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신인류를 지칭하는 노마드적 인간의 초상을 담아내고 있다. 책을 소개하는 이 한 줄의 문장에서 나는 '을'을 만났다. 좀 처럼 따뜻해지지 않는 봄답지 않은 봄날의 밤에 노마드적이라는 말에 노마드적 삶을 살지 않는 나와 을의 만남은 따뜻하지 않은 봄의 낯설음만큼이나 낯설고 생경하게 다가왔다.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안지 않았더라면 그저 기성의 어느 작가가 내놓은 신작이었다면 어쩌면 그토록 마음 가닥을 잡지못하며 책을 읽어내리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이름도 신기한 박솔뫼라는 작가의 '을'은 그렇게 낯설과 신기한 소설이었다. 어디쯤의 나라인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포함하고 있는 인물들인지 친절하지 않은 낯설고도 기이한 이야기는 어느 소규모 호텔의 장기투숙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주와 을, 프래니와 주이, 씨안- 이들이 장기투숙하며 머무는 호텔은 온통 하얀 건물의 집이 있다는 말에는 지중해의 어디를 떠올렸다가 그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에는 알지못하는 중국의 어디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또는 황량한 어느 나라의 사막 가운데 있는 호텔은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들이 수없이 떠다녔다. 매인바 없고 소통과 이해의 방법이 으레 그러하리라 생각되어지는 것들과 거리를 좁히지 않으며 장기투숙하는 호텔이 있는 도시의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을과 그녀의 나이어린 연인 민주, 혈연으로 묶인 관계이며 동성의 연인인 프래니와 주이, 호텔의 장가투숙자이며 동시에 하우스 키퍼인 씨안의 이야기는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지만 그 모호함의 끝을(무엇이 끝인지 알수 없는 끝) 따라나서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둘이어서 완전한 관계의 이들 사이에서 다른 한 사람과의 관계가 더해지고 그들은 둘이어서 알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을 새로운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한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만(살인이라니 얼마나 대체로는 충격적인 사건인가 말이다) 살인사건 마저도 그들의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살인이라는 자체 역시 모호해져 버리는 좀 설명하기 힘든 그 속에서 헤어날 길이없다. 대체 이들의 이야기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이들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며 대체 저 모습은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하는 끊임없는 물음이 책을 중반을 넘어서면서도 끊이지 않았다. 이국의 장기투숙 호텔.. 장기 투숙을 하지만 언젠가는 떠날 곳이기에 흔적을 심을 이유도 필요도 없고 그저 앞을 향해 나갈 뿐인 바로 이것이 그렇게나 말하던 노마드적 삶인가? 하는 되지도 않은 물음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기만 한다. 을과 민주, 프래니와 주이, 씨안 이들의 불안하고 정립되어지지 않는 삶의 자락들이 나를 비롯 주위의 사람들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것은 다시 어디론가 떠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만나면서였다. 과연 내가 만난 '을'이 이 소설은 어떤 소설이다 하고 이야기 해줄 수 있을만큼 이해를 한것일까 하는 자조 섞인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와 문장의 향기들은 어느 자락을 펼쳐두고 읽더라도 언제나 늘, 새로울 것 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