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며 [말테의 수기] 첫 문장을 인용한다. "도대체 나는 그곳에 살려고 가는 것일까, 죽으려고 가는 것일까."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은 둘 다 인 것 같다. 아버지의 완고한 부정으로 아들의 존재는 한 번 죽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아버지의 세계였던 인구 3만의 변방도시를 벗어나며 그는 그 모든 것을 통과하여 내면의 찌꺼기들을 비워내 개운해 보인다.
어찌보면 주인공을 통해 의식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본 것 같았다. 작가는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안에서만 소설을 구상한 것은 아닐텐데, 그 이상은 내가 이해하고 그려보기 부족한 것 같다. 다만, 존재와 시선에 대해 깊게 사유해 보게 해줬다.
꼭 부모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군가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게 부모일 수도 있고 초월적인 신일 수도 있고, 부러워하는 대상일 수 도 있고, 미워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시선에 갇혀 평생을 살 수 도 있고, 아니면 그것을 뛰어 넘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을 즐길 수도 있고, 그 시선에 괴로워 할 수도 있다. 그럼 나는 어떤 시선을 느끼며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