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 - 아이의 탁월함을 발견하고 길러내는 가족문화의 비밀
수전 도미너스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절대적 믿음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 / 수전 도미너스>

#도서지원

결국 나는 온전한 지지와 믿음을 받지 못했다. 착실하고 바른 아이였다. 학습 태도나 수행 능력도 좋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다. 특별히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집이 잘 살았던 것도 아닌데 주변엔 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얌전하고 조용해서 눈에 잘 띄진 않았지만 결정적인 상황 땐 용기 있게 나섰다. 칠판 대필, 악기 시범 등 누구보다 역량이 뛰어났고, 시 짓기나 그림 그리기에서도 게시판에 가장 먼저 내걸리는 게 나였다. 하다못해 고무줄뛰기도 반에서 제일 잘해 서로 깍두기로 데려가려 아웅다웅하기도 했다. 그렇게 학급 생활에서는 모든 면이 모범적인 아이였다.

문제는,

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은 내가 얼마나 모범적인 학생인지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4과목 시험을 모두 100점을 받아 무척 기뻐하며 8절지 시험지들을 손에 쥐고 집으로 뛰어갔다. (문제집을 사본 적도 없고, 학원은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다) 헉헉대며 엄마에게 시험지를 보여줬는데 엄마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따가 볼게, 저기다 둬.˝ 그때 내가 배운 건 ‘이런 건 엄마를 감동시킬 수 없구나!‘였다.

집은 전반적으로 그런 결이었다. 기본 생활 태도나 습관에 대한 교육과 훈육이 전무했고, 매일 같이 고성이 오갔다. 연년생 4명의 아이들이 복작대는 좁은 집에서 온화한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에게서 본보기로 배울 법한 삶의 태도가 사실 전무했다. 두 분은 말투도 거칠고 또 언성이 높았다. 정말이지 징그럽게 많이 싸웠고 또 싸웠다. 결국 내가 12살이 되던 해 이혼을 하셨고, 그 이후의 삶은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런 내가 집에서 보고 배운 건 무엇이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9년, 아이의 학년은 3학년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떠오른 단어를 딱 하나다. ‘믿음‘ .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자녀교육 방법은 바로 ‘믿음‘이다. 절대적 믿음. 나는 지아가 앞으로의 모든 삶을 잘 살아낼 것이라는 절대적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나는 믿을 거야‘라는 단순한 마음에서 기인하는 믿음이 아니다. 9년간 켜켜이 쌓은 정성이고 방향이다. 아이를 대하는 모든 순간에,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에 그것을 판화처럼 찍고 또 찍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가족들은 내가 ‘대담함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즉 그들은 자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거나,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거나, 세계 기록을 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22p

나의 유년이 불행했다 생각하는 건 지긋지긋했던 가난도, 부모님의 이혼도 보살핌의 부재도 아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온전한 믿음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 내가 아무리 열심히 생을 살아내도 결국 무용하다는 걸 뼈아프게 받아들이며 20년 가까운 시간을 시궁창에 처박았다. 단 한 사람,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방공호를 얻었다. 단 한 사람의 출현으로 생이 바뀌는 경험을 몸소 한 내가 지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바로, 믿음을 주는 일. ˝너는 무엇이든 될 거야! 그게 무엇이든 너는 될 거야!˝

* <양육 가설>보다 더 좋았습니다. 저랑 육아 이야기 나누셨던 분들은 한 번씩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목은‘ 식탁‘이지만 꼭 밥상머리는 아니고요. 가정에서의 전반적인 모습, 특히나 부모의 양육태도와 마인드가 중요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브론테 자매‘들의 이야기가 책 전체에 걸쳐 계속해서 언급됩니다. 부모의 영향보다 형제자매간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지점도 굉장히 흥미로웠고, <총 균 쇠>을 읽으며 느꼈던 ‘운‘을 이 책에서도 똑같이 느꼈는데요. 그 운이 고정불변인 게 아니라는 데에서 무척 희망적이었습니다. 배울 점이 많았어요. 1독을 추천드립니다!

#어크로스 #가정교육 #잠재력 #아이교육 #부모교육 #육아서 #인문서 #책벗뜰 #책사애25180 #책추천 #수전도미너스 #성공하는가족의저녁식탁 #가족문화 #양육 #자녀양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를 날려 보낸 날 샘터어린이문고 85
김나영 외 지음, 어수현 그림 / 샘터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가 구원한 작은 세상

#도서지원
#물장구서포터즈

오래전 읽은 육아서에 그런 말이 있었다. 아이들은 키가 작아서 낮은 곳에 있는 것과 작디작은 것을 어른들보다 잘 본다고. 그때 그 말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여기저기 읊고 다녔더랬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말을 만들었을까. 어렸을 때 보던 세상과 키가 이만큼이나 커서 바라보는 세상은 알게 모르게 각도를 달리하게 되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는 것에서 차츰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갔다. 가끔은 씁쓸한 모습으로.

아이는 학교에서 많은 것과 마주한다. 비단 학급 친구나 선생님들과의 교류만이 아니다. 알음알음 아이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 속에 아이가 마주하는 작고 작은 것들을 기억해 본다. 최근에 키우기 시작한 버섯에서부터, 배추 흰나비, 운동장 테두리 널찍한 화단에 심긴 배추와 무, 심지어 아무렇게나 땅에 묻어 자기는 키운다고 생각하는 과일 씨까지.

그것들과 한 시기를 나눠 먹는 것이다. 시간을 나눠먹는다는 건 단순한 추억 놀이가 아니다. 심지어 그것이 생명이 깃든 것이라면 더욱이 단순하지 않다. 같은 시기를 통과하는 아이와 작은 생명은 서로를 구원한다. 주말 동안 텅 빈 교실에서 목이 마를까 걱정이 되어 배추흰나비 곁에 꿀물을 병뚜껑에 담아 놓아주는 아이, 무섭고 징그럽지만 그럼에도 용기 내어 꾸물거리는 지렁이를 촉촉한 땅으로 던져주는 아이. 어쩌면 우리보다 더 전지전능할지 모르는 나무의 소중함을 진즉에 깨닫고 곳곳에서 우리에게 편의를 주는 나무의 고마움을 깨달아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일의 희망을 엿보았다.

희망은 그런 아이들의 작고 작은 손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에서, 이맛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땀방울에서, 두려움이나 오해 없이 그것들을 만지고 바라보고 말을 걸어주는 그 말랑말랑한 마음에서 조금씩 날개를 만들어 간다. 언제고 인사도 없이 창공을 훨훨 날아갈 나비처럼 아이들의 구원이 이 세상에 그나마의 인류애를 이어갈 수 있게 한다.

#샘터 #나비를날려보낸날 #김나영 #고수진 #이하람 #동화 #초등동화 #책추천 #샘터동화상 #생명의소중함 #책벗뜰 #책사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때목욕탕 파란 이야기 24
정유소영 지음, 모루토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수’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그때 목욕탕 / 정유소영>

#도서지원 #나는엄마다7기

올해 초, 아이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며 매순간 아이에게 올바른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 애쓴 지난날들이, 하루아침에 재활용 박스처럼 납작하게 분해되었지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용서는 물론이고 이해와 납득조차 되지 않는 커다란 실수였지요. 어쭙잖게 부모가 되어 9년 가까이 고군분투하며 나름대로 좋은 부모이고자 갖은 노력을 했는데 지난 노력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나마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사실을 인지한 즉시, 아이와 깊이 있게 대화하고, 대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담임 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올리고, 아이가 직접 머리 숙여 사과하는 것으로 일을 쉬이 무마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밤, 아이 앞에서 눈물 지으며 너의 잘못을 함께 짊어지고 싶으니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러 가자고 하니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흘려 냈습니다. 그런 아이의 눈물에 저도 원 없이 눈물을 쏟았고요.

용기가 없다는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뭘까. 보호자의 입장에서 제가 사과를 드리는 건 당연하고요. 아이가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습니다. 밤새 잠을 설치고 다음 날 새벽, 책상에 앉아 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쓰며 한 번 더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아이에게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그 편지를 쥐고 학교로 갔을 아이의 마음이 이제야 아프게 다가옵니다.

선생님은 편지를 확인하고 또 아이와 대화를 한 후 저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어른들도 완전무결하지 않듯이 아이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아이들의 도덕성은 부모의 양육태도나 주변 환경, 경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조금씩 발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아이는 잘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잘 자랄 거라 믿습니다.’

선생님이 전해주신 문구에서 저는 또 한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 혼자 잘났다고 아이를 잘 키웠니 마니, 자족하고 오만했던 제가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 하나의 역할을 절대적 기준에 놓고, 내 새끼면 그건 용납 못 하지,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따위의 같지 않은 생각들로 아이를 탓하고 또 못난 스스로를 앞세웠던 엄마 전현옥의 한 단면이 이 일을 계기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아이의 실수는 저의 실수였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는 관용과 연민 이전에 엄마 자격으로의 제 입장을 내세워 아이를 몰아붙였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유독 아이 양육에 있어서의 실수는 더욱더 뼈저리게 다가오는데요. 흐르는 세월 속에 망각된 지난 육아에서의 저를 쉽게 잊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어쩌면 아이보다 더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음에도 아이 앞에서 잘잘못을 따져 물으며 상처를 주었으니, 저의 그때를 깨끗이 밀어줄 ‘그때 목욕탕’에서 때를 확, 밀어내야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의 반성문 글이 되었지만 이 책은 제가 올해 뽑은 동화책 중 베스트입니다. 앞으로 계속 언급할 예정입니다. 초등 고학년 이상 청소년 독서모임도 구상 중입니다. 좋은 책을 만나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 또 이렇게 한편의 글로 정리해 볼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강추!)

#그때목욕탕 #정유소영 #모루토리 #파란이야기 #위즈덤하우스 #서포터즈 #올해의베스트 #십대취향 #초등고학년 #동화책추천 #책추천 #책벗뜰 #책사애251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만한 아이의 공부법은 따로 있다 - 공부 습관부터 학업 능력 향상까지, 현직 교사의 실전 가이드 나침반 시리즈 3
이사비나 지음 / 언더라인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로 또 같이

출판사에서 독서모임 지원 이벤트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 받아, 책벗뜰 온라인 독서모임 ‘오열‘에서 진행한 후 솔직하게 쓴 후기입니다.

#독서모임도서지원
@underline_books

사교육에 종사하시는 참여자가 두 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참여자가 한 분, 그리고 도서관과 책벗뜰에서 아이들에게 독서교육을 하고 있는 나.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분들과 함께 교육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의 자녀를 대입해 보기도 하고, 또 지도하고 있는 아이들을 이야기하며 ‘특성’에 따른 적합한 교육법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마음 담아 의견들을 나눠 주셨어요.

산만한 아이가 클래스에 있다는 것은 비단 한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주변 아이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학부모의 입장에 대해 서로의 경험을 녹여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었어요. 결국 부모에게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지도력과 주변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한 진짜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공부의 중요성을 성적의 층위로 나누었을 때 중간 정도까지 괜찮은 건지, 정말로 꼴찌도 괜찮은 건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희끼리 껄껄 웃기도 했습니다.

책은 ADHD라는 문제점을 ‘특성’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산만함’의 기준도 각각 다르고, 주의력과 집중력의 차이 또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갑니다. 조금 더 전문적인 내용을 원한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이제 막 중요성을 인지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분들에게는 훌륭한 지도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서모임에서도 다들 그렇게 말씀해 주셨고요)

저는 사실, 딸아이가 자꾸 오버랩되었습니다. 야무지고 침착하게 뭐든 잘 해내는 아이지만 제 눈에는 서툴고 또 답답한 면면들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모르는 게 아니다, 느릴 뿐이다’ 실제 딸아이는 수학 평가에서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인데요. 시간 안에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을 때 단순하게 오답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아쉬웠습니다. 평가 제도 안에서 적확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 응당 당연한 것 같다가도 지금 아이들에서 보이는 문제들이 대부분 이런 지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했기 때문인데요. 책에서 ‘우리는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다른 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해주어서 아이를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일견, 반대로 수행능력이 원활하고 일명 ‘엄친아’로 불리는 아이들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학습방법이나 지도 요령을 같이 톺아볼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환경적 요인과 기질 등 모든 면들을 통합해 학습 능력이 저조한 친구들뿐 아니라 원활한 아이들 또한 부모나 지도자들의 태도를 나란하게 놓고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자녀 교육서를 읽고 교육자로서의 참여자들과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luv_bam_bi
@noh_mihwa
@yuha_booksta
@chaekbuttteul

(서평지원 @writing.bora 감사합니다🙏)

#산만한아이의공부법은따로있다 #이사비나 #자녀교육 #공부법 #ADHD #가이드 #교육법 #공부방법 #책추천 #책벗뜰 #책사애251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에게 안녕을 말할 때
이명희 지음 / 샘터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와 나의 관계는?

<너에게 안녕을 말할 때/ 이명희>

#도서지원 #서평단

상대와의 관계를 떠올려 본다. 가족도 완벽한 타인이고 단순한 혈연이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에 문을 놓듯 관계 맺기를 잘해야 한다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내가 하는 말처럼 그렇게 관계 맺기를 고민하고 또 대처하고 있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발견했다. 누군가 마음에 든다는 건 그 사람의 결핍과 연민이 마음을 파고드는 순간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별 수 없다. 자문하게 된다.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연민을 느끼나? 내가 연민을 느낄 만큼 그 사람에겐 어떤 결핍이 있나?

부정하지는 않겠다. 누군가, 겉으로 보이는 번지르르한 모습에 마음을 기울인 적은 결코 없는 것 같기에 저 말에 응당 공감한다. 하지만 그 결핍의 기준이 웃기게도 오직 나라는 지점이다. 내 기준에 그 사람의 그것이 결핍으로 보인다는 것.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우리가 ‘관계‘라고 부르는 것들을 잘 들여다보면 거기엔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나‘와 ‘대상‘ 그리고 그 둘이 맺는 ‘관계‘다. 이 요소들은 모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동시네 독립적인 개별 존재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자주, 어쩌면 거의 언제나, 우주의 중심이 나 자신이라고 믿기에 이 셋 중 ‘나’를 가장 우위에 두는 착오를 범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나에게 나머지 둘에 대한 결정권과 영향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거다. 104p

저자의 말이 맞는 말 같다가도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나는 진정 상대와의 관계에서 ‘나’를 우선순위에 두는 ‘오만’을 사정 없이 휘두르는가? 그와의 관계를 ‘통제’하려 드나? 상대의 우위에 설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광기’를 내보이나? 동의하다가도 반감이 드는 건 그런 관계의 역학이나 정의가 고정적이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결핍을 발견해 (이 내용은 이 책에서 언급된 게 아니라 다른 책에서 언뜻 본 글귀다)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준 마음이 상대에게 안전하게 안착되었을 때 비로소 ‘관계’가 시작되는 것 같다. 그것에 우위를 둔다기보다 시소처럼, 한 사람이 내려버리면 시소의 안정감을 유지될 수 없듯이 관계 또한 나 하나의 통제나 선택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끊을 수 없는 관계나 끊어진 관계들, 어찌해서 그런 관계들이 다르게 내 삶에 안착되었는지를 가만히 떠올려보게 되는 책이었다. 시니컬한 문체와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친근하게 털어놓는 이야기들에 깊숙이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주제 안에서 나를 톺아볼 수 있어 도움이 컸다.



#너에게안녕을말할 때 #이명희 #에세이 #샘터 #관계 #인간관계 #상처 #책벗뜰 #책사애25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