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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 나노로봇공학자, 우리와 우리 몸속의 우주를 연결하다
김민준.정이숙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민준의이너스페이스#김민준
87년 개봉한 영화 ‘이너스페이스’는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인체탐험을 하는 내용이다.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대충 ‘신기한스쿨버스’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아픈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신기한 스쿨버스’를 타고 친구의 몸속으로 들어가 적혈구를 관찰하기도 하고 염증이 있는 곳으로 백혈구를 따라가기도 했다. 그 후 펼쳐지는 정쟁을 응원하기도 하며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로봇하면 흔히 인간형 로봇을 생각한다. 인간의 눈으로 ㄹ보기 힘든 ‘나노로봇’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수십 분의 1크기.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크기.
생소한 로봇만큼이나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금속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무기물, 또는 생체 재료들의 생화학적 조작을 통해 만들어 졌고 인간의 체액 안에서 자기장을 이용한 자체추진력으로 헤엄쳐 움직인다.
예를 들자면 인공박테리아 나노로봇은 진짜 박테리아처럼 세포체와 편모로 이루어져있다. 그 편모는 박테리아에서 직접 채취하는데 그런 과정역시 너무 신기했다. 원심분리기를 통해 분리시킨 후 그렇게 떨어진 편모를 자성을 가진 나노입자에 붙이면 완성이다.
그렇게 외부 자기장의 제어로 움직이는 나노로봇은 의약부분에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특정부위에 약물을 전달해주는 역할 뿐 아니라 종양이나 암세포를 제거하는 외과적 수술까지 가능해진다.
혈관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면 뇌경색치료에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고령자의 경우 수술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약물치료만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나노로봇을 이용한다면 획기적이지 않을까. 심근경색도 마찬가지이고.
얼마 전 내시경을 했고 선종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그것 또한 나노로봇을 이용했다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빛과 자기장으로 운동성과 방향성을 제어한다는 것은 아직 생소하고 어렵지만 내가 앓고 있는 질병에 연관 지어 나노로봇의 활용성과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웠다.
책의 앞부분에선 나노로봇의 정의, 개발과정, 연구내용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 뒷부분에서는 스승과 제자, 동료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터키인 제자와 한국여성제자의 이야기다. 정말 우수한 인재였던 그들은 지금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던 터키인제자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여동생 명예살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남자와 사라진 동생을 단순히 찾는다는 내용이 아니라 명예살인이라니. 그런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다.
한국여성제자의 이야기도 결이 다르지 않았다.
우수한 성적과 연구결과를 만들어냈지만 한국에서의 유리천장은 너무나 확고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정규연구직이나 교수직을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연구의 길을 떠났다고 했다. 나노로봇이 개발된 21세기 현대 사회지만 아직도 지구 한편에서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버젓이 살인이 이루어졌고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한국 역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과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웠다.
‘나노로봇’이라는 어려울 수도 있는 소재를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냈다.
비록 이너스페이스는 보지 못했지만 신기한 스쿨버스를 떠올렸고 같이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나노로봇이 가져다줄 기적과도 같은 의료혁명을 기다리며 그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창조와 혁신은 만남을 통해 더욱 진보한다. 아르튀르 랭보가 샤를 보들레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스티븐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일하지 않았더라면 예술의 진보와 기술의 진보는 그들만의 한계에 머물렀을 것이다. - P45
예를 들어 자연 상태의 대장균은 달리기와 구르기를 불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헤엄치지만, 유전적으로 조작된 대장균은 독성이 없을 뿐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달리기만 하거나 구르기만 할 수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반 대장균과 달리, 달리기와 구르기의 주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헤엄치게 만들 수도 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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