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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비늘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10월
평점 :
오래된 구전이나 신화 속에서 계속해서 내려온 인어이야기. 이전부터 내가 많이 보아왔던 인어이야기들은 유혹적이면서도, 신비롭고, 어쩐지 가슴 아픈 결말들이 먼저 떠오른다. 근데 이 책은 인어와 인어가 가진 신비로움보다는 그곁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그로인해 보여지는 타락의 밑바닥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왜 하나같이 그렇게 더 가지지 못하고 탐내하는지. 왜 그 한가지 약속하나 못지켜서 그 꼴이 나는지. 그 욕망의 참담함에 동류인 나까지도 비참해지고 힘들어졌다.
소설은 인어와 그 인어가 가진 소금 비늘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 배경은 백어도. 백어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백어의 전설 때문이다. 사람만큼 흰 물고기. 백어는 인어를 가리켰다. 이 백어는 처음 본 사람을 따라 육지로 나오는데 그때 사람으로 탈바꿈하면서 떨어진 자신의 소금 비늘을 가지고 온다. 하나는 자기 옆의 남자에게, 나머지는 절대 손대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 약속만 지킨다면, 백어가 가지고 온 행운이 본인에게 있을테지만, 만약 훔쳐간다면 목이 잘리는 불행이 있을 것이기에 백어는 경고한다. 하지만 이 약속을 지키기에 백어가 숨겨놓은 소금 비늘은 희귀하여 세상에서 그 값어치가 높고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유혹되어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강한 욕망과 탐욕이 그늘져 있어 이런 류의 약속은 언제나 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예상대로 백어석을 본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져 모두가 틀림없이 소금비늘에 손을 대게 되고 하나, 둘 훔치면서 환영에 시달리며 탐욕에 눈이 멀어 뒤따라오는 불행과 함께 타락하고 바다로 불려가 얼굴이 뜯기고 손이 깊게 베여지는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소금 비늘은 아름답고 거품처럼 물에 잘 녹지만 칼처럼 날까롭게 묘사된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소금비늘을 훔치는 사람에게 목을 찌르고 그어 잔인하게 살해하는 흉기가 되는 것이다.
소설에 인물은 초반에 두명으로 크게 나뉘어 보여준다. 하나는 백어도와 가까운 마을에 살았던 순하와 또 하나는 떨어진 도시에 사는 용보다. 순하는 어머니가 백어지만 소금비늘을 훔친 아버지가 자신이 죽임당할까 두려워 먼저 어머니를 살해한 경우고, 용보는 백어인 한마리와 결혼하여 살고 있는, 그러니까 앞으로 백어석을 훔칠 남자가 된다.
이야기는 중반부로 갈수록 용보에 초점이 맞춰진다. 용보는 평범한 인간이다. 자세히 말하면 성실하게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쪽이 아닌 어느날 자신에게 선물처럼 찾아올 운만을 기다리는 게으른 인간형이다.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자신에게 백어인 한마리는 행운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섬이라는 예쁜 딸을 둘 수 있었던 것도. 하지만 곁에 있던 행운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지 못했던 용보의 눈에 마리가 숨겨 놓았던 소금 비늘이 눈에 띄게 되고, 마리의 경고에도 여지없이 용보는 탐내고 결국 소금통을 바닥까지 긁어 주제에도 없는 주식이며 사업이며 돈으로 바꿔 다 날리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안 마리는 백어의 본능으로 당연히 바로 용보의 목을 그어야 했지만, 이미 한번 비슷한 일로 살해를 했기에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며 용보를 어찌하지 못하고 곁을 떠나는 것으로 답을 내린다. 하지만 용보는 마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바다 끝까지라도 찾아가 만나고 싶어한다. 마리처럼 살인이 싫어 본능을 억누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이렇게 집착하며 쫓아오니 결국 죽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용보가 과연 죽을까. 살아날 수 있을까. 약속을 저버린 탐욕 덩어리 루저인생의 용보를 욕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소금비늘을 둘러싸는 다양한 군상의 욕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용보는 그저 샘플일뿐 사실 모든 사람은 빛나는 어떤 것을 갖고 싶어하고 이 소유욕과 탐욕은 언제나 지켜져야 할 약속과 말의 무게를 가볍게 무너뜨리는 것을 소설을 통해 여실히 볼 수 있다.
소설의 흡입력이 좋아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까지 읽어내려갔다. 사실 환상 소설은 배경과 그 환상의 주체가 되는 인어의 묘사와 표현이 잘 드러나야 읽는 독자가 거부감이 없을텐데, 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작가의 필력이 너무 좋아 깊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백어도와 백어의 묘사는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 같았고, 특히 후반에 용보와 준희, 순하가 마리를 만나러 바다 한가운데 있을때 그 밤바다의 음산함과 스산한 바람이 내 얼굴에 부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완독 후 책 표지사진을 가만히 보니 햇빛에 반사되서 뭐가 반짝 거렸다. 백어의 소금비늘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백어의 오묘한 빛의 머리결과 반짝이는 소금비늘의 표현이 표지와 딱 들어맞아 감탄했다. 그 반짝거리는 소금비늘을 만지면서 실제로 나도 그런상황이 오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흠칫들며 읽으면서 손가락질했던 용보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