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 개정판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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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에서 소설에 담은 그의 종교적 사유를 보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이 책은 2009년 출간됐던 <한 낮의 시선> 개정판이다. 길지 않은 이 소설은 참 많은 것을 섬세하게 담아 놓았다. 특히 내면의 사유를 아주 예민하게 따라가는 표현이 한 인물에게 참 깊이도 들어간다라는 감탄이 신음처럼 흘러나오게 했다.

시선을 외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 두고 아주 세밀하고 예민하게 투영하고 있다. 때문에 독자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소설의 풍경이 아니라 주인공인 그의 내부이다.

주인공은 결핵으로 요양을 떠난다. 우연히 마주친 옆집에 노교수가 던진 아버지와 관련된 질문에 스물아홉 해 동안 없이도 충분히 풍족하게 살았던 그의 내면에 파문이 인다. 노교수의 말이 인상적이다.

"어떤 경우에도 부정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아버지야말로 그런 존재지. 죽기 전에는 없어질 수 없다는 뜻이야. 어떤 경우에는 죽어서도, 죽은 채로 있는 게 아버지지."

"그렇다면 그 아버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거네, 젊은이의 의식 속에서 말이야, 라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34p

결핍감을 느낄 기회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그는 갑자기 자기 마음 속에서 죽음을 당한지도 몰랐던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다. 사실 그는 자라면서 무의식적으로 의식한 시선이 있었다. 그 낯익은-낯선시선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노교수가 던진 말과 그 말 이후로 갑자기 아버지를 찾아나선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가며 아버지과 아들에 관계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굳이 지금 아버지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찾아나서는가. 여기서 노교수의 의미심장한 말을 또 떠올리게 된다.

"때로는 자기가 무얼 찾는지, 왜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찾고 추구하지. 몽유병 환자처럼 말이야. 찾다가 못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추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

56p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스스로의 뿌리를 찾는데 집착하는 것 같다. 여기 내가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있는지. 이런 생각을 살다보면 안 할 수가 없는데 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뿌리를 확인하려 들 수 밖에 없게 된다. 존재와 영혼의 뿌리. 나의 존재와 가장 가까운 부모를 확인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주인공도 별다른 필요가 없어도 왜 찾고 추구하는지도 모른채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찾게 된게 아닌가 싶다.

이제 그는 그전에 아늑했던 것처럼 아늑하지 않다. 모퉁이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으므로. 하지만 아버지를 찾아 드디어 대면했을때, 그는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부정당한다. 그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로부터 존재의 뿌리를 찾고 뭔가를 확인하고 싶어하지만 아버지의 완고한 부정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아버지는 아들을 부정하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강요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쯤에서 아들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아예 없는 것보다 폭군이라도 곁에 있는 아버지가 낫단 말인가.

폭군-보호자의 괴롭힘보다 그의 부재가 더 견디기 힘들었을 정황이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두렵고 불안한 '있음'보다 두렵지고 않고 불안하지도 않은 '없음'이 더 두렵고 더 불안했을 것이다.

190p

소설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며 [말테의 수기] 첫 문장을 인용한다. "도대체 나는 그곳에 살려고 가는 것일까, 죽으려고 가는 것일까."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은 둘 다 인 것 같다. 아버지의 완고한 부정으로 아들의 존재는 한 번 죽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아버지의 세계였던 인구 3만의 변방도시를 벗어나며 그는 그 모든 것을 통과하여 내면의 찌꺼기들을 비워내 개운해 보인다.

어찌보면 주인공을 통해 의식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본 것 같았다. 작가는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안에서만 소설을 구상한 것은 아닐텐데, 그 이상은 내가 이해하고 그려보기 부족한 것 같다. 다만, 존재와 시선에 대해 깊게 사유해 보게 해줬다.

꼭 부모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군가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게 부모일 수도 있고 초월적인 신일 수도 있고, 부러워하는 대상일 수 도 있고, 미워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시선에 갇혀 평생을 살 수 도 있고, 아니면 그것을 뛰어 넘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을 즐길 수도 있고, 그 시선에 괴로워 할 수도 있다. 그럼 나는 어떤 시선을 느끼며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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