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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메리지
앤 타일러 지음, 민승남 옮김 / 시공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소설이 소설로 읽히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에 격한 감정이 이입이 되어 심장이 불뚝불뚝 솟아 오르고 얼굴로 피가 한꺼번에 몰리는 듯이 붉어졌다 희어졌다를 반복해야 했다.
제목만으로도 그들의 아마추어 메리지를 상상할 수 있긴 하지만 실제 보다 더 혹은 실제 만큼이나 흡사하게 그려내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작가 앤 타일러의 심리 묘사와 디테일함에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아마추어 메리지의 주인공인 폴린과 마이클, 그들은 2차 대전이 몰아치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에서 만나게 되고 결혼을 한다.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에게 반한 두 사람은 전쟁이 지나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으리라 짐작할 만한 급작스러운 만남과 불꽃튀는 정열을 보여주며 서로가 서로의 짝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아리따운 아가씨 폴린과 과묵하지만 성실하고 믿음직 스러운 마이클은 결혼에 골인한다.
결혼 생활은 상상이나 이상과는 달리 녹록하지 않으며 잠시의 틈을 내어주지도 안은 채 생활로 스며들고야 말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 조차 없이 그저 결혼한 부부,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폴린과 마이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조금씩 허물어져감을 깨닫지 못했다.
활달한 모습의 폴린은 감정적이고 늘 극적인 상황을 즐기지만 이성적이고 때로는 필요이상으로 냉정함을 가장한 침착함을 유지하는 성격의 마이클과 대화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과 자신감의 결여에서 오는 자기비하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좋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했으나 그들의 큰딸의 가출로 부부는 물론 다른 두 아이의 성격과 생활에도 큰 광풍이 불어닥친다.
큰딸의 가출과 몇년이 지난 후 갑작스런 연락으로 찾으러 가게된 손자와의 생활에서도 폴린과 마이클은 갈등하고 서로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고민하게 된다.
30년 결혼 기념일, 지난 세월이 지옥이었다며 떠나가는 마이클과 잡아야 한다고 잡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폴린. 그들의 아마추어 메리지는 결혼 생활을 지나 별거 그리고 종국에는 이혼까지 이르게된다.
소설을 읽으며 어쩔 수 없는 성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나 역시 폴린의 입장에 서있음을 깨닫는다.
냉정함을 침착함과 이성적임으로 덧씌운 마이클의 차가운 태도에 얼굴이 붉혀지고 떠나는 마이클을 끝내 잡지 못하는, 잡지 않는 폴린의 자존심에 동화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결혼 적령기- 그런것이 있다면- 라는 것이 결혼을 해도 될 만큼 한 인간으로 스스로 성숙해 있는 시기라면 스스로 성숙한 두 인격이 만난 그들의 결혼은 과연 아마추어 메리지일까 프로 메리지 일까.
주변을 둘러보면 프로라 할만큼 닮고 싶은 부부들을 볼때가 있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목도되는 부부들은 아마추어겠지만.
그러나 프로라 보여지는 그들도 과연 그들 스스로가 판단하기에도 프로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두사람이 만난 결혼이 두사람만의 인생이자 생활일 뿐이라면 어쩌면 프로가 되기는 생각보다 쉬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이 두사람만의 관계가 아니기때문에 그들의 자식과 부모들과 형제들의 삶 또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기에 프로가 되기란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아닐까.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를 쓰다듬는 손길에서 언제 사그라들지도 모를 사랑만이 뿐 아니라 애잔함과 연민과 동질감이 묻어있음을 느낄때 어쩌면 내내 아마추어인 결혼 생활을 했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결혼의 프로로 한발씩 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행복이 만들어진다면,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만 꽃피우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 꽃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향기롭지 않은 꽃일뿐이다.
서로의 희생을 안타까워 하고 이해하고 미안해 하는 마음이 일방적인 희생을 만들어내지 않는 길일 수도 있다.
끝내 서로에게 아마추어로 남고 만 폴린과 마이클을 보며 두 사람이 처하는 상황이나 감정들로 소설을 읽는 호흡이 느렸다 빨라졌다가 반복되며 읽혔다.
저자의 심리묘사와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는 장치가 충격적일 만큼 폭발력이 있는 장치가 된것도 아닌데 섬세한 감정의 표현들은 온전히 소설의 주인공의 심정이 되게 만든다.
아마추어 메리지......과연 프로 메리지라는 것은 있기나 한 것일까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지만 폴린과 마이클의 이야기는 아마추어 메리지임에도 행복했고 또는 불행하다.
결혼 즈음이나 아마추어 메리지를 꾸려가는 이들에게 앤 타일러의 아마추어 메리지는 생각의 폭을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