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로버트 휴 벤슨 지음, 유혜인 옮김 / 메이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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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하수인이나 졸개들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예언이 말한 것처럼 무한한 힘을 지니고 나타나 파멸을 준비하는 자가 바로 우리의 상대입니다.

<세상의 주인>의 교황의 말 중에서

평소 필자는 SF소설이나 디스토피아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멋진 신세계>, <뉴로맨서>, <화씨 451>, <1984> 등등 수많은 SF 소설들을 읽었다. 그리고 그런 SF의 시초라고 알려진 책이라고 하니 당연히 <세상의 주인>이라는 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보다 훨씬 전인 1907년에 발표한 <세상의 주인>은 수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이 책이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초인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와닿게 되었다.

이 책의 세계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휴 밴슨이 이 책을 펴낸 1907년경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여 중국과 일본이 하나의 나라로 합쳐지고 인도와 호주를 집어삼킨 후 러시아 제국까지 무너뜨려서 만들어진 동방 제국, 현재의 미국이 캐나다와 병합하여서 만들어진 아메리카, 그리고 동방 제국에 대항하는 유럽 연합 이렇게 세 세력의 구도가 대립하고 있었다. 특히 동방 제국은 끊임없이 유럽을 위협해오고 있었고, 유럽 연합아메리카는 서로 깊은 갈등의 골을 가진 채 서로 자유무역을 하는 것조차 금지되는 등 심각하게 반목하고 있었으며, 이외에도 중동을 비롯한 동방의 곳곳에서는 종교 논쟁으로 인하여 수없이 전쟁을 일어나는 등 세상을 어지러운 혼란 속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크로이던의 초선 의원 올리버와 그 아내 메이블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줄리언 펠센버그라는 인간 중심의 세상, 즉 인본주의을 주장하는 프리메이슨 소속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인해 변해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어느 날 혜성처럼 우연히 등장한 영웅적인 인물 줄리언 펠센버그는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분쟁들을 종식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세상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 갈등의 원인이 되는 그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자 가장 방해가 되는 종교적 부분부터 제한을 두기로 하고 프리메이슨이 주장하는 인본주의 세상으로 물들이고자 한다. 그리고 급기야 가장 방해가 되고, 인간이 즉 신이라고 생각하는 인본주의와 완전히 대치되는 사상이었던 기독교를 완전히 탄압하고자 로마를 폭파시키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을 인락사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켜 완전히 기독교를 박해하기에 이른다.



메이블 인간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아. 놈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해 봐! 나도 오늘 일에 당신처럼 화가 나. 신문에서 봤어. 그리스도교인들보다 더 사악한 짓을 했더라. 기사에 그런 범죄를 자랑스럽게 적어놓았어. 우리 운동이 10년은 퇴보할 거야. 이런 폭력을 혐오하는 게 당신뿐이겠어? 수천 명은 더 있어. 결국 자비심이 승리할 거야. 그걸 믿지 않으면 신념은 의미가 없어. 믿음, 인내, 희망... 이게 우리의 무기야.

올리버가 자신의 아내 메이블이 변하가는 세상에 불안해하자, 아내 메이블에게 한 말 중에서,

과연 이 책의 결말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이 책의 작가 로버트 휴 벤슨 카톨릭 신부로서, 종교적 색채가 강한 디스토피아 소설을 써낸 것은 분명 사실이다. 다만 로버트 휴 벤슨부터 시작해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를 비롯해 이후로 써낸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의 공통점을 뽑아보자면 세상의 혼란 속에서 어떠한 독재자나 절대적인 체재의 등장을 통해 혼란을 잠재우는 것은 성공하지만 어떠한 중요한 가치를 잊고 놓쳐버린다거나 맞춰진 체재 속에서 단조롭게 살아간다. 그리고 로버트 휴 밴슨은 자신이 그려낸 세계관 속에서 사람들이 점차, 이 책의 후기의 말을 빌리자면 '신은 인간이다'라는 교리를 핵심으로 하는 '인본주의'가 신이 곧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범신론'을 대체하는 과정을 그려내며 과거와 다를 바 없어보이면서 무척이나 이질적인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간 중심의 관점극대화하여 급기야 생명이 꺼져감으로 인한 안락사가 아닌 오로지 인간의 권리 존중만을 극대화한 안락사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통해 그 이질적인 느낌이 나에게도 생생히 전달받는 듯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소설을 추천한 이유 중 하나로 앞으로의 세상이 앞으로 어떤 위험에 닥치게 될지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 볼 수 있기에 이 소설을 꼭 읽어보라고 한 바 있다. 사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과 <세상의 주인>은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 시초가 되었다는 점과 과거에 비해 점차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대신 인간 본인의 이익을 먼저로 생각하는 개인주의가 갈수록 팽배하고 있단 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책을 추천한 이유를 어느 정도로 짐작할 만하다. 필자의 생각에는 극단적인 종교 사상도 잘못되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인본주의 사상으로 돌아서는 것도 결코 옳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극대화하여 추구하였을 때가 아니라, 그 다양성을 인정받고 다른 여러 생각들과 어우러졌을 때 그 빛을 제대로 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스템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기에,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에 대한 여부는 인간 스스로가 판단하여 결정해 내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신중하게, 다양한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며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주인>은 인간의 여러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디스토피아 소설이었다.

자연의 힘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똥무더기에서 초목과 열매가 자라나게도 하지만, 불을 지르고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자고새로 하여금 새끼를 위해 목숨을 던지게도 하지만 때까치를 산 채로 잡아먹게 한다.

영웅과 자연은 모순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설명하면서 나온 말 중에서, '강한 자에게는 아무나 다가갈 수 없지만 강한 자는 누구에게든 다가갈 수 있다.'라는 말 역시도 어느 정도 인상깊은 말이었다.

책과 콩나무 서평단을 통하여 출판서에서 책을 제공받고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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