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나의 독서는 깊이가 없고 폭이 좁아서 많은 것을 읽어내지도 못했고 듣기 또한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한번 잡은 책은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읽어야 겨우 귀가 트이는 정도다. 그러니 책고르기 수준은 짐작이 쉽고 읽은 작품 또한 얼마나 될지 말에 앞서 부끄럽다.

어린시절 집에는 강매당하다 시피한 전집들이 꽤나 있었는데 동서양 고전과 수필집 야사쯤으로 읽히는 역사소설들로 구성되어 있고 80년대판 번역본의 문체는 지금 읽어도 버겁다. 이 책들로 어린시절을 지났었던것 같다.

 언제나 익숙한 것들에 눈이 가게 마련인바 고전과 그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며 수줍은 반가움 부터 먼저 들게된다.

 

김훈의 작품을 접하게 된것은 95년부터 나오기를 기다려 서점에서 사보곤 했던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통해서 였다. 폭이 좁은 책읽기를 하는 나는 이상문학상에 열렬한 지지자 이고 그 안의 단편들에 높은 신뢰와 애정을 느끼고 수상작가들에 대한 관심과 다른 작품들을 읽을 기회로 이어지게 되었다. 

2004년도 제 28회 대상 수상작은 김훈의 화장이었는데 뭐라 잘 표현해내지도 못하면서 그의 문장과 문체에 깊이 매혹되어 버렸다.  몇번을 다시 읽어보아도 화장은 서리 내린 언땅을 맨발바닥으로 딛을 때 처럼 선득하니 무섭게 차가웠다. 그 후로 그의 작품들을 찾아 보기 시작했는데 그 느낌은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개, 남한 산성으로 이어졌다. 냉정하면서도 담담한 글들은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장감이 존재했고 사이 사이 존재하는 그 차가움이 슬퍼서 읽는 동안 꽤나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가 대학시절 난중일기를 읽고  (사실성과 단순성만이 존재하는) 37년이 지난 어느날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는 <칼의 노래>는  절망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통과해 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인 이순신을 그려냈다. 칼의 노래에서 맨몸으로 추운 전장에 선 이순신의 칼과 노래가 아닌 칼의 노래를 보았었다. 당파성이 없었던 이순신의 단순성을 칼의 노래- 김훈의 그 선득한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갇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읽는 내내 무섭고 괴로웠던 남한산성,

김훈은 그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의 내면 풍경을 그려내지 못했으며 그러기에 미완이라 말한다. 어쩌면 읽는 이들은 바라보는 시점에 섰을 테지만 이것도 저것도 말 하지 못하는 그 안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 자들이 아니었을까.

 

한마디 조사에 의해 의견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가 바뀔수도 있는 우리의 언어세계가 동어반복에서 벗어나 실재의 것을 포착하고 실물을 만지고 경험하며 설명할수 있을 때,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하는 전략이 원하는 문장에 도달한다고 그는 말한다.

연필로 글을 쓰며 살아있는 몸의 육체감, 육체의 현재성을 가지고 온전한 육체노동으로의 그의 글쓰기는 지두화를 그리는 오치균의 손가락과 손가락이 화폭에 남긴 흔적들에 친밀감을 느끼고, 그에게 자신의 머뭇거림의 동반자를 만난듯 싶었다고 한다.

해금연주자가 소리의 진동을 몸안으로 받아들여 몸의 리듬으로 소리를 통제하는 것처럼 그의 언어는 유려한 문장으로  리듬감을 가진다.

 

"제가 쓴 몇 편의 소설 속에는 아무런 위안이 없습니다. 다만 독자들을 한없는 고문과 고통과 절망의 늪으로 몰고 나가는 것, 그 결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 세계의 의미와 무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것, 그것이 저의 글쓰기입니다."(말과 사물 中)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줄이 서지 않아 규정하기 힘든 내적 흔들림이 있었는데 그의 말처럼 의미와 무의미를 스스로 생각키는 커녕 그 의미와 무의미의 뜻조차 알아차리지 못한게 아닐까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에세이와 강연을 구성한 원고와 작품서문, 수상소감이 담긴 바다의 기별은 소설, 글로써 존재하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뿐아니라 그 글을 쓰는 소설가, 언어를 다루는 작가 김훈을 상상하여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고귀함을 언어로써 증명하는 것이 글 쓰는 사람으로 사명이라는 그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쓴다는 것이이라 말한다.

불완전한 말과 더불어 불완전한 세계에 사는 불완전한 우리에게,  득도하지 못한 중생 얘기만 쓰는 협소한 영역의 소설이라 겸손해 하는 그가 비벼내는 언어의 글과 소설의 기별을 얼마든지 언제든지 기다린다는 다시 출발선상으로 돌아가겠다. 기다려주기 바란다 는 말에 듣는 이 없을 대답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