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소설의 대가 애거서 크리스티.

청소년 시절 대부분 그녀의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보냈다.

기막힌 반전, 치밀한 심리묘사.

그랬다. 난 분명 그녀에게 꽂혀있었다.

 

한동안 바쁜 인생을 살면서 그녀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다른 필명으로 썼던 책들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아~ 너무 멋진 여자다!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작가가 자신을 숨기고 썼던 작품들.

오로지 작품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던 순수한 열정.

 

난 운이 없게도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보고 이 책을 집어들었지만 말이다.

분명한 건 이 책을 읽고 난 더욱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인생을 통찰력있게 관찰하고 사람들을 세심하게 살피며 살지 않았다면

이런 소설을 쓸 수는 없었을거다.

모든 걸 가진 것 처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조앤.

외모마저 30대로 보일 정도로 철저한 관리를 하고

남편은 잘나가는 변호사에 3남매는 모두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바그다드에 있는 막내딸을 병간호하고 돌아오는 길.

딸과 사위가 한사코 더 있다 가라고 붙잡았지만

혼자 있을 남편 로드니가 걱정되어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로드니, 내 사랑 로드니.

그 나이에 그렇게 남편에 대한 사랑을 주체할 수 없다니 신기할 정도.

여자들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이다.

자기보다 못한 친구를 마음속 깊이 무시하고 우월감을 느끼는 그녀에게서

살짝 역겨움을 느꼈지만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을 통해서 나의 좋은 면을 부각시켜 모두에게 보여주고자 하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에 많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대놓고 하느냐 속으로 하느냐의 차이일 뿐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지는 삶에 매달리고 내 시간을 쏟아붓느라

정말 소중한 걸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고 생각할 시간이 있기나 할까?

소중한 사람들의 눈을 마주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퇴색되지는 않았을까?

왜 우리는 남들의 평가에 그렇게 연연한 것일까?

물론 나부터 말이다!!

책도 친구도 없이 사막에 고립된 조앤은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걸 갖게 되고

의도치않게 자기 자신을 마주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물론 그녀에겐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지라도.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마주대할 수 있다는건 멋진 일이다.

그녀는 서서히 깨닫게 된다.

내 사랑 로드니!

그녀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남편은 자신의 꿈을 접고 허수아비처럼 살아간다.

큰딸과 유부남의 불륜 사건 때 그 무엇도 말릴 수 없을 것 같던 딸의 사랑을 멈추게 한건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그 사람이 평생동안 이룬 업적과 자기의 일에 얼마나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알고 있니?

만약에 너와의 사랑으로 인해 그 남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반쪽짜리 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 사람은 평생 행복할 수 없을거다.

그 반쪽을 너나 다른 여자의 사랑으로 채울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오만이다.

​이건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난 너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남자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큰 딸이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방문을 나가며

아빠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고.

남편은 우리가 이겼다고 허탈하게 말한다.

딸조차도 아버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는데

조앤은 자기망상에 사로잡혀 온 가족이 행복하다고 믿고 즐겁게 산다.

무서울 정도로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고통이나 아픔이 수반되는 것들은 외면하면서.

왜 삼남매가 아버지만 따르고 엄마를 멀리 하는지.

왜 막내 바바라가 어린 나이에 사랑없는 결혼을 할 정도로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사막에서 길을 잃고 애타게 남편을 부르며 깨닫고 반성한다.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찬 조앤은

미안하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남은 인생이라도 남편과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굳게 다짐한다.

치밀하고 세심한 감정묘사와 소소한 에피소드들의 결합으로

전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데다 마지막 조앤의 결심은 바람직한 해피엔딩 결말이었다.

그러나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였다!

소름이 돋는 반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고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금방 자신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

사막에서 찾았던 진정한 자아 따위는 던져버리고 만다.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남편은 속으로 말한다.

당신은 평생 혼자 외로울거야. 당신 옆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절대 모르겠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꾸 잊고 산다.

조앤은 수십년에 걸쳐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다.

사막에서의 강렬한 깨달음으로 개과천선하여 새로운 삶을 살았다면

그녀에게도 가족에게도 더한 행복이 없었겠지만

실제인물이라면 다시 수십년 살아왔던 방식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마음은 편하지만 진부한 해피엔딩보다

소름끼치는 반전으로 애거서 크리스티 답게 마무리지은 멋진 소설.

영원히 그녀의 팬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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