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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의 철학 여행 - 소설로 읽는 철학
잭 보언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20년 10월
평점 :
물음표로 가득한 책.
책을 읽으며 깜짝 놀란 사실, 마치 다들 알고 있는데 나만 혼자 몰랐던 사실들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책이었다. 철학과 과학이 이렇게 밀접한 관계였을 줄이야... 이제 모든 학문의 경계가 희미해졌다고는 하지만 기본 개념까지 이렇게 내밀하게 뒤에서 공조하고 있었다니. 그 동안 문학병에 빠진 헛똑똑이로서 내 프레임 중 한 모퉁이가 깨지고 사고의 범위와 시각이 더욱 확장될 수 있게 많은 물음표를 던져준 책이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신청했을 때, 500쪽이 넘는 꽤 두꺼운 책이고, 게다가 철학책이고, 이 주안에 완독이 가능할까 망설였다. 하지만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는 부재에 조심스럽게 용기내어 도전했고, 놀랍게도 일주일만에 완독 가능했다. 본문은 이언이라는 소년이 꿈에서 나타난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철학여행을 하는 소설같은 철학서다. 이언은 곧 나로 대입되는데, 놀라운 사실들과 물음표로 가득한 이 여행에서 이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등 여러사람과의 대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토론을 하게 된다. 이 대담들은 독자인 나의 사고도 유연하고 넓어지게 만들었고, 물음표가 가지는 핵심에 대해서도 이해를 도왔다.
보이지 않는 실체.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고 의심해 본적이 있는가. 나는 단 한번도 그런 종류의 의심을 해 본적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했을 뿐이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 감각에 의존하여 모든 것을 판단했고 또 그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어떤것을 확신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 사고와 기준에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라는 것에는 어떤 확실한 실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 앞에 지금 보여지는 사물의 실체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게 됐다. 모든 시각적 감각은 나를 속이고 있었고 감각이 미쳐 메우지 못한 구멍은 뇌가 열심히 상상하고 구상하며 재구성하여 메우고 있었다. 이것을 알자 마음속으로 좀 소름 비슷한 것이 돋았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믿고 이 많은 것에 확신하며 살았을까. 확신이야말로 무서운 생각이었고 모든 것에 의심을 함으로써 실체에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철학서라 어려울거라 예상했던 것이 무색하게 놀랍게도 술술 읽혔다.
과학도 철학도 모두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완벽한 참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얘기 되는 세상에서 자아와 이성, 정신의 구분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다. 인간은 언어와 수학을 할 수 있는 존재기에 정신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 수학은 컴퓨터가 더 잘하고 기계들은 점점 언어를 다루고 있다. 이 말은 정신은 곧 뇌와 같다는 말인데. 이 뇌를 대체하거나 완벽히 복사 할 수 있게 되면 뭔가 그때부터 인간의 존재와 존엄성은 사라들것 같은 위화감을 느낀다. 정말 그 때가 되면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일까.
하지만 컴퓨터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언어를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수학을 빠르고 정확하게 할 뿐이지 수학적인 증명까지는 아직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럼 어디에 차이가 있는 걸까. 오로지 물질적인 육체에 정신과 이성, 영혼은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 걸까. 10세의 나와 37세의 나는 동일한 인물인 걸까. 그동안 세포는 죽고 살아나길 수천번은 했을 텐데. 물질로 육체를 바라본다면 1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이 본질은 비물질적인, 즉 형이상학적인 어떤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바로 '일관성'이다. 형태나 물질이 바뀌어도 처음 그대로 인식되는 일관성 말이다.
처음부터 이성, 정신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데는 흥미롭더라도 무리였을지 모른다.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도구로서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그 본질과 실체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것 같다.
내가 평소에 관심있었던 복제인간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놀라운 사실은 똑같은 DNA를 가진 복제인간이라도 서로다른 기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A,B,C의 복제인간이 똑같지 않은 취향과 개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좀 무서워진다. 이것은 더이상 복제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봐야하지 않을까. 또 혼란스러웠다.
점차 읽으며 경계가 모호해진다. 기준을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그 기준을 잡을 권리가 인간에게만 있다고도 하지 못하겠다. 언제든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등장한다면 그 왕좌를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들을 기억이 난다. 모든 과학은 100%를 향해 가고 있는 거라고. 현재 증명된 모든 과학적 사실들도 작은 오류하나로 단박에 0%으로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개정판이 나오면 그전에 증명된 것들은 모두 뒤로 사라지는 과거의 지식들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절대 과학자들은 '이것이 100% 참이다.'라고 확신하지 않는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수학, 과학,철학등의 지식들은 무조건 신뢰하는 태도보다는 한번씩 의심하고 고민해보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학생때 공부한 것과 현재 공부하고있는 지식은 완전 반대의 입장으로 변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완벽하게 입증된 것들이라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한다면 후에 큰 혼란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머리 속 오래된 사고와 지식들도 새로운 환기가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분야에 혼란을 겪었다. 처음엔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오래되고 당연한 것들에 대한 흔들림, 그리고 혼란과 충격이었고, 그 다음은 오류에 대한 이해가 더해졌다. 갑자기 머리속이 물갈이 되듯이 전체적으로 한번 리셋된 느낌이 들었고, '이것이 진정한 사고의 환기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의 폭이 확 넓어진 것이다.
이제 작은 사물과 현상뿐 아니라 어떤 신념과 이상을 바라보더라도 순진하게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 같다. 한번이라도 의구심을 갖고, 남이 보지 않은 시점에서 바라볼 볼 줄 아는 또 다른 사고의 눈을 뜬 것 같다. 결국 분야와 주제는 다르지만 모두 한 가지 맥락에서 여러 가지가 나오는 것 같았다. 바로 '사고하는 힘'.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근육을 키워두면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지식, 과학, 사상과 철학들을 나름의 기준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비판하고 또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알 필요도, 의심할 필요도 굳이 없지만, 그래도 흘러가는데로 사는 것보다 사유라도 능동적으로 폭넓은 스펙드럼을 가지고 자유롭게 하고 싶어졌다.
머리 속 오래된 사고와 지식들도 새로운 환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