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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꿈과 희망을 갈망하는 멋진 독자들에게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 사건>은 하나의 좌표가 될것이다.
그러나 섣부른 상상은 금물이다. 이 소설을 읽어보기 전에는 꿈과 희망을 말하지 말라.
강렬한 붉은 빛을 뿜어내는 책 표지는 자못 핏빛과 닮아 있다.
지하철역의 이정표가 없다는 상상을 해보라.
다른 사람들보다 길눈이 어두운 사람인지라 이정표 없이는 지하공간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목적지를 벗어난 다른 출구로 나왔다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해야하는 사람인지라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이라는 제목부터가 숨이 막혀온다.
하나의 좌표가 될 것이라 장담하는 붉은 핏빛의 책은 뜨거운 모래밭을 맨발로 걸을때 처럼 짜릿하게 다가왔다.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뒤 지하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는 아이 철수, 최고의 성공한 부자이자 자신이 이룩한 부를 바탕으로 제왕을 꿈꾸는 황금쥐, 신념에 따라 행동했으나 황금쥐로 부터 자본주의 귀족이되는 지름길인 스카웃트를 받고 갈등하는 부장판사.
자본으로 권력마저 움켜쥔 황금쥐가 알수 없는 탐욕으로 지하철 이정표를 훔친다.
지하에서 이를 목격한 철수와 역시 지정표 없는 지하에서 길을 잃어버린 부장판사가 황금쥐의 명령에 따라 붉은 고양이와 은색쥐들에게 쫓기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의 전개는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다.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이야기는 철수와 부장판사, 황금쥐, 은색쥐 등을 통해 곳곳에 상징들이 자리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이정표를 탐하는 황금쥐는 권력과 부의 추악한 탐욕을 보았다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부장판사의 갈등은 어느 것도 쉽사리 털어낼 수 없는 사람들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권력과 부에 타협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부장판사의 자아는 철수와 쫓기게 되면서 말하는 우체통과 철수를 통해서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한다.
“내 모습이, 내 진정한 모습이 그토록 타락하고 비열한 인간이었단 말인가. 아, 지금의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거짓의 가면을 쓰고 있단 말인가. 어린 아이를 희롱하고 권력과 부에 아부하고자 했던 내가 진실한 나였단 말인가."
부장판사와 철수가 꿈과 희망 발전소를 재가동 시키기위해 간 절망의 골짜기에서 백년동안 밭을 일구어온 남자와 백년동안 임신한 만삭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절망을 온몸으로 뒤집어 쓴 그들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가 않다.
많은 이들이 많은 곳에서 절망으로 신음하고 욕망 내지는 탐욕과 꿈의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는가.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넘쳐나는 잔고, 더 좋은 옷, 더 비싼 음식들.....
사람들이 꿈이라 믿고 일구어 나가는 그것이 과연 꿈일것인가 탐욕일 뿐일것인가.
“멈추어 섰던 꿈과 희망 발전소가 재가동 되었다. 골짜기의 뼈들은 서로 제 짝을 찾아서 결합하였고 그 위로 핏줄이 돋고 살이 돋았다. 죽었던 꽃과 나무들이 살나났으면 바람과 햇빛에도 생기가 스며들었다.”(P.303)
철수와 황금쥐, 부장판사 은색쥐, 붉은 고양이들 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읽는 내내 이들은 구체적인 형상으로 다가왔다가 이내 부서져 버린다. 상징을 담고 있는 인물들은 어디에도 있다.
철수는 꿈고 희망 발전소의 재가동의 문고리를 찾아내었다. 꿈과 희망이 재가동 될 것이다.
꿈이라 믿는 것이 꿈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꿈이 아니라 냄새나는 탐욕일 뿐이라면......
지하철 이정표가 사라지자 길을 잃어버리고 마는 많은 사람들 처럼 혼란스러운 마음이 든다.
특이하 형식의 한 소설이 꿈과 희망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도난 당한 지하철 역 이정표가 길을 잃게 만들었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이정표 앞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작가의 상상력위에 쓰여진 책 한권이 적잖은 생각거리와 충격을 던져주었다.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만히 들여다 보라고 자꾸만 자꾸만 이야기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