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돌의 기억들
현고진 지음 / 포럼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붉은 산 너머가 궁금하고 미지의 세계가 늘 궁금하고, 하얀 산에 오르고 싶어했던 하늘 바람

유난히 꽃을 좋아했던 물보라, 외로움을 잘 타는 아이 푸른지네.

셋은 붉은산 부족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5만년 전 초원에서는 살기위해 남자들은 사냥을 해야했고 여자들은 열매를 따고 뿌리를 캤다.

힘센 자가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먹는 것은 짐승의 길.

함께 힘을 합쳐 열매를 따고 뿌리를 캐고 짐승을 사냥하며 아이들을 기르고 병들고 다친 사람을 보살피고 골고루 나누는, 오래전 부터 내려온 부족의 법인 사람의 길을 사는 붉은산 부족.

노인과 아이, 젊은이 조차도 살아남기 힘든 먼지의 계절-풀숲의 영혼이 조금식 빠져나간 사자털 빛깔의 숲은 점차 시들어갔다- 이 다가오자 붉은산 부족 내에서는 깊은 갈등이 일어난다.

나무뿔을  주었던 늙은 절름발이 느린소와 그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 하늘 바람은 가슴에 하얀산을 품고 느린소를 묻어주고 돌아온다. 들개 달무리와의 우정과 함께.

먼지의 계절은 힘세고 똑똑한 자가 더 많이 갖는 짐승의 길을 살고자 하는 이들과 사람의 길을 따르는 이들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이들은 두 부족으로 나뉘게 된다.

하늘바람과 물보라는 사람의 길을 택한다.

짐승의 길을 택한 동굴부족의 끝없는 욕심과 탐욕은 인간사냥으로 이어지고 하늘 바람은 푸른지네에게 물보라와 아이를 뺐겼다.

'하늘 바람은 죽었다. 물보라를 잃었을때'

물보라의 상실은 하늘 바람에게서 웃음을 거두었고 그는 영혼의 색깔이 빠져버린 풀처럼 시들어갔다.

하늘바람은 사람이 오는것을 바라지 않는 차갑과 황량한 하얀산을 지나 세상의 북쪽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열망으로 어릴적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아버지 검은 사자의 나라에 도착한다.

그 빛살부족의 예언자 달의 거품과 만난다.

하늘 바람은 물보라와 푸른지네를 생각하면 가슴의 생채기에서 피가 흘렀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하늘 바람은 세상의 끝을 향해 떠난다.

외로운 사랑, 비참한 사랑,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을 가슴에 안고. 물보라의 행복을 빌어주며.

 

오만년 후 서로 색이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오만년 전의 사랑으로 살아간다.

 

'호모사피엔스 종은 희망과 존엄을 회복할 자격이 있다. 피부색깔에 관게없이 우리 모두의 몸속에 하늘바람과 물보라의 피가 흐르고있음을 기억한다면.'

작가는 오만년 전의 사랑을 재구성한 이류를 이렇게 말했다.

 

나무뼈로 만든 뿔인 나무뿔과 돌도끼, 짐승을 걸리게 하는 올가미.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간사냥을 하는 야만성.

하늘바람이 빛살부족에서 만난 달의 거품과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짐승의 길과 전쟁이 난무하는 지옥같은 현시대를 비판하기도 한다.

 오만년 전의 초원의 삶이 지금 이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 네가 어떤 신을 으뜸으로 여긴다면 너의 이웃도 그 신을 으뜸으로 여기지 않겠느냐? 두 신은 서로 천국의 주인이 되겠다며 싸우고, 너희는 이웃끼리 서로 깔보고 미워하게 될것이다. 살인과 도둑질이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이웃을 핍박하는 것은 천국의 이름으로 기려진다. 나밖에 없다고 외치는 신이  나올 때,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p.211

 

이념과 종교를 빙자하여 탐욕을 채우는 이기심이 전쟁을 불러오고, 많은 이들이 그 고통속에 죽어가는 지금이   오만년전 초원에서 처럼 사람의 길을 따라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원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소년의 사랑 이야기 쯤으로 짐작했던 소설은 짐작보다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람의 길과 짐승의 길은 언제나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오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짐승의 길에는 갈등과 고통 받는 이들이 많다.

사람이면서 사람의 길을 따르지 않는 세상이 슬프다.

물과 돌의 기억들은 오만년 전 초원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지금 이 때를 사는 우리에게도 물과 돌의 아련한 기억을 만들어낸다.

 

나무뿔을 들고 초원을 달리는 하늘 바람을  눈속에 그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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