에 하나가 서술방식이다. 50명이 넘는 북조선 여성들의 심층 인터뷰가 저자의 섬세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덧입혀져 탄생한다. 모든 사실들이 상상력이란 옷을 입고 소설처럼 몰입도 있게 읽혀진다. 학술적 글쓰기처럼 딱딱하지 않고 유연하게 북조선의 현 상태와 사회 분위기,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성들의 삶이 잘 풀어져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전략은 매우 현명해 보인다. 무지했던 나 같은 독자도 자연스럽고 좀 더 밀착되어 읽었기 때문이다.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한반도의 식민과 전쟁, 냉전과 탈냉전, 지역화와 세계화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면면들을 산출해냈는지 그 각각의 삶들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연구자였던 저자도 같은 여성으로서의 연대감을 느끼고 '나'와 마주하는 놀라운 경험까지 하게 된다. 이 경험은 글로도 잘 느껴진다. 북조선 여성들의 삶을 알고 이해하며 남한 사회에서 사는 나 자신의 위치를 되짚어보는 기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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