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 드럭스 -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토머스 헤이거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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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헤이거 #텐드럭스


인간은 살면서 5만개가 넘는 알약을 섭취한다고 한다.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먹나 싶지만 나도 한 달에 한번정도는 진통제를 먹기도 하고, 영양제는 무려 한주먹씩 먹고 있다.(종합비타민, 루테인, 오메가3, 유산균.. 가끔 비타민D, 비오틴에 각종 가루까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약이라고 하면 흔히들 기적의 약이라고 불린 페니실린이나 아스피린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책은 아편에서부터 시작해 피임약, 비아그라까지 이어진다. 단순히 약의 개발과정이나 효능을 나열하지 않고 그 후 사회적 파장이나 제약회사의 뒷이야기까지 이어져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천연두 하면 영국의 제너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그 이전에 레이디 메리가 있었다. 그는 바늘로 찌른 뒤 환자의 고름을 집어넣는 오스만 제국의 ‘접붙임’시술을 보고 영국에 돌아왔으나 기존의 의사들은 무시했다. 종교적인 이유(이슬람국가에게 뭘 배울 수 있는가-서양보다 미개하다고 생각함)와 성차별적 이유(여성이 남성의사한테 가르치려고하는가)였다. 하지만 ‘접붙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던 메리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직접 시술해 효과를 증명했다.

4체액설을 믿던 의사들은 접종을 옛 체제에 끼워 맞추려고 반복적인 사혈과 사하(설사약으로 장을 비움)를 시행했고 몇 주 동안 고생했던 고아소년은 그 경험을 한 후 절치부심을 하여 훨씬 안전하고 편리한 종두법을 개발해 세상에 납득시켰다. 그 소년이 제너다.

과학계의 여성지우기, 그리고 다른 문명을 지워버리는 서구문명의 기만성도 비판한다.


또 혈중콜레스테롤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스타틴이라는 약물도 등장한다. 건강검진 후 날아온 스팸메일을 보며 이 약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약인지 생각한다.

식이콜레스테롤은 모든 관상동맥질환과 유의미한 통계적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라는 논물을 소개하며 제약회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약을 강권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식이요법과 운동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의 약물이라고 불린 약물들의 숨겨진 부작용과 흥망성쇠를 지켜본 후 제약업체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을지 모르는, 양면성을 가진 물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복용을 하길 바란다.



레이디 메리 위틀리 몬태규는 1762년 세상을 떠난 후 ‘의학의 개척자’로 칭송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녀의 위대한 성과-유럽에 인두법을 최초로 도입함-은 최근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세상의 관심과 영예는 그녀 대신 에드워드 제너(접종소에서 끔찍한 경험을 한 후 절치부심하여 ‘백신의 아버지’로 유명해진 소년)에게 돌아갔다.
- P91

더욱이 레이디 몬태규의 선도적인 노력은 -과학사를 장식한 수많은 여성의 노력과 마찬가지로-대부분 무시되었다.
- P94

어떤 결정-인플루엔자 예방주사를 맞을 건지 말 건지-은 개인에게 맡겨진다. 왜냐하면 인플루엔자는 피해가 비교적 경미한 데다 그것을 예방하는 백신 중에서 100퍼센트 효과를 ㄹ나타내는 것은 없으므로, 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받을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다. 단순포진이나 대상포진과 같은 질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은 구하기 쉽고 안전하고 고위험군에게 필요하지만, 선택권은 당신에게 있다.
- P103

ADHD 치료제가 개발되었을 때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한 때 학교에서 ‘행실불량’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약물치료가 가능한 질병’으로 바뀌었고, ‘수혜 대상자’에 대한 정의가 날로 넓어져 궁극적으로 ‘열 명당 한 명의 어린이’가 ADHD치료제를 복용하게 되었다. 이 같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의 범주가 확대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약간 두렵기도 하다. 처방약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질병의 범위가 풍선처럼 부풀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외견상 멀쩡함에도 아프거나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사소한 문제가 제약사들에게 커다란 돈벌이감이 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건강상 위험을 걱정함에 따라, 의약품 시장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블록버스터가 속출하게 된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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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고독한 날 - 정수윤 번역가의 시로 쓰는 산문
정수윤 지음 / 정은문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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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고독한날#정수윤

 

일본의 전통시 와카.

고대일본에서는 지식인의 필수 소양이었다. 상대와 실력을 겨루는 하나의 시합이 되기도 했고 연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5 7 5 7 7 로 마디를 나누어 31자로 노래하는 와카는 우리나라 시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책의 저자는 일본문학을 번역하는 번역가다. 항상 문장을 옮길 때 색체와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 장면을 옮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와카를 소개하고 거기에 얽힌 자기 이야기를 한다. 가깝고도 먼 이국의 언어와 어원을 조곤조곤 친절하게 알려준다.

 

고등학교 때 일본어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말은 몇 가지 없다. 생각 없이 그냥 외웠던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 대사도 몇 개 기억하고 있지만 일본어의 매력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어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그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인다. 진작 관심이 갔다면 좀 좋았을 텐데 말이다.

소나무기다리다는 둘 다 마쓰라고 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와카에는 소나무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선 기다림이라고 하면 -망부석이 떠오르는데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옷고름을 적시는 우리나라와 달리 소매를 적시는 일본도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라고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일본어로 코는 아이를 뜻한다. 고양이를 뜻하는 네코ねこ도 자는 아이 (네루ねる는 자다는 뜻)에서 왔다는 속설이 있다.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고양이를 사랑해서 왔을 거라는 저자의 추측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너무 짧은 시에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저자를 길잡이 삼아 졸졸 따라갔었지만 금방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사전지식 없이 먼저 한번 읽어보고 해석과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내 이야기를 덧대서 한번 또 읽어보았다. 아기자기한 표현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어떻게 이런 짧은 글로 마음을 다 나타낼 수 있을까 그 재치에 무릎을 치기도 했다.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감성적인 겨울의 입구에 너무 잘 어울렸던 책.

마지막으로 좋았던 와카 몇 개만 놓고 간다.

 

나의 소매는 썰물 때도 잠기는 먼 바다의 돌

아무도 모르지만 마를 틈이 없구나

 

겨울인데도 하늘엥서 꽃잎이 떨어지는 건

구름의 저편으로 봄이 온 탓이리라

 

잊힌다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불변의 사랑

목숨 걸고 맹세한 당신이 걱정될 뿐

 

‘몰래한 사랑‘을 노래한 와카로는 이런 시도 있다.

내 얼굴 보고 사랑한다는 소문 떠돌았나 봐

눈물로 젖어버린 소매 색이 짙어서

하도 울어서 얼굴은 퉁퉁 붓고 소매는 눈물 콧물 닦느라고 한참 짙어졌다. 그 가여운 마음이 좋아서 나는, 이 소박한 작자미상의 시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 P218

날이 쌀쌀해서인지 요즘은 뜨거운 것이 좋다. 완전하게 타오르는 연소. 적당하게 적절히, 그건 말 그대로 적당하고 적절하여 반쯤 식어버린 어묵 같다. 뭐든 인생에서 하나쯤 나의 어떤 부분을 완전히 다 태워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일, 사랑, 대상을 찾고 싶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인생을 윤기 있게 한다. - P208

제비꽃의 계절이면 길을 걷다 시멘트벽과 아스팔트 도로 사이에 간신히 핀 한 송이 제비꽃만 봐도 발길이 멎는다. 아, 박수라도 쳐주고 싶지만 조용히 바라본다. 그러고 있으면 웃고 싶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하다. 그 연하고 은은한 보랏빛 때문일까. 아무튼 나는 제비꽃을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할 수가 없다. - P58

사랑을 에둘러 말하는 건 요즘 일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내 친구 사와라는 내가 애인과 문자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하트가 그렇게 많이 오다니 놀라워." 나는 되물었다. "그래? 사랑한다는 말 대신인데."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 같은 건 세 번쯤 들어봤을까?" "그럼 넌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 뭐라고 말해?" "음, 날이 좋으니 같이 오토바이를 타자거나? 오늘 밤 너랑 먹는 카레가 특별히 맛나다거나?"

아무튼 타다미네 정도의 러브레터를 쓰는 능력도 흔하지는 않다. 오늘부터 사랑의 감수성 근육을 좀 키워볼까. 사랑의 언어도 기술적인 단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좀 더 우아한 연애를 하고 싶으니까.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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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하 #나인폭스갬빗

 

한국계 미국인작가, 원톱여자주인공, 그리고 우리나라 설화인 구미호를 차용한 sf라는 이야기에 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었다. 그 유명한 아서 C. 클라크나 어슐러 K. 르 귄의 책도 읽어보지 않았고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영화도 보지 않은 SF일자무식인 사람으로서 엄청난 도전이었다.

 

처음 읽어보는 스페이스오로라.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너무나 생소한 단어와 개념들이 등장했으니. 역법과 이단이다.

초반 200페이지 넘게 글자만 읽는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인터넷에 도움을 구해 정보를 얻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 책의 세계관에서는 역법이 중요하다. 양력, 음력 같은 역법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다수가 어떤 역법을 믿느냐에 따라 마법 같은 힘을 쓰기도 한다. 여러 역법이 활개 치면 힘이 분산되기에 거대정부에서는 하나의 역법만을 강제하고 소수민족(이단)들을 탄압한다.

 

거대정부인 육두정부의 장교 체리스는 오직 명령에 복종하는 아주 충성스러운 인물이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대량학살자이자 미치광이 천재장군 제다오의 영혼을 흡수해버린다. 제정신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제다오와 함께 지내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동화되버린건지 육두정부의 체제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충성스런 꼭두각시에서 혁명가로 거듭날 수 있을까.

 

책의 앞부분에 미리 용어설명이 있었다면 좀 더 쉽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군인이지만 여성캐릭터가 과반수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고 성별을 유추할 수 없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점도 좋았다.

처음 솔깃했던 구미호신화나 동양의 정취는 생각보다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양배추절임.. 도 사실 동양적이라 생각들 지 않았다.)

 

이런 장르를 평소에 접하지 않았기에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도 읽다보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아마 미간에 인상을 잔뜩 쓰고 다음 책을 찾아볼 것 같다.


 

"하지만 원래 전쟁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나. 그저 누군가의 미래를 앗아가는 일이지."

- P333

우주는 죽음을 연료 삼아 돌아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경이로운 기계 장치도 엔트로피로의 전환을 멈출 수는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과 공조하거나 죽음을 방관하는 것뿐이다. 다른 길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 P.385

등롱꾼 이단 한 명의 생명은 칠두정부 한 명의 생명과 동등한 값어치를 지닌다. 적군의 목숨은 결코 우리 병사 목숨보다 못하지 않다. 이 간단한 수식을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이해했다. 그러나 켈 사령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슈오스는 게임판에서 한 가지 목표만 노리지 않는다. 따라서 모두가 평등한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임은 분명했다.
역법 전쟁은 마음을 다루는 싸움이다. -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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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 나노로봇공학자, 우리와 우리 몸속의 우주를 연결하다
김민준.정이숙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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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민준의이너스페이스#김민준

 

 

87년 개봉한 영화 이너스페이스는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인체탐험을 하는 내용이다.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대충 신기한스쿨버스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아픈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신기한 스쿨버스를 타고 친구의 몸속으로 들어가 적혈구를 관찰하기도 하고 염증이 있는 곳으로 백혈구를 따라가기도 했다. 그 후 펼쳐지는 정쟁을 응원하기도 하며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로봇하면 흔히 인간형 로봇을 생각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 힘든 나노로봇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수십 분의 1크기.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크기.

생소한 로봇만큼이나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금속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무기물, 또는 생체 재료들의 생화학적 조작을 통해 만들어 졌고 인간의 체액 안에서 자기장을 이용한 자체추진력으로 헤엄쳐 움직인다.

예를 들자면 인공박테리아 나노로봇은 진짜 박테리아처럼 세포체와 편모로 이루어져있다. 그 편모는 박테리아에서 직접 채취하는데 그런 과정역시 너무 신기했다. 원심분리기를 통해 분리시킨 후 그렇게 떨어진 편모를 자성을 가진 나노입자에 붙이면 완성이다.

 

그렇게 외부 자기장의 제어로 움직이는 나노로봇은 의약부분에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특정부위에 약물을 전달해주는 역할 뿐 아니라 종양이나 암세포를 제거하는 외과적 수술까지 가능해진다.

혈관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면 뇌경색치료에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고령자의 경우 수술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약물치료만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나노로봇을 이용한다면 획기적이지 않을까. 심근경색도 마찬가지이고.

 

얼마 전 내시경을 했고 선종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그것 또한 나노로봇을 이용했다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빛과 자기장으로 운동성과 방향성을 제어한다는 것은 아직 생소하고 어렵지만 내가 앓고 있는 질병에 연관 지어 나노로봇의 활용성과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웠다.

 

책의 앞부분에선 나노로봇의 정의, 개발과정, 연구내용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 뒷부분에서는 스승과 제자, 동료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터키인 제자와 한국여성제자의 이야기다. 정말 우수한 인재였던 그들은 지금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던 터키인제자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여동생 명예살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남자와 사라진 동생을 단순히 찾는다는 내용이 아니라 명예살인이라니. 그런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다.

한국여성제자의 이야기도 결이 다르지 않았다.

우수한 성적과 연구결과를 만들어냈지만 한국에서의 유리천장은 너무나 확고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정규연구직이나 교수직을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연구의 길을 떠났다고 했다. 나노로봇이 개발된 21세기 현대 사회지만 아직도 지구 한편에서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버젓이 살인이 이루어졌고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한국 역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과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웠다.

 

나노로봇이라는 어려울 수도 있는 소재를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냈다.

비록 이너스페이스는 보지 못했지만 신기한 스쿨버스를 떠올렸고 같이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나노로봇이 가져다줄 기적과도 같은 의료혁명을 기다리며 그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창조와 혁신은 만남을 통해 더욱 진보한다. 아르튀르 랭보가 샤를 보들레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스티븐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일하지 않았더라면 예술의 진보와 기술의 진보는 그들만의 한계에 머물렀을 것이다. - P45

예를 들어 자연 상태의 대장균은 달리기와 구르기를 불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헤엄치지만, 유전적으로 조작된 대장균은 독성이 없을 뿐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달리기만 하거나 구르기만 할 수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반 대장균과 달리, 달리기와 구르기의 주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헤엄치게 만들 수도 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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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이 부른다 - 해양과학자의 남극 해저 탐사기
박숭현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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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이부른다 #박숭현

 

지질학과 대학원생이던 저자는 동기의 소개로 우연히 해양연구소에서 일하게 된다. 해양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던 망간단괴 탐사에 참여하기 위해 배에 올랐지만 극심한 배멀미에 시달리게 되고 가까스로 멀미에서 적응한 는 망간 같은 퇴적물 연구를 시작으로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 지는 공간인 중앙해령을 따라 맨틀 지구과학으로 넘어 오게 된다.

바다 속 깊은 골짜기 형태의 열곡에서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 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물질들이 열곡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확장되어 새로운 해양지각을 만들어 낸다. 일종의 해저산맥인 그 열곡이 바로 이 책의 키워드인 중앙 해령이다.

저자는 중앙해령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쇄빙선인 아리온호와 함께 하기로 한다.

남극과 북극에는 아직 탐사되지 않은 중앙 해령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로 나온 쇄빙 연구선을 타고 미지의 극지중앙해령 연구를 시작한다.

 

새로운 유형의 맨틀을 세계 최초로 발견해 30년간 고착되어 왔던 맨틀 연구를 뒤엎기도 하고 남극중앙해령 최초의 열구분출구를 찾아내 거기에 사는 새로운 열수생명체를 발견하기도 한다.

한국인인 그 덕분에 새로운 열구 분출구는 소설 무진기행에서 이름을 따와 무진 열수구 지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열수 생명체는 아리온호에서 이름을 따와 아라오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최초로 발견한 무언가에 한국어 이름을 붙이게 된다는 것도 얼마나 멋진지 모르겠다.

 

세계 각국의 탐사선의 음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마드리드에선 고야 작품을, 칠레에서 시인 네루다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의 감성적인 의외의 (?)면모를 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마지막에 뜬금포로 지구과학이야기 (지판생성과정이나 남극과 북극의 차이, 과거지질학자에 대한 설명)가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차라리 맨 앞에 사전설명처럼 있는 게 어떨까 싶어 아쉬웠다.

 

알 수 없던 해양과학자라는 직업에 한 발자국 가까워 졌다. 세계 최초- 라는 수식언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놀랍고 짜릿하다.

해양연구소에서 온누리호를 타고 동태평양에 나가자는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참여하기로 했다. 『유령선』의 주인공 핌이 친구를 따라 바다로 나갔듯, 나도 별생각 없이 항해에 나섰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잠재해 있던 바다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양 탐사와 해양연구소 생활을 통해 만난 ‘해양학’이란 학문은 나를 해양과학자의 길로 이끌었다. 나에게 있어 해양학은, 너울대는 푸른 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바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구 환경과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총체적으로 생각하게 해준 매혹적인 학문이었다. - P6

해양학이라는 과학이 해류와 조석등을 연구하는 물리해양학, 바닷물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화학해양학, 바다에 사는 생물을 연구하는 생물해양학 그리고 바다 아래 지질을 연구하는 지질해양학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해양학이라는 한 분야에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모든 분야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니 그 영역은 바다와 같이 넓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P26

남극은 현재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다. 지구상에는 손바닥 만 한 크기일지라도 일국의 영토이거나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닌 땅이 드물지만 남극 땅만은 아직 예외이다. 따라서 입국 수속을 밟을 필요는 없다. - P174

북극곰들은 연결된 대륙을 이동하면서 북극의 환경에 적응한 동물이다. 한편 수영은 잘하지만 날지는 못하는 새인 펭귄은 주변 대륙과 고립된 남극권의 혹한 환경에서 적응하고 생존한 동물이다.
북극곰들이 북극권과 연결된 대륙을 통해 이동할 수 있었듯, 인류의 이동도 가능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많은 인류가 살았던 것은 북극권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에 살던 인류가 이주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북극권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유라시아 및 북미 대륙과 가깝기 때문에 더 많은 인류의 접근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남극 대륙이 오랜 기간 동안 오로지 상상의 대상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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