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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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문명이다. 진보고 과학이며 화려함이자 안정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이다.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소설 『제국』은 바로 이런 제국과, 그 이단아라 할 수 있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20세기 초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이른바 제국주의가 융성했던 때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강대국들(후발 주자라 할 수 있는 미국, 일본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이 산업혁명과 과학 및 기술혁명, 자본주의의 발전을 토대로 전 세계 곳곳에 앞 다퉈 식민지를 개척, 통치하고 막대한 부와 권력을 구축하던 때다. 제국주의 열강의 역사에서는 가히 황금기라고 할 수 있지만 피식민 국가들, 약소국가들, 피지배 ‘원주민’들에게는 수탈과 착취로 점철된 어두운 시기이다. 제국주의 시대는 다른 한편으로는 열강들 사이, 침략국과 피침략국 사이 전쟁의 시기이기도 하며, 따라서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고 충돌하고 융합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제국』의 주인공인 독일인 아우구스트 엥겔하르트는 채식주의자이자 나체주의자이며 태양 숭배자이다. 그는 높은 나무 위에서 태양빛을 직접 받으며 자라나는 코코야자를 숭고하다고 생각하며, 급기야는 남태평양에 있는 독일 식민지인 카바콘 섬에 가서 코코야자만 먹으며 평생을 보내고자 한다. 얼핏 보기에 그는 괴짜이며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그저 정신 나간 망상이 아니다. 엥겔하르트는 무엇보다도 현대 문명의 진보 뒤에 숨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나름대로 합리적이며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독기로 가득 찬, 천박하고 음산한, 재밋거리를 찾아 눈이 시뻘개졌으며 속에서부터 철저하게 썩어빠진, 아무 소용 없는 물건들을 그득하게 쌓아 올리는 데만 급급하며 동물을 학살하고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사회에 작별을 고하겠다. 그것도 아주 영원히. 그는 정말로 그렇게 할 작정이다.(111쪽)

 

그는 경제적, 물질적 화려함 이면에 있는 인간의 정신적 황폐를 발견하며, 보다 자연에 가깝고 인간다운 방식의 삶을 찾고자 한다. 동물 학살에 반대해 육식을 거부하고, 당시 유럽 사회에 만연해 있던 반유대주의나 인종 차별을 거부하는 모습에서는 그의 윤리적 태도가 돋보이기도 한다. ‘야만적’ 문명의 질서, 즉 제국주의 질서에서 벗어나 대안적 삶을 추구하려는 엥겔하르트의 시도는 “위대한 고립”(89쪽), 역설적으로 “가장 뛰어난 야만을 향한 첫 발걸음”(80쪽)이라 일컬어지기까지 한다.

엥겔하르트는 카바콘 섬에 가서 홀로 살기 시작하지만 그의 섬 생활은 애초에 그가 품었던 이상과는 괴리가 있다. 그는 물론 코코야자만 먹으며 자급자족으로 산다. 그렇지만 카바콘 섬을 사기 위해 막대한 빚을 내며 그 빚을 충당하기 위해 원주민 노동력을 이용, 코코야자 기름 사업을 한다. 제국과 문명을 거부하고 온 엥겔하르트 자신이 그 질서에 다시금 매이고 마는 것이다. 외부의 방해 또한 끊이지 않는다. 엥겔하르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는 불화가 일어나기 일쑤고, 독일 제국 식민지청은 온갖 스캔들을 일으키는 엥겔하르트의 존재에 경계심과 거부감을 드러내며 급기야 그를 제거하려고까지 한다. 엥겔하르트는 1, 2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영국군, 오스트레일리아군, 미군 등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며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가지 못한다. 지구 곳곳에 미치는 제국의 손길은 작은 섬 카바콘의 한 사람조차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엥겔하르트는 점차 야만화된다. 코코야자만 먹던 그는 어느 순간 손톱과 발톱을 먹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자기 손가락을 잘라 먹는다. ‘야만적인’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이 ‘가장 뛰어난 야만’을 추구했던 엥겔하르트에게서 뒤틀린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품었던 유토피아에 대한 신념이 실현되지 못할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좌절과 광기 그리고 반유대주의에 빠져들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엥겔하르트의 이러한 몰락은 제국의 몰락과 동시에 일어난다. 독일은 두 차례 전쟁에서 패하고 유럽 열강 중심의 세계 질서는 신흥 강대국 미국의 등장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전쟁, 착취, 반유대주의, 나치, 식민지 지배 등으로 점철된 야만적 제국의 시대가 끝나고 세계는 미국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질서 아래 놓인 듯 보인다. 소설 말미에 엥겔하르트가 도착하는 미군 기지는 청결하고 안락하며, 미국인들은 그에게 듣기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면 속옷과 손목시계를 선사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엥겔하르트는 수십 년 만에 고기를 먹는다. 이제야말로 야만적 제국주의의 시대가 끝나고 ‘진정한’ 문명의 시대가 온 것일까? 하지만 “이것이 바로 제국이다.”(297쪽)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제국의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황제(Emperor)가 사라지고 제국(Imperium)이라는 명칭이 쓰이지 않을 뿐, 엥겔하르트를 맞이하는 것은 콜라와 핫도그,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세련된 미국식 자본주의 제국이다.

오늘날 우리는 엥겔하르트가 무릎을 꿇은 바로 그 제국이 세운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동시에 물질만능주의, 소비주의, 빈부 격차, 자본의 노동 착취 등 그것이 초래한 야만적 상황들을 목격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제국과 문명은 과거의 그것보다 막강한 힘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때때로 우리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안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체제로부터 벗어나려 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는 결국 실패한 낭만주의자 엥겔하르트처럼 제국의 거대한 그물망에 포섭될 뿐이다. 소설 『제국』을 읽으며 우리 자신의 우울한 자화상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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