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칭찬 일색의 후기에 후회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 소설.

그리고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을 때부터 알았다.

마지막까지 손에서 이 책을 놓을 수 없을 거라는 걸.

또 폴라 호킨스라는 처음 듣는 작가의 이름도 잊지 못할 것이고.

너무 재미있고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하지만

세심한 인물 묘사와 호소력 있는 문장에 푹 빠져 읽는 속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 작가의 눈부신 재능에 놀라움을 넘어선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고전도 아닌 추리소설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참 오랜만이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비극적으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이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다.

 

주인공인 레이첼은 형편없는 알콜중독자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 여자에게 왜 내가 애정을 가지고 되는지 나도 신기할 뿐.

어찌나 레이첼의 심리를 잘 묘사했는지 내가 알콜중독인 것처럼 그녀의 심리가 실감났다.

그러면서 알콜중독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꼈다.

아무리 힘들어도 술에 기대서는 안되겠구나. 나 자신을 놓고 망가지게 되는구나.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레이첼이 가엾고 안타까웠다.

 

레이첼은 가식적이라고 평가했지만 캐시라는 친구가 옆에 있어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내 느낌은 다행히 틀리지 않았고 캐시는 기대이상으로 마지막까지 친구의 몫을 다해주었다.

그리고 레이첼이 사랑하는 톰, 그녀의 전남편.

레이첼이 알콜중독만 아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남편이었을 그.

레이첼은 계속해서 톰을 두둔하고 자기 자신을 비하했고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책의 어느 지점부터 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정말 좋은 남편이었을까? 레이첼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그의 행동에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레이첼이 더욱 안타까웠다.

 

메건, 아름답지만 항상 외롭고 불안한 여자.

어렸을 때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가출하여 모진 풍파를 다 겪었다.

우리나라도 요새 가출팸 이라고 하여 가출해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메건도 그렇게 무분별한 섹스, 마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미래가 없는 삶을 산다.

어른들이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 친구들이 받게 된다.

그리고 너무 어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메건은 죄책감까지 다 떠안으며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었다.

결혼해서도 완벽한 남편 스콧에 만족하지 못하고 겉도는 자기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의 집착에 가까운 독점욕이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메건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을 꺼리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함께 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해 외롭다.

오로지 남자의 관심, 섹스로 애정결핍을 채워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허탈감만 커질 뿐이다.

 

애나, 유부남을 빼앗아 행복한 척 하지만 사실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여자.

다른 여자의 남편을 사랑하고 몰래 만나면서도 그의 아니에게 죄책감을 가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남자를 빼앗아 폐인이 되버리다시피 한 그녀를 보며 승리감까지 만끽했다.

이기적으로 자기 감정, 자기 행복, 자기 가족만 중요하게 생각하던 그녀이지만

그 사랑이 거짓이었던 것을 깨닫고 깊은 패배감에 빠진다.

외모, 경제력, 다른 사람들의 시선, 평가처럼 외적 요인으로 사람의 가치를 따지는 속물이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사람은 흔하니 애나가 특별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나만 해도 애나를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세 여자들의 인생을 보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생각해보았다.

각자 다른 외모, 다른 성격, 다른 인생인 것 같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고 자꾸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 중 하나라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믿어주었다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했다면 이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기차'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성격, 상황, 인생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레이첼에게는 매일 아침 떠났다가 매일 저녁 돌아오는 일상이자 안정을 주는 공간이고

메건에게는 떠나고 싶은 충동을 부추기는 모험의 상징이다.

애나는 전 부인 레이첼만큼이나 기차소리도 싫을 뿐이고.

나는 기차가 참 좋은데. 기차소리도 좋고 앉아서 차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도 좋고.

달리는 속도도 좋고, 멀미도 안나고 낭만까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기차를 타면 무사태평하게 창 밖을 내다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그 풍경들,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궁금해질 것 같다.

그리고 나와 그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진 않을까 설렐 것 같기도 하고.

 

'아기'는 어떤 의미일까?

레이첼에게는 너무나 갖고 싶고 소망했지만 이루지 못한 아득한 꿈이고,

메건에게는 너무도 갑자기 찾아와 소중함을 깨닫기도 전에 잃어버린 가슴 사무치는 기억이고,

애나에게는 남편 쟁탈전의 승리를 증명해주는 소중한 상징이다.

퇴근할 때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엄마!!" 외치며 달려오는 귀염둥이들.

엄마에게 와주어서 고마워. 너희의 소중함을 계속 느끼며 책을 읽었단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꼭 이루고 싶은 꿈을 포기하게 될 때가 있다.

또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때 나 자신을 지탱할 수 있으려면 강해져야 할 것 같다.

내 옆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건 아니니까.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반대로 가졌다고 우월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나 스스로 중심을 잃지 않고 힘든 시간을 버티다 보면 또 새로운 희망의 빛이 날 비출테니까.

 

가끔 유난히 다른 사람, 자기 상황에 잘못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유난히 이기적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독단적이다.

게다가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폭력적 성향까지 갖고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 잘못을 몰랐을 것이다.

 

아참, 책을 읽다가 톰이 좋은 남편인가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던 부분.

아내가 아기를 그렇게 갖고자 하는데 '돈'을 이유로 거절하고 나선

친구들과의 라스베거스 야구시합 관람 여행 계획을 짠 부분에서.

그러다가 애나에게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걸 보면서 의심이 확신으로 이어졌다.

전처와 살던 집에서 사는게 불편하다고 그렇게 호소해도 '돈'을 이유로 거절했던.

그러다 휴가계획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결국 본인의 불편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내의 호소는 귓등으로 흘려버린거지.

하긴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도 다른 여자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거다!

마지막에 사람을 죽일 때 조차도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비겁한 자식.

"한번 봐. 당신 때문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고."

 

레이첼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큰 행복을 느꼈다.

잘 살아주어 고마웠다. 덕분에 나도 더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인생에 어떤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나 자신을 믿고 스스로를 지킬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