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전철 안에서 우연히 문가에 붙어서서 밖을 내다보는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의 남자 아이를 보았다. 한가한 오전 시간이라 전철 안에 자리가 많이 나 있는데도 아이는 내내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침 그 서 있는 아이와 대각선으로 앉아 있어 무심히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빛이 마치 어른의 그것처럼 우울해 보여서 깜짝 놀랐다. 잘 못 본 게 아닐까 해서 다시 유심히 아이의 눈빛을 몰래(?) 살피는데 깔끔한 옷차림에 똘똘해 보이는 인상의 그 아이는 꼼짝 않고 서서 수심에 가득 찬 시선을 밖으로 보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노란코끼리”의 ‘요군’을 떠올렸다. 혹시 저 아이도... 아닐 수도 있지만 혼자 그렇게 가정하며 다시금 노란 코끼리의 이런 저런 장면들을 한가한 전철 안에서 떠올려보았다.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느닷없이 정신적으로 꼬마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되고 나이보다 조숙해 진 “노란코끼리”의 주인공인 요군을.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대체적으로 ‘요군’의 의젓함과 어른스러운 행동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싱글 맘 가족의 홀로서기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런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번역을 하는 내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 때문에 원든 원치않든 조숙해져야만 하는 아이.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의 불안과 혼란과 외로움이 내내 마음이 쓰였다. 물론 요군의 또래 아이들다운 철없음과 약간의 심술과 개구쟁이 같은 면은 나를 피식 웃음 짓게 했지만.
느닷없는 엄마 아빠의 이혼. 아빠의 부재. 그 상실감. 엄마에게도 버림받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아이로서 감당해 내기 힘든 일들을 겪어내는 아이들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집의 문이 잠겨있어 그 빈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불안해하는 장면은 졸지에 이혼 가정 자녀가 된 아이의 불안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문득, 이상한 기운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이 온통 먹구름에 덮여 사방은 저녁처럼 어두워져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이내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엄마도 이렇게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아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집을 나가버리는 건 아닐까?’
몸을 적시는 비처럼 우울한 생각이 내 마음마저 적시기 시작했다.
늘 어렴풋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 정체를 드러내자 그것은 세찬 장대비처럼 내 마음속으로 쏟아져 내렸고, 이내 거대한 빙산이 되어 내 마음을 점령해버렸다.
‘으흐흐, 추워, 추워! 엄마 심장이 얼어붙을 거 같아요.’

그런가 하면 오토바이를 타는 멋진 엄마의 직장 동료 아저씨를 좋아하면서도 그래도 아이는 볼품이 없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빠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빠 편을 든다.

‘구로사와 아저씨가 늠름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만일 아빠가 오토바이를 탄다면 틀림없이 발이 땅에 닿지도 않을 것이다. 돈가스를 먹으며 무의식 중에 나는 구로사와 아저씨와 아빠를 비교하고 있었다. 하지만 멋이 있든 없든 만약 아빠랑 구로사와 아저씨가 일대일로 싸우게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빠 편이 될 것이다’

이혼 가정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재혼 가정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때 아이들은 새로운 구성원들과 솔직하게 배타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아니면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아이들 마음속에는 맹목적인 핏줄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용중 ‘요군’의 외로움을 대변해 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공작 시간에 자신의 찰흙 공작인 ‘생각하는 사람’을 한 친구가 바닥에 팽개쳐 그 아이와 필사적으로 싸우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번역하면서 나는 요군에게 지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절대 나약해지지 말라고…… 꿋꿋하게 버티라고……

‘내 편을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째지는 소리로 고함만 치는 저 할망구 선생에게는 어차피 이 상황을 수습할 능력 따윈 없다. ‘아, 내가 좀 더 힘이 세었더라면…… 하다못해 덩치라도 컸다면…….’ 머리가 떨어져 나간 ‘생각하는 사람’과 나만 바닥에 널브러진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에 빠져있다 내릴 역이 되어 일어서서 다시 아이를 보니 아이는 이번에는 두 손으로 무슨 종이쪽지 같은 걸 열심히 접고 있다. 나는 내릴 때 여전히 문가에 서 있는 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 눈동자는 지금까지와 달리 또랑또랑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안심을 했다. 어쨌거나 아이의 눈동자가 밝아보여서...

번역을 하다보면 이런 책을 굳이 출간을 해야 할까 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책도 있고 이 책은 널리 읽혔으면 하는 책이 있다. 바로 이 “노란코끼리”가 널리 읽혔으면 하는 책중 하나이다. 이 책은 아이의 시점에서 쓰여진 책이긴 하지만 오히려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이의 학업 성적에만 신경을 쓰기 보다는 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환경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아내야만 아이는 곧은 나무처럼 반듯하게 자랄 것이다.

“노란코끼리” 번역자 양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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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2007-01-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노란 코끼리를 번역하신 양경미 선생님이신가요? ^ ^?
글 참 잘 쓰신다 싶었는데 번역하신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당. ^ ^;;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참 재밌으면서도 가슴 알싸했어요.
써주신 내용을 보니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런 의미들도 담고 있었네요.
저도 이 책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좋은 책 잘 읽었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