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배경은 삼악동이다. 근데 재밌게도 삼악동이라고 부르지 않고 삼벌레 고개라고 불렸다. 이 삼벌래 고개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부유한 동네다. 높이에 따라 재산에 등급이 매겨지는 것이다. 그 고개의 중간지점에 우물집이라고 불리는 김순분의 집이 있다. 김순분은 우물집에 알차게 세를 놓고 받아먹고 있었고, 그 주변 동네 여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계모임도하고 동네 소문들에 입방아를 찧는 마실과 같은 곳이었다. 은철이는 김순분의 둘째 아들이었고, 이 우물집에 새댁네 식구들이 세를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이는 새댁의 둘째 딸이다. 원이와 은철이는 자주 어울렸고, 어디서 들은 스파이를 흉내내며 아이들의 시선으로 동네 사람들을 탐색하고 여러 사실들을 알수 있게 해준다. 원의 엄마 새댁은 야무지고 배운것도 많은 여자 같다. 헌데 새댁의 남편, 그러니까 원이의 아버지가 어울리는 사람들과 하는 행동들이 뭔가 수상쩍어 보인다. 아이들 눈에도 그랬는지 아버지와 또 어울리는 그들을 안바바와 다섯 명의 도둑으로 비유한다. 그들이 꾸미는 것들이 뭔가 절정에 다다랐을때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지고 형사들이 집앞을 지키고 있게 된다. 새댁은 점점 무너지는 것 같아 보이고 무언가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느껴질 정도로 원이네 단란하던 네식구는 너무나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유신정권의 폭력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 희생되고, 아내는 미쳐버린다. 그리고 남은 두 딸은 한 순간에 부모 잃은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 의지하게 된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둘째딸 원이가 말을 잃은 모습을 보고서였다. 가슴이 아팠고, 분노로 뜨거워졌다.

소설에서는 '인혁당 사건'이라고 꼭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명백히 다가왔고, 그때 희생된 여덟명의 사람들과 가족들은 32년후에 무죄판결을 받았을지언정 그 혼과 넋에 대한 위로는 아무리 해도 못 채워질 한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 더럽고 무자비한 사법 살인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고통들이 남은 가족에게로 넘겨져왔음을 알 수 있다.

유신정권에 희생된 원이네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그 고통과 실의의 무게를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겠다. 대충 소설의 배경을 알고 봤음에도 원과 은철이, 새댁의 시점에서 본 그 사건과 고통의 무게에 자꾸 고개가 숙여졌고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래도 봐야지, 끝까지 봐야지. 그리고 마음속에 새겨야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설들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내 짧은 삼십여년의 짧은 생에에도 많은 사건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정권과 자본의 폭력에 무너지고 희생된 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며 거기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주기적으로 이것에 대해 환기를 시킬 필요가 있다. 책으로든 영화로든 어떤 형태의 도구든 사용하여 사람들이 잊지 않게 해야한다. 잊어야할 것들도 있지만 이렇게 잊지 말아야할 것들도 있다. 그것을 구별해내는 분별력과 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